퇴사 후 1년 회고
정말 오랜만이다. 나에 대한 성찰의 글을 쓰고 싶다는 의욕이 드는 것이.
최근 나는 글을 거의 쓰지 않았다. 유튜브에 올릴 스크립트 대본을 쓰는 것 외에는. (그것도 글로 친다면..?) 자신에 관한 글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나의 회피 성향 -중요한 일에서 벗어나 덜 중요한 일로 회피하는- 을 벗어나고 싶었고, 또 다른 하나는 비슷한 맥락으로 진짜 중요한 일들에 몰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 며칠, 아니 몇 주. 나는 또다시 극심한 번아웃과 무기력 증상에 시달렸다. "어, 지나가나~? 기분이 좋아지나~? 뭔가를 하고 싶은가아~~?" 희망이 피어오르다가도 내 골방 컴퓨터 앞에 앉기보다는 책으로 회피하고야 만다.
일과 휴식이 분리되지 못하는 이 삶을 그만 내려놓고 회사로 돌아갈까, 다시 직장인이 된다면 내 삶은 어떨까, 고민하는 이면에는 확실히 전보다 회사생활을 더 잘할 자신도 함께 했다. 때마침 전 회사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회사에서 면접 제의를 받았고, 내가 전에 했던 업무 경험과 유관되어 있어서 면접 때 헛소리만 하지 않으면 다시 직장인 모드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찾아왔다.
1인 기업, 프리랜서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 또한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다. 새로운 프로젝트의 기회가 주어져서 설렘의 기분을 만끽해도 될 참이었다. 그러니까, 선택의 기회가 모두 나에게 있는 호사로운 상황 속에서 호사로운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기력 극복'이라는.
내가 말하는 무기력함이란 창조적인 영감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를 말한다. 가장 큰 이유는 단연 유튜브 성과다. 하.. 이놈의 성과 지향적인 성격. 아무리 애를 써 보아도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는다. 남들은 구독자가 몇 명이든 영상이나 글을 몇십, 몇 백개는 거뜬히 올리던데. 나는 '보상'이 없으면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인정'이 없으면 왠지 하기 싫은 슬픈 어른이로 성장해 버렸다.
그렇다고 나를 너무 탓하지는 말자. 지난 1년 동안 애를 쓴 것도 많다. 아무런 보상이나 눈에 띄는 성과가 없어도 즐겁고 열성적으로 했던 것들도 있고, 무엇보다도 돈에 의해 일하는 습관에서 이제 막 벗어난 참이니까.
어쨌든 겨우 6개 영상을 올려놓고 반응이 없어서 맥이 탁 풀렸다. 세상에 이렇게도 없을 수가 있나. 있구나. 이유는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 왜냐면 나는 내가 만든 영상이 마음에 들거든. 나 같은 사앙~당한 완벽주의자가 내 작업물에 대해 만족하고 인정하는 건 아주아주 드문 일이다. 어쨌든 오른쪽 뇌는 "이제 시작이야, 그리고 또 반응이 없으면 어때, 그건 나한테 남는 거야"라고 속삭이는 한편, 왼쪽 뇌는, "나는 역시 안되는구나,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나는 영상 하나 만들 때 엄청난 공이 드는데 발로 찍은 것 같은 영상도 내 꺼보다 조회수가 잘 나오네. 하핳하핳핳핳핳". 좌뇌와 우뇌가 박 터지게 싸우면서 기분의 업 앤 다운을 무한 반복하는 하루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만둬야 할 이유는 아직 찾지 못했다. 다만 중요성을 줄이기로 했다. 내 삶의 만족도가 유튜브 따위에 결정되는 건 너무 웃긴 일이잖아. 그렇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유, 그리고 제목을 "정성을 다한 후 반드시 실패하라"라고 지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요성을 내려놓는 것.
퇴사 직후에는 약간 뽕(?)에 취한 상태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들이 다 중요해 보이고 잘될 것 같으며 잘 되어야만 했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적어도 회사에 있을 때보다는 만족감이 높아야 하고 "남들보다" 조금 더 결과가 좋아야 한다는 나 자신에 대한 '중요성'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나 이런 사람이야~ 남들과는 달라! 나는 특별해!!
내면의 어린아이가 소리친다. 이 아이는 여전히 스스로 자립하지 못해 남들의 인정을 갈구하고 남들에게서 성공했다고 칭송받고 싶어 하는 어린 아이다. 이 아이는 자신의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언제나 능력을 발휘하고 싶어 한다. 긍정적일 때는 성장과 향상성을 추구하지만 부정적일 때는 우월감과 열등의식에 압도되어 버리고 마는 어린아이.
호기롭게 퇴사했지만 사실 그 이면의 밑바닥에는 회피 심리가 숨어 있었다. 회사에서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정을 받지 못하니 밖에서 받아보자. 이 회피 심리는 내가 도전하는 모든 곳에서 일어났다. 블로그, 브런치, 티스토리, 유튜브 등등등. 플랫폼을 갈아타기도 참 많이 갈아탔지.
실패를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니 나의 우월 의식은 점점 평균점으로 내려온다.
그래, 내가 뭐라고. 노력만 한다고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단 말인가. 잘 되면 대박인거고 안되는 게 당연하지. 처음 해 보는건데. 중요한 건 작은 시작을 작은 성취감으로 이을 수 있는 끈기 뿐이야.
보통의 나로 내려오니 일단 목표 또한 현실적인 지점으로 내려왔다. 사실 나는 회사 밖에서 그냥 소소하게 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일 뿐인데. 일만 명, 십만 명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나는 행복할까. 내 욕망은 그렇다고 말하지만 내 성격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같은 프로 자기계발러에게는 너 자신 (분수)을 알라라는 말이 효과가 있다. 정작 자기계발서에서는 반대로 이야기하지만.
보통의 나는 별다른 목표가 없다. 사회에서 거래 가능할 정도로만 능력을 갖추고, 주기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과 고민을 교류하며 더 나은 삶, 오늘이 행복한 삶을 만드는 것.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인데 뭘 자꾸 더 높은 이상을 꿈 꾸며 무기력에 시달리게 되는지 모르겠다. "성격" 이라고밖에 답을 내릴 수 없는 것.
퇴사 직후의 나는 다른 사람의 콘텐츠나 강의안, 성공 스토리를 잘 마주하지 못했다. '불편'했고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왜 이렇게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혹은 저렇게 별로인데도 뭔가 되긴 되는구나. 나도 빨리!! 이런저런 평가들이 일어났고 그 평가는 나를 향한 조급증이 되어 돌아왔다.
보통의 나로 돌아오니 이제는 다른 사람을 경쟁자로 의식하며 질투하는 습관이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 그들은 그들, 나는 나. 모두 독특한 자신만의 경험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이 세상에 똑같은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그저 나 자신이 조금 더 향상되기 위한 노력을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이제 별 생각 없이 타인의 콘텐츠를 마주한다. 스스로 체감하는 확실한 변화다.
또한 지금까지 나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쓸 때면 글을 자체 검열하곤 했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 나갔네, 이런 이야기는 빼자. 너무 모나 보이지도, 우울해 보이지도 않게. 도전과 실행에 탁월한 사람, 긍정적인 사람으로 비칠 수 있게 "퇴고"란 것도 많이 했지.
이제는 조금 더 "진정한 나"를 드러낼 용기가 생겼다. 한마디로 막 나가자는 것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지 상관 없다. 이런것이야말로 진정성 아닐까? 굳이 타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컨텐츠를 만들 필요까지는 없지만 나 자신의 모든 면을 그저 의식의 흐름 대로 내맡기는 것은 치유의 글쓰기다.
나에게는 인정받고 싶어하는 가여운 어린 아이도 있지만 사랑이 많은 어린 아이도 있다. 내면의 사랑을 나누는 것, 그러한 연습을 하는 것, 익명의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동질감을 느꼈으면 하는 것. 그런 믿음을 가지고 글을 쓸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나라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보다 흔들리는 사람이 더 끌린다. 마음이 간다. 친해지고 싶다.
되풀이되는 슬럼프와 무기력 주간은 주기적으로 반드시! 돌아오지만 이것은 나선형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 예전처럼 무너졌어-, 사람은 절대 안 변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고민일지언정 그것은 한 차원 위의 나선에 있는 고민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나를 잘 이해한다.
내 감정을 마주하는 것에 훨씬 더 능숙해졌고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지
어떤 점을 자유롭게 놓아 보내야 할지
구별할 수도 있게 되었다.
매번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며 퇴사 전이나 지금이나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것 같아 보여도 이 모든 과정은 깨어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분명히.
최선을 다하고 반드시 실패하세요.
실패를 반복하세요.
그러다 보면 또 무엇인가가 나에게 찾아옵니다.
자유로운 삶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해
져야 할 짐을 진다는 건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갖고 싶기만 하고
짐을 지기 싫다면 그건 불공평한 생각이며
세상에 그럴 수 있는 건 없다.
내가 갖고 싶은 게 있어서 선택해 놓고
갖고 싶은 게 있지만 거기에 따르는 짐은 지기 싫을 때
스스로가 어쩔 수 없이 짐을 져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불쌍하게 불행하게 바라보면 안 된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해 선택하고
거기에 맞는 짐을 지고 있다면
나는 불쌍하고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글배우님의 어쩔 수 없는 힘듦이 내가 찾아왔다면 중에서.
글배우님의 책은 다 읽어보지는 못 했지만 시적인 압축이 상당하다.
처음에는 인스타용 글감이나 필력이라 생각했는데 이것을 시라 생각하니 왜 모든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는지 알 것 같다.
지금 도전하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넵니다. 이 도전의 끝에는 분명 더 큰 자유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