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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로 Sep 16. 2020

결정장애, 정말 답이 없나요?

퇴사와 입사, 그것이 문제였다



원하는 것이
명확한 사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인생을 효율적이고 명료하게 살아간다. 가장 가까이서 겪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바로 내 남편인데, 남편의 의사결정 기준은 대체로 단순하다. 바로 '돈'이다. 이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는가? 답이 예스라면 그냥 한다. 그래서 남편은 보통 쓰리잡을 뛴다. 본업, 투자, 강사. 취미 생활 좀 하라고 닦달하면 "오예~ 그럼 주식 봐야지" 하며 신나서 차트를 연다. 남편은 웬만한 일에 흔들림이 없다.   


반면 나는 좀 복잡하다.

나는 일과 삶에 '의미'와 '다양성'이 필요한 사람이다. 내가 하는 일이 나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일인가? 나 자신을 뛰어넘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가? 이 질문의 답만이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원동력이다. 나는 그 답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고 싶어 퇴사 카드를 내밀었다. 


서른넷, 부지런히 걸어가던 길에서 잠시 벗어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조금씩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들. 글을 쓰는 루틴이 일상에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점이 퇴사 전과 후의 가장 큰 달라진 모습인데, 어쩌면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퍼블릭하게 글을 쓸 수 있을지 그 전에는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 온갖 프로젝트를 테스트해보고 있는 매일매일. 하루에 딱 1미리만큼의 확신이 쌓여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찰나, 한 통의 메시지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입사하시겠습니까


스타트업 구직 사이트로 유명한 원티드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공개 상태로 두었기 때문에 퇴사 후 입사 제의를 서너 차례 받기도 했다. 그중에서는 같은 기업에서 두 번이나 offer를 준 적도 있다. 그 모든 유혹을 뿌리쳤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메시지는 조금 달랐다.


지인이 창업한 회사의 offer였기 때문이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 이틀 출근, 다양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프로젝트, 창업 멤버.


이런저런 수식어를 다 떼어내고 내가 이끌리게 된 포인트는 '시작'을 함께하는 팀 빌딩, 전혀 모르는 분야의 호기심, 공부하면서 실험할 수 있는 자율성, 주 2회 출근으로 매일 똑같은 루틴의 지루함을 환기함이 있었다. 이런 가치들은 돈, 복지, 거리, 맡은 역할 같은 수치화, 계량화 할 수 있는 속성이 아니므로 고민은 고민을 더해갔다. 오로지 내 '느낌'만이 의사결정의 근거였다.  



-혼자 일하면 매머드도 못 잡고 달에도 못 가. 프리랜서나 1인 기업가는 결국 비슷한 수준의 일만 하게 될 텐데 그게 내가 원하는 걸까? 

-시간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 아니었어?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다, 나가고 싶다. 난 역시 협업이 좋아.

-집이 세상 좋은 거 아니었어? 협업이 정말 좋다고 생각해?

-내 말은, 능력자들과의 협업이 좋다는 이야기야. 혼자 하는 일은 한계가 있잖아.

-그렇치만 회사일은 항상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피곤했잖아 엄청.

-그래, 사실 난 인간관계가 몹시 피곤한 사람이긴 하지. 그때는 혼자 일하는 게 낫겠다 싶었어.

-그런데 왜 다시 입사를 하고 싶어 해?

-약간의 안정감을 얻고 싶을 수 있잖아. 사회적 관계도 필요하고. 근로소득 벌어서 뭐해. 창업 멤버면 주식도 요구할 수 있잖아. 또 내가 원하는 때 출퇴근하게 해 준다고 하고.

-창업 멤버가 '안정적인 일'은 아니잖아. 일을 또 벌리는 거야? 그리고 전에 주식받아봐서 알잖아. 주식받으면 일주일에 이틀만 출근 못 해. 올인해야 한다고.

-대단한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닐까? 

-설령 대박이 난다 치자. 그 일이 정말 나한테 의미가 있어? 평소에도 깊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분야야? 

-아니야.

-그럼 메일 보내.



스미골과 골룸의 대화처럼 질문의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 내면의 질문답을 하며 머릿속의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려대는 나를 보고 있자니 기가 찼다. 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줏대가 없을 수 있다니.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뭘 요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리 휘둘 저리 휘둘. 상대방도 혼란스러워하고 이 무슨 민폐냐. 


내 강점이 '행동가'이긴 하지만 사실 나는 겁쟁이에 이런저런 잡생각이 너무 많다. 세상에 기왕 태어났으니 내가 잘할 수 있는 강점을 살려 이로움을 더하고 싶은 소명의식이 있는 한편, 내 한 몸과 내 인생이 가장 중요하다는 본능적인 이기심도 떨칠 수가 없다. 가만 보면 나는 단 하나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다. 선택을 하더라도 반드시 후회한다. 후회할 구실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선택의 부족한 면을 찾는다. 나는 언제나 여러 개를 모두 선택하고 싶어 한다. 이런 방식이 결코 인생에 이로울 게 없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고치기가 쉽지 않다. 








결정을 꼭
해야 합니까


삶에 의미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멀티 포텐셜 라이트, 다능인이라고 한다. 에밀리 와프닉은 책 '모든 것이 되는 법'에 이런 문장을 썼다.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일단은 위로가 되기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놓긴 했지만 이게 옳은 주장인지는 검증이 필요해 보인다. 아직까지는 선택을 제대로, 빠르게, 명확하게 하지 않음으로써 얻은 폐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선택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decidere에서 기원한다. '다른 대안을 잘라내서 없애다'라는 의미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결코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선택을 하면 그 선택을 믿어야 한다, 설령 형편없는 선택이었음이 드러날지언정 그 안에서 좋은 면을 찾아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인생은 의사결정, 즉 선택들의 총합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감각과 연륜이 쌓여감일 것이다. 그러니 선택을 연습하자. 









항상 나만의
기준을
세운다


앞의 입사 제의 이야기로 돌아가, 결론적으로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아직도 '진정한 깨달음'의 영역에서 찾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생각해보면 전 회사에도 초기 멤버로 입사해 누적투자 100억대 규모의 시리즈 B까지 성장 과정을 함께 했고 애사심에 넘쳤던 사원이었지만 결론은 이별이었다. 



그때 나는 왜 퇴사를 선택했을까? 

처음에는 회사를 키우는 재미로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회사가 커가는 과정에서 나는 필연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사람들이 입사하고 내가 모르는 문화들이 생겨나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성장이 둔해지는 상황에서 내가 재미를 찾을 수 있는 부분도 점점 더 둔해져 갔다.


이제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일을 하자.


그 전에는 디자인이라는 전문 분야가 있기 때문에 필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떤 비즈니스 영역이라도 호기심과 새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내가 하는 일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타깃이 되는 사업 분야에서 일을 해야 행복하다. 궁금한 게 있으면 가장 첫 번째로 나한테 물어보면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 모든 것을 다 '가설'에만 놓고 일을 한다면 결국 일을 위한 일이 되어버릴 공산이 크다. 내가 해당 비즈니스에 관심이 없는데 어떻게 그 이상으로 일을 잘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제안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비즈니스였다. 다만 얼핏 들었을 때 비전이 있어 보이고 기술에 경쟁력이 있어 보여 괜한 고민을 했던 것이다. 하마터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뻔해서 아찔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깨달음을 얻는다.

나만의 기준을 아무리 세워도 막상 실전이 되면 또다시 흔들리는 게 사람이구나 하고. 


결정 장애자들에게는 선택을 빠르게, 확고하게 하는 연습, 또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내린 선택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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