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파vs 나무파
여러분 주변에 있는 디자이너의 특징, 혹은 여러분 자신은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인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복잡해 보이는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분법만큼 편리한 것이 없죠. 세상 모든 디자이너의 개별적인 특성을 파악하기는 어려우니, 이 글을 읽는 시간을 빌어 이분법으로 디자이너를 분류해 보기로 합시다. 어떤 관점을 중시하며 디자인을 하는지 관찰하면 디자이너를 이분화시켜볼 수 있습니다.
우선은 크게 숲파와 나무파로 나눠볼 것입니다.
다시 말해 숲파와 나무파가 가지고 있는 강점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시기마다 추구하는 지향점도 다르죠. (기회가 된다면 주니어와 시니어 디자이너의 다른 점도 써 보겠습니다.)
숲파는 전체를 추구하는 디자이너, 나무파는 디테일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로 나눠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부터 전체를 추구하는 디자이너를 숲파, 디테일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를 나무파로 부를게요. 이 단순한 분류법으로 디자이너의 강점과 역량을 파악해 봅시다.
여러분은 숲파인가요, 나무파인가요?
숲파 vs 나무파
숲파 - 큰 그림을 추구한다
숲파의 가장 큰 특징은 크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구조를 짜는데 능숙하며 논리적인 디자인을 지향합니다. 큰 그림을 그리면서 응용하는 디자인 방식을 선호하며 단편적인 이미지 작업은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why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문제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스스로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 디자인을 하는 것에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낍니다. (그냥 예쁘게 해줘)
아이디어를 폭발적으로 풀어낼 수 있고 해결법도 다양하기 때문에 작업 시간도 빠른 편입니다. 비효율을 극도로 싫어하며 효율을 추구하기 위해 잔머리를 많이 굴립니다. 아웃풋을 구현하는 속도 또한 매우 빠릅니다. 머릿속에 수백 개의 레이아웃 모델이 있고, 가장 목적에 부합한 그림을 바로바로 끄집어낼 수도 있습니다. 와이어 프레임을 그리는데 매우 능숙합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업무와 아이디어 지향적입니다. 디자인 외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아요. 가장 잘하는 것은 레이아웃 잡기.
나무파인 디테일을 추구하는 유형과 트러블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숲파 디자이너는 아이콘 모양을 수정할 시간에 퍼널 분석을 하겠어라고 생각합니다. 나무파 디자이너가 야근을 마다하지 않으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디테일을 종종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해?)
나무파 - 디테일을 추구한다
나무파의 가장 큰 특징은 섬세하고 깊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무파가 추구하는 디테일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감성과 느낌을 표현하는 디테일, 다른 하나는 말 그대로 디테일한 디테일입니다. 두 가지 모두를 추구하는 나무파가 있고, 예술적인 감성을 추구하는 나무파가 있습니다. (어찌 됐건 논리를 추구하는 숲파와는 성향이 다릅니다)
감성파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을 확률이 높고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합니다. 한 자리에 앉아서 무언가를 꼼꼼히 만들거나 끄적거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디자인 작업을 할 때도 상업적 디자인보다는 그래픽 포스터나 아트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 훨씬 즐겁습니다.
디테일 자체를 추구하는 디자이너는 좀 더 예민합니다. 픽셀이 깨지거나 정렬이 틀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작은 밸런스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습니다. 본인의 예민함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진해서 야근을 합니다. 숲파 디자이너가 지나치고 넘기는 것을 이 유형은 넘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숲파의 선임이 나무파라면 다소 괴로운 상황이 펼쳐집니다. 에이전시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죠) 간혹 숲파 디자이너가 거시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할 때 나무파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나무파 디자이너는 디테일을 채워나가면서 작업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디테일이 쌓이면 쌓일수록 전체적인 퀄리티가 높아집니다. 결국 전체 프로덕트의 완성도를 책임지는 것은 디테일의 역할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부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무파 디자이너는 보다 세심한 눈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관찰하기 때문에 숲파 디자이너가 놓치고 간 디테일을 발견하고 보완합니다. 전반적으로 이 사람들의 특징은 관계와 소통 지향적입니다.
구조 추구 vs 표현 추구
숲파와 나무파가 각각 어떤 영역에 더 강점이 있는지 세밀하게 파악해 보겠습니다.
숲파 - 타이포그래피를 잘한다
개인적으로 제가 다른 사람의 작업물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여겨보는 부분입니다. 타이포그래피를 구조적으로 했는가? 이것이 편집의 기본이기 때문이고, 편집 능력이 디자이너의 기본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타이포그래피는 디자이너의 기본 역량이지만, 글자의 전체 밸런스를 유독 잘 잡는 유형이 숲파입니다. 결국 디자인은 '의도한 바(정보)를' '심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의도한 바를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전체의 균형을 잘 잡아내야 합니다. 강조할 것은 강조하고 불필요한 요소들은 축소해야 하죠. 여기에는 구조적이고 논리적인 사고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나무파 - 아이콘이나 일러스트를 잘 그린다
창의성이 폭발하는 예술가 유형인 나무파는 비핸스나 핀터레스트를 서칭 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작업물을 할 수 있지? 하는 작업들을 해 냅니다. (스튜디오 xq가 이런 일을 굉장히 잘합니다) 디자인 필드에서 그래픽 스타일의 트렌드를 끌고 갈 수 있고 구조적인 숲파 디자이너가 생각하지 못하는 틀에서 새로운 표현을 잘합니다. 틀에 갇히지 않고 유연하고 자유롭기 때문이죠. 단점은 스타일을 최우선적으로 여기기 때문에 무엇이 중요한지 위계질서를 파악하는 일에 다소 서툴며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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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디자이너의 경력이 길어질수록 타이포그래피나 일러스트레이션 모두 잘하는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주니어 디자이너는 스타일을 중요시하고 시니어 디자이너는 논리적인 역량을 강화해 나갑니다.
본질 추구 vs 미학 추구
숲파 - 서비스의 본질을 지향하는 디자이너
숲파 디자이너 유형이 성장하는 최후 로드맵은 비즈니스와 디자인을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는 c레벨 포지션입니다. (ceo-최고 경영자, cdo-디자인 책임, cpo-프로덕트 책임 등) 자기만족적 디자인보다는 실제로 비즈니스에서 구현되는 디자인, 사용자 반응을 일으키는 디자인을 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어떤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으며 디자인 필드에만 머무르지 않고 개발, 마케팅, 조직 구성 등 전체적인 것들에 관심이 있습니다. 특히 인하우스나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시니어 디자이너라면 필연적으로 이 단계에 진입하게 됩니다.
나무파 - 디자인의 끝을 보는 디자이너
주로 에이전시 부장급에서 볼 수 있는 유형입니다. 에이전시에서 디자인을 10년 넘게 했다면 그 자체로 '디자인'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남달랐는가 증명이 됩니다. 새로운 트렌드와 스타일을 프로젝트마다 시도하는 것에 재미를 느낍니다. 인하우스나 스타트업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디자인의 끝입니다. 비록 외주 업무지만 하나하나가 자신의 작품인 만큼 심미적인 완성도를 추구합니다. 기획 및 개발을 하지 않고 디자인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므로 프로덕트 퀄리티로만 놓고 봤을 때도 가장 완성도가 높습니다. 에이전시 디자이너가 스타트업에 입사하면 포기해야 할 것들을 포기하지 못해 쉽게 적응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쓰다 보니 mbti같이 되어버렸네요.ㅋㅋ (제가 mbti 준전문가입니다)
mbti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숲파는 *NT-직관 사실*에 가깝고, 나무파는 *SF-감각 감정*에 가깝습니다. 업무의 특성 때문인지 디자인 직군에서는 디테일을 쫒는 유형이 유독 많은 것 같긴 합니다. 대표적으로 ISFP와 INFP, ENFP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예상합니다. 디테일을 쫒는 유형이 팀장급으로 승진하면서 간혹 숲파 디자이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를 추구하는 유형을 필드에서 만나보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mbti 내에서도 희소한 성격 군입니다).
타고난 성격은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이 추구하는 본질 또한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성격은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유연하게 확장되어 간다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요. 나는 mbti가 자주 바뀌어, 나는 이것저것 다 맞는데?라고 의문이 들었다면 지금 당신은 잘 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숲파도 될 수 있고 나무파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추구하는 본질-타고난 성향이 두 타입은 다릅니다. 숲파가 디테일을 조금 더 신경 쓴다, 나무파가 조금 더 비즈니스적 사고를 한다. 이런 차이랄까요?
분명 두 타입은 상호 보완되어야 합니다. 전체를 그릴 줄 아는 디자이너는 한 번 더 디테일을 생각해야 하고, 디테일을 중시하는 디자이너는 더 높은 위치에서 전체를 조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강점이 진정으로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다면 어떤 회사를 선택해야 더 만족도가 높은 지도 예측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신은 어떤 디자이너인가요? 자신의 현재 위치를 먼저 파악하고 약점은 보완하고 강점은 더 강하게 끌고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