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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로 Oct 24. 2021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오피스 실험기

고독과 연결의 균형 찾기

회사라는 정해진 공간이 아닌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근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막연히 꿈꿔왔었다. 직업상 디자이너라면 프리랜서로 자유롭게 근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좀 더 '나에게 맞춤형인' 형태를 상상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몸은 자유로운 근무 환경. 팬데믹 이후 재택/리모트 근무/줌 미팅이 일상화되었고 타의 반으로 상상했던 현실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버렸다. 


누군가에게는 재택근무가 상황상, 성향상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나 또한 4년 차 시절 - 미혼이던 시절 - 프리랜서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일 하는 공간이 원룸이라 답답했고, 하루 종일 말하지 않는 날도 있어 적적함이 기본 무드였다. 홀로 골방에서 일하고 먹고 자는 생활이 썩 기쁘지 않아 프로젝트 3개 차 만에 프리랜서는 내 인생에 없다 결론을 내리고 입사를 했다. 20대의 나는 집을 떠나 밖에서 일하는 것이 더 활력적이었던 것 같다. 출퇴근할 때 듣는 음악, 회사 사람들과 함께 하는 커피 한 잔과 수다, 회의- 이런 것들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30대인 지금은 안정적인 가정 -말할 사람-과 창문이 큰 방 3개짜리 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건 정말 중요하다- 기본 베이스는 홈 오피스에서 일하고 있고, 현재의 라이프스타일에 아주 만족한다. -이제는 출퇴근 없는 삶이 중독적이라 도저히 출근을 할 엄두가 안 난다 -

 

그러나 지금의 안정기를 맞이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출퇴근 없이 집에서 일한다 - 와 부럽다! 이렇게 단순하게 바라보기에는 재택근무의 단점도 분명 존재한다. 무엇보다 나는 재택근무든, 출퇴근이든 한 가지 상태가 지속-반복되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사람이란 것을 깨달았고, 4년 차 시절 실패한 프리랜서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들을 했다. 이것은 곧 고독과 연결 사이의 딱 알맞는 균형감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원하는 working-style을 구축하기 위해 어떤 오피스들을 실험해 봤는지 실험의 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집 - 홈오피스

신혼집. 방 2개짜리 투룸이라 작업실과 옷방이 함께 있는 구조. 원룸살이에 비하면 훨씬 나은 환경이었지만 창문이 없고 베란다가 있어 답답함은 비슷했다. 이 방에서 가장 많이 했던 작업이 블로그 글쓰기였는데 작업 환경 때문인지 글 쓰기가 그렇게 안되더라 - 완전 핑계 -


책상 앞에 착석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하루 종일 골방에서 일하는 느낌은 여전하여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러나 밖에서 일하려면 노트북이 필요한데, 홈오피스를 마련하겠다고 아이맥을 지른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차마 노트북을 또 지르기가 부담스러웠다. 사실 그 사이에 아이패드도 질렀기 때문이지. 이럴 때는 참 회사를 다시 다니고 싶더라. 프로그램 싸게 결제하는 방법 찾느라 인터넷의 바다를 뒤지거나 장비가 아쉬울 때.


골방 작업실
아이맥을 쓰려면 매직 패드도 있어야 해 헤헤헤

이 당시의 장비 : 아이맥, 아이패드

사실 이 때는 초기 유지비를 줄이기 위해 책상과 의자를 사지 않고 원래 있던 화장대에 아이맥만 올려서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화장대가 곧 작업대였고, 자칫 정리에 소홀해지면 아래 상황이 펼쳐졌다.


두둥. 왓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장비를 보충하기로 결정한다. 

사야 하는 품목 : 의자, 책상

책상은 세로 폭을 잘 못 사서 당근하고 다시 샀다. 기분 탓일 수 있지만 아이맥을 쓰고 눈이 많이 나빠졌다. 저렇게 화면을 가까이 두고 일 했으니 무리도 아니다. 


시디즈 t50을 질렀다
화장대를 안방으로 옮기고 공간을 분리시켰다


거실

골방이 답답할 때면 거실로 나왔다. 저 테이블에 앉아 계획 짜고 글 쓰고 혼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사진만 보면, 두근대며 도전하고 두렵고 불안했던 내가 떠오른다. 이 시기 나는 30대 절정의 방황 타임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30대가 되면 저절로 나에 대해 알게 될거라는 믿음은 착각이었다. 앞으로의 꿈, 미래, 커리어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어떤 라이프스타일로 살고 싶은지,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철학, 심리학, 명상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고 군중 속의 내가 아닌 진짜 나를 고독의 시간 속에서 찾고 또 찾았다. 불과 작년이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내 인생에서 너무나 필요한 시간이었고,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2. 카페

결국 집에서 뛰쳐나온다. 남편의 출퇴근이 빠른 편이어서 6시면 칼같이 집에 들어왔지만 낮 동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 정적이었다. 퇴사하기 전에는 그토록 집에 있고 싶었는데, 집에만 있다 보니 나가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인간이란 참... 쯧쯧대며 집 근처의 모든 카페를 다 투어해 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카페 프로젝트. 


아침에 눈을 뜨면 네이버 지도를 켜고 오늘은 어디 카페에 가서 일을 할지 결정한다. 하루에 4,000원 투자해 일상의 변화와 작은 설렘을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는 창이 크고 bar가 있는 카페였다. 확실히 공간을 전환시켜 주니 생각의 전환도 빨랐다. 당시에는 노트북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패드로 할 수 있는 작업은 한계가 있었지만, 라테 한 잔 시켜놓고 스크립트를 쓰는 시간은 너무 재미있었다. 카페에서는 오래 일 할 수가 없어서 2-3시간 정도 일 하고 나머지는 다시 집에서 일을 했다. 그래도 하루에 2-3시간이라도 밖에 나와 바람과 햇볕을 쬐고 걷다 보니 마음이 다시 건강해졌다. 





3. 대형 공유 오피스


집 주변의 카페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공유 오피스. 나는 공유 오피스가 이렇게 활성화되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 했다. 회사 다니던 시절 위워크를 쓰던 경험이 그리 썩 좋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조차 머릿속에 없었는데 마침 집 근처에 '집무실'이라는 1인 기업 전용 공유 오피스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날 당장 투어를 했다.


한 달치 멤버십을 등록하고 공유 오피스를 쓰던 첫날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나처럼 혼자 일하는 사람이 같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고 있다는 타인의 존재 자체가 위로가 되는 느낌. 왜 진작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후회를 하며 신나게 다녔다. 시설 및 분위기 또한 너무 훌륭했지만 결론적으로 대형 공유 오피스는 오래 다니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1. 카페에 비교해서 애매한 가격대 - 2시간 요금제였는데 내가 좋아하는 라떼를 마실 수는 없다. (아메리카노 자동 머신만 제공함)

2. 2시간은 너무 짧다 - 가끔 일 하다 보면 3시간이 넘는 경우도 있는데, 추가 차징이 필요하다. 사물함 시스템이 없어서 카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 카페보다 가성비가 좋지 않았다.

3. 커뮤니티 시스템이 부족했다 - 사람들과 엮일 수 있는 적극적인 이벤트가 따로 없었다. 존재의 위로는 약발이 짧았다.


어쨌든 공유 오피스에 맛 들인 나는 소규모 공유 오피스에 입주하기로 결정한다. 







4. 소형 공유 오피스

내 자리는 창가 바로 옆. 

이곳은 '트라이 그라운드'라는 소규모 공유 오피스다. 소규모 공유 오피스의 장점은 무엇보다 가격. 

위의 대형 공유 오피스에 입주하려면 최소 35~50만 원이다. 이곳은 세금 포함 27만 원-! 3달을 등록하면 첫 달은 반 값! 입주형 공유 오피스에 적응하려면 최소 세 달은 경험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3달치를 한 번에 등록했다. 


필요한 준비물 : 노트북 (결국 지른다), 해상도 2024 모니터




입주형 오피스의 장점 : 

1. 사회생활을 다시 하는 느낌 (장점일까 단점일까) 소속감이 생겼다. 

2. 프로젝트 문의가 들어온다. 일거리가 일거리를 연결한다. 

3. 함께 일 하고 싶은 동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케터, 개발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등. 협업하기 정말 좋다. 

4.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시도할 수 있다. 



실제로 이갸기를 하다 feel 받아 와디즈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개발자, 셀러, 3d 디자이너가 한 자리에 금방 모였다. 세상 재밌었던 프로젝트.


디자인 클래스를 열기도 했다. 브랜딩, 컬러 수업을 진행했는데 재능 기부 형태긴 했어도 뿌듯했다.







5. 다시 집. 홈오피스 정착

공유 오피스 생활도 즐겁긴 했지만 홈 오피스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역시 나는 플러스 마이너스를 적절히 유지해야 하는 사람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이유는 


1.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업무에 가장 몰입되는 환경은 역시 집이고 세상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

2. 큰 창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집에서 하늘 보며 멍만 때리고 있어도 좋다.

3. 커뮤니티 활동을 대체할 수 있는 모임에 나간다. 아무튼 여러 가지 재밌는 거리를 찾는다. 


내 방. 작업은 주로 아이맥으로 한다. 피그마를 작업 도구로 쓰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노트북 들고 어디서든 일 할 수 있다. 이사 오면서 쓰던 시디즈 t50은 남편 주고(ㅋㅋ) 에어로 업그레이드했다. 



하늘과 가깝게 사는 삶. 한 번 맛 들이니 앞으로 다른 집을 고를 때도 1순위는 view가 될 것 같다. 이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부터 마음이 늘 충만한 걸 보면 환경이 인간의 정신을 지배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일하다 쉬고 싶을 때는 누워서 책을 본다.




최근(이라고 하기에는 약 한 달 전) 브런치 글을 열심히 쓰게 되었던 이유-

노트북을 거실에 두니 자연스럽게 글이 써진다. 역시 환경을 잘 세팅해야 해야 습관으로 굳어진다. 노트북을 최대한 눈에 잘 띄는 곳에 두면 글을 쓰는구나-!! 글쓰기 용으로 전락한 노트북이지만 그래도 맥북은 사랑이지. 


요즘의 나는 정말 단순하고 마음 편하게 지낸다. 일 하고, 글을 쓰거나, 먹고, 자고, tv도 많이 보고. 나에게 모든 자유를 허용한다. 이상 1인 기업가 혹은 프리랜서 혹은 재택 근무자의 오피스 실험기 끄읏-* 언젠가 때가 되면 나는 또 밖으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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