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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로 Sep 19. 2021

심플하면서 화려하게, 가능합니다

심플과 미니멀과 모던은 같은 말이다.

비현실적인 요구를 곧잘하는 클라이언트를 대표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심플하면서도 화려하게 해 달래."

-부제 : 말이 되냐고 / 뭘 알고나 하는 말일까 / 직접 하세요


언뜻 보면 심플함과 화려함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기에, '심플한 화려함'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역설적인 표현인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오감의 세계에서는 '조용하면서도 시끄러운', '깨끗하면서도 지저분한', '어둡지만 밝은' 같은 모순된 개념의 표현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심플하면서 화려한, 그 어려운 것을 해내 볼까요? :) 







표현에는
기본과 컨셉이 있다

우선, 개념을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것을 생각한다고 가정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결코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심플'에 대해 각자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놀랍게도 다릅니다. '화려함'도 마찬가지고요. 소통의 과정에서 언어의 불완전성에 의해 휘발되고, 표현의 과정에서 다른 추상적 개념들이 가미되면서 결국 서로의 방향이 완전히 틀어진 결과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화려함만 해도 떠오르는 이미지가 이렇게나 다릅니다



그렇다면 개념 정의를 위해 표현의 기준을 절대성과 상대성으로 나눠보겠습니다. 절대성은 보편의 미, 절대적 미를 추구합니다. 상대성은 보편에서 벗어난 차이, 다름, 엣지, 다시 말해 디자인 컨셉이라고 정의하겠습니다. 


절대성은 아래의 성질을 추구합니다.

기초 조형 원리 = 기본적임/균형미/보편미/밸런스/비율/비례/조화/레이아웃/여백/타이포그래피/컬러/통일된 감성/정보(목표) 전달/심플=본질




상대성은 아래의 성질을 추구합니다.

디자인 컨셉 = 차이/구별/은유(메타포)/개념/엣지/브랜딩/컨셉/감성 전달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심플함,미니멀,모던은 결국 같은 말입니다. 이것들은 보편의 미를 추구하는 절대성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편의 미 (균형미)를 쉽게 설명하자면 그리스 로마 미술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비율과 균형을 통한 조화로움, 인간이 보편적으로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것이 보편미입니다. 균형미는 의도의 강조와 소거가 함께 있을 때 만족되기 때문에 심플함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가치만 남기고 버린다와 일맥상통합니다. 


심플함은 보편미를 추구하지만 심플함 자체가 곧 디자인 컨셉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심플과 화려함을 동일한 컨셉의 자리에 올려놓으면 처음의 그 문제가 발생합니다.

심플하면서도 화려하게=컨셉이 부딪히니까 불가능


그러나 심플함을 절대성에 두고 화려함을 상대성에 두면

심플 = 보편미
화려함 = 컨셉

컨셉이 충돌하지 않습니다.





보편미 3대장 심플, 미니멀, 모던함의 뉘앙스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심플 (simple)

https://simplep.net/


시각 디자인에서 심플함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도형, 폰트, 숫자, 선을 이용한 장식적인 요소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본질 이외의 것을 전부 제외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의미 없는 장식은 하지 않습니다. 점 하나를 찍더라도 그것이 시각적으로 좋아 보이기 때문에 찍는 것이고, 그 이유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됩니다. 스스로도 설명이 안 되는 장식을 모두 걷어내면 심플함만 남습니다.





미니멀 (minimal)

미니멀 파워포인트 강의 기획중


미니멀은 심플함을 디자인 컨셉으로 사용한 경우입니다. 미니멀한 화려함은 정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도 찾아보면 방법이 있을지도) 누트럴하고 밝은 컬러, 저채도, 고명도를 주로 사용하며 유니크하면서도 심플한 오브제가 메인이 됩니다. 제품, 인테리어 디자인 필드에서 특징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던 (modern)

모던 디자인이라는 말은 약 10년 전 UI 디자인 트렌드가 입체에서 평면으로 플랫 하게 변화하는 시점에 출현했습니다. 플래시에서 html과 CSS로 넘어가던 지점, 스큐어모피즘(apple)에서 메트로(microsoft), 머터리얼 디자인(google)으로 변화되던 시점에 강조된 개념입니다. 20세기 모더니즘이나 21세기 포스트 모더니즘 사조와는 다른 의미로 통용됩니다. '심플하게 해주세요'의 원조는 '모던하게 해주세요' 입니다. 



결국,
심플과 
미니멀과

모던은 같은 말이다

심플과 미니멀, 모던은 탄생 배경이 약간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동일합니다.


의미 없는 장식을 하지 않는다. 

플랫(평면)한 디자인을 추구한다. 

타이포그래피와 레이아웃을 우선한다.
본질 (컨텐츠)을 추구한다.
=보편미, 예쁨, 취향 안탐, 절대적, 정답과 오답 설명 가능


반면, 컨셉은 상대적입니다. 타겟과 취향이 있고 정답보다는 방향성에 가깝습니다. 

어쨋든 디자인에는 결코 취향만 있지 않고 정답과 오답도 어느정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커뮤니케이션에 많은 힌트가 될 것입니다. (제가 디자인 칼럼을 쓰는 이유기도 하죠 :))


심플하면서도 화려한 것을 번역하자면 결국, 보편의 미를 기준으로 하되 화려한 뉘앙스를 줄 수 있는 컨셉 정도가 되겠습니다.


기조는 심플함, 색이나 텍스쳐로 화려한 컨셉을 가미한다


컨셉은 색을 어떤 비율로 사용하는지 결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텍스쳐 사용의 비율, 비율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올해 초에 진행했던 심플하면서도 화려한 컨셉의 퍼퓸 핸드크림 브랜딩 및 웹사이트 작업.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이 정확히 심플하면서 화려한 것이었기에 글감에 좋은 소재가 되었습니다. 스텔라블랑 작업 일기는 따로 써 볼게요. :) 






다른 예시


https://www.behance.net/gallery/76272957/BALENCIAGA-Triple-S-Campaign?tracking_source=project_owner_


레이아웃과 타이포그래피가 심플합니다. 그러나 다채로운 포인트 컬러와 키비주얼인 오브제가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어요.


금박 프린팅만 살짝 가미돼도 충분히 화려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래픽 패턴을 강조하고 나머지는 소거되었습니다. 





https://www.behance.net/gallery/32678161/Keep-Dribbbling-2016-Dribbble-Collection

심플하고 화려한 컬렉션 모음집

-사실 이렇게나 아티스틱한 화려함을 요구하는 클라이언트는 거의 없습니다. 위 컬렉션은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 어디쯤 있는 것 같아요.






심플(모던)하면서 ㅇㅇ하게 해 달라는 것은 결국 아래와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레이아웃은 심플하게

키 비주얼이나 색감은 엣지있게

 

절대성과 상대성을 함께 추구해야 굿 디자인에 가까워 진다, 이것이 저의 디자인 철학입니다. 심플함만 추구하다보면 차별화가 되지 못해 그것이 그것같고, 본질은 없고 컨셉만 있는 디자인은 포장지만 남는 셈이죠. 절대적인 보편미의 기초 위에 새로움을 쌓아가는 시도를 계속하다보면 자기만의 디자인 스타일이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심플하면서도 화려한 것,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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