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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로 Oct 28. 2020

퇴사가 문제가 아니야

9개월 차 어느 퇴사자의 일기



원래 이 글은 인생에서 퇴사가 필요한 이유였는데 주제를 바꿨다. 괜찮은 척, 여유로운 척, 도전을 즐기는 척하는 기분으로 글을 마무리 짓고 싶지 않았다. 퇴사 9개월 차. 나는 여전히 길을 잃은 상태다.





퇴사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하루에 수도 없이 펼쳐진다. 몇 달 동안 열심히 하던 프로젝트의 중단, 의도치 않은 언어의 생채기,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 등 내가 결정할 수 없고 컨트롤할 수 없는 일들에 이리저리 휩쓸린다. 그러나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직장인의 루틴이란 마치 인생주기처럼 어느 정도 시각화가 가능한데, 소위 말해 이 일을 하다 보면 나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대충 보이게 되는 것이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 이외에도 내 미래에 대한 마음의 안정감이 보장된다는 측면에서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그것대로 가치가 있다. 놀 때 놀고 일할 때 일하는 것이 명확히 구분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러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방구석에서도 돈을 쓸어 모으는 1인 기업가, 직업을 5~6개씩 돌리며 월 천 번다는 능력 있는 N 잡러들, 평생 쓸 돈을 모으고 빨리 은퇴하길 원하는 파이어족의 출현까지 시대의 대전환점에서 막차를 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들의 고군분투가 요란하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퇴사한다. 그러니까 매를 빨리 맞을래, 늦게 맞을래

나를 불안하게 했던 말들의 진정한 의미를 퇴사하고 나니까 알겠다. 매는 늦게 맞든 빨리 맞든 맞으면 아픈 것이고, 불안하기는 고용인이나 피고용인이나 서로의 입장이 전혀 다를 바가 없으며 인간이라면 감당해야 할 피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오히려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을 놓고 보면 회사를 이끄는 오너의 불안이 더 컸으면 컸지 직장인보다 결코 나은 상황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진정으로 고민할 것은
퇴사냐, 입사냐가 아니라
내 삶에서 일의 의미다




일의
의미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시간이 부족해서요."

왜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냐고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했던 대답을 또렷이 기억한다.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공부하고 마인드 셋을 바꾸고 경험자들의 콘텐츠를 찾아보는 '준비' 만으로도 시간은 야속했다. 주말, 밤낮 할 것 없이 내 강점이 무엇인지, 어떤 일들을 하고 싶은지 질문하고 답하는 기간을 넉넉히 1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문을 나온 순간 맨발로 서 있는 내가 있었다.


그때는 퇴사를 해야 한다는 의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나에게 선택권과 자율성만 주어지면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또한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은 정말 많았지만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잘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한 감도 없었다. 그저 흥미로웠고 내 심장을 뛰게 했기에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나는 4시간만 일하고 월 500을 벌기를 꿈꾸었다.

나는 내 영향력을 몇 명의 동료나 상사가 아닌, 좀 더 많은 다수에게 미치길 원했다.

나는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싶었다.

나는 주도적으로 일 하고 싶었다.


원하는 것들이 비교적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천해 보니 내가 원하는 것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었나 의문이 든다. 4시간만 일한다는 건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해 보인다.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일이 아닌 일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일을 찾고 싶은데 목표가 4시간만 일하기라는 사실이 씁쓸하다. 물론 이 또한 포장하기 나름이지만 나는 팀 페리스 같은 사람이 정말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에게 일이란 일로 보이지 않는 놀이었을 테다. 꼭 팀페리스같은 대작가가 아니더라도, 50년동안 같은 자리를 지킨 이발사 아저씨게에도 자신의 일을 정녕 사랑하고, 자기 삶에 만족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나는 그 맹목적인 사랑을 하는 자들이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난다. 인정, 돈, 명예, 그런 잡다한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서 말이다.


나는 왜 4시간만 일 하고 싶었나?

남은 시간에는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곰곰이 떠올려 보니 직장인 루틴이 8시간이라면 나는 4시간은 일을 하는 데 쓰고 남은 4시간은 나를 성장시키는 데 쓰고 싶었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일이란 남을 위해 내 시간을 쓰는 것이다. 반면 성장하는 시간이란 나를 위한 시간이다. 예를 들면 글 쓰기, 책 읽기, 자기 계발 콘텐츠 보기, 온라인에 퍼스널 브랜딩 하기, 인테리어 공부하기, 집 꾸미기와 같은 일상적인 일들. 혹은 시간이 부족해서 그만둔 피아노를 친다던가. 운이 좋다면 또 다른 일로 연계될 수도 있는 일들. 다시 말하면 진짜 사랑하는 일을 찾고 싶어서 일단 4시간만 일하자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혹은 하나의 일과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일을 갖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능인이니까


그래서 최근 6:6:6 시스템을 도입했다.

6시간은 일하고

6시간은 휴식하고

6시간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는 것.


이 시스템으로 과연 내가 원하는 일과 삶의 의미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삶의
의미


내 인생의 골이 무엇일까.

원하는 지점이 무엇일까.


나는 공간 속에 있고 싶었다. 잘 정리된 포근한 공간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읽고 고양이를 쓰다듬고 커피를 마시며 일상을 즐기는 삶. 자기 계발과 도전을 좋아하면서도 버릴 수 없는 소녀 취향과 살림의 재미. 나는 그런 것들의 조화를 꿈꾸는 사람이다. 일상을 즐기면서도 나를 성장시키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삶. 나의 재능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삶. 나다운 인생은 무엇일까, 내가 편할 수 있는 강점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내 이름으로 당당할 수 있을까. 일을 즐기면서도 일에 매몰되지 않은 삶의 모습을 위해 나는 오늘도 이 길에서 방황한다. 모든 것은 내 마음가짐과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에 달려있다. 진정한 '나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그렇게 살아봐야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 점에 감사하자.

이것은 희망이다.









퇴사 후 반년

퇴사 3주 차

퇴사 과정

퇴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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