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을 못해서 조만간 큰일 날 사람

N포 세대에게는 드라마도 현실도 모두 다큐다

by 정어리

“너 요즘 소개팅 좀 하니? " 6시 17분에 사무실에 선배와 둘만 남았다. 대뜸 요즘 소개팅을 하냐고 선배가 물었다. 너무나 당당히 아무 노력도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너 그러다가 금방 40살 훅 넘어가. 큰일 나 그러다가." 사십이라니 아찔하다. 40살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30대 중반이 된다고 인생이 꺾이는 느낌이 든다거나 인생이 끝났다는 절망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40살은 미지의 영역이라 조금 겁이 난다. 이후로도 점심시간에 30대 중반임에도 소개팅을 하나도 하지 않는 후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요즘 결혼 안 한다는 사람도 많대요!" 성냥불을 끄고 연기를 흩트리듯 황급히 화제를 소개팅에서 비혼으로 돌렸다.




괜한 이야기를 하면 사서 고생입니다

방전돼서 퇴근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치고는 억울하다! 6시가 지나서도 저녁 약속 없는 티를 내면 이렇게 비혼 단속반이 출동한다. 어째서 퇴근 후에 데이트를 하지 않는지 체크하므로 신중히 답변해야 한다. 연애할 때와 연애하지 않는 지금을 비교하면 차라리 지금이 낫다. 연애 중이라면 언제 만났는지부터 지난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 묻는 질문에 대비해야 한다. 간혹 한 주의 브리핑을 하며 자신의 연애 생활을 공유하길 즐기는 사람도 있다. 자기 이야기를 잘하지 않고 남의 이야기에도 관심 없는 사람으로서는 듣기가 괴롭다. 되도록 사생활을 오픈하는 게 미덕인 문화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대화는 물물교환이다.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은 주제는 상대방이 1만큼 말하면 1 이상으로 돌려준다. 반대로 선호하지 않는 주제일 때는 1을 받고 0.5를 말한다. 연애, 결혼, 부모님, 재테크에 대해서라면 절대적으로 후자다. 어떤 식으로든 끝이 어색해지는 대화 주제는 질색이다. 애초에 말하고 싶지 않음에도 어쩔 수 없이 답하면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라는 종류의 대답이 돌아온다. 앞서 소개팅 이야기처럼, 지금 그렇게 연애를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뻔한 결론이 나온다. 점점 말수를 줄이거나 남의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낫다. 타인과 특정 주제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마음을 닫는 셈이라 야박한 느낌도 든다.


정말이지 세상에는 특이한 사람이 많다. 어쩐지 부모님이 회사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말씀하셨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먼저 꺼내지도 않은 타인의 개인사를 캐묻는 사람은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무방비로 옷을 갈아입다 들킨 것처럼 깜짝 놀라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반대의 사람이 있기 때문이리라. 누군가 살짝만 건드려주면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도 있다. 가끔 훅 들어오는 질문에 정신이 아찔해진 적도 있다. 신입사원 때 사귀던 여자 친구에 대해 묻다가 '가끔 관계를 하느냐' 고 점검하는 질문도 들었다. 미친 이야기 같지만 사실이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몇 초가 무척 괴로웠다.


이상의 사례에서 회사에서 개인사를 말하기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되받아칠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는 게 낫다. 연애 중일 때와 연애를 하지 않을 때 모두 입을 조심해야 한다. 재미난 이야깃거리를 흘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말 케이블 TV처럼 사내 어디선가 재방송되고 있을지 모른다. 아무래도 연애 중인 사람에 비하면 미혼에 연포자는 심심하다. 그다지 할 이야기가 많지 않아서 마음이 편하다. 해탈한 표정으로 연애를 포기했다고 말하면 딱하다는 반응이지만 거기서 대화 주제가 끝난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연포자 혐오를 멈춰주세요.' 회사에서 벙어리가 되는 이유다.


KakaoTalk_20210301_195927193.jpg 29금 드라마라고 기대하며 본 넷플릭스 미드 '브리저튼'. 오랜만에 자발적으로 본 로맨스 드라마입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건데요?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별 뜻이 있는 건 아니다. 미혼에 연애를 하지 않는 상태가 정말로 걱정이라면 하다못해 '듀오'나 '가연'이라도 가입하라며 닦달해야 하는 게 아닌가. 개인이 모여 단체가 되고 단체가 모여 사회가 된다. 사회가 모이면 국가가 된다. 국가적으로 인구감소와 비혼 증가, 출산율 감소는 큰 문제다. 다시 국가에서 개인으로 쪼개지면 그건 각자 알아서 할 문제가 된다. 국가적으로는 중대한 일이라 미혼에 연애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경각심을 주지만, 그렇다고 연애를 할 수 있게 도와줄 의무는 없다.


통계청과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시행한 조사에 의하면 결혼 적령기 남성이 결혼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다. 두 번째 이유는 혼자 사는 편이 더 행복할 것 같아서이다. 여성은 돈이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혼자 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가부장제와 양성 불평등 문화 때문에 결혼을 꺼린다는 응답도 높다. 따라서 여성은 능력이나 여유가 있다면 비혼을 선택하지 결혼을 하려 하지 않는다. 결혼 후에 커리어가 끊기거나 개인의 삶을 상실하길 원치 않아서이다. 남성은 능력이 되면 결혼할 생각을 하므로 동상이몽이다. 여성 중에 자발적 비혼을 선택한 사람이 많은 반면,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비혼을 선택당한 비율이 높다.


요즘 즐겨보는 미드 '브리저튼'에는 비혼이라는 개념이 없다. 결혼만이 존재한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브리저튼 가문의 맏딸 다프네는 결혼 적령기의 상류층 여성이다. 상류사회 여성은 사교 시즌이 되면 잘 생기고 부유한 귀족 남성의 눈에 띄어야 한다. 그중에서 최고의 신랑감과 결혼하는 것이 절대로 중요하다. 인기 없는 여성은 무가치한 취급을 받는다. 불행한 다프네는 구애는 받아도 청혼은 받지 못한다. 단 한 명, 늙고 추한 쭈그렁 변태를 제외하면. 다프네는 그의 청혼이라도 받아들이라는 친오빠에게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한다.


오빠는 여자의 인생을 몰라. 오로지 결혼, 그 한순간을 위해 평생을 바치는 기분 말이야. 난 그걸 위해 길러져 왔어, 이게... 내 전부고, 유일한 가치야. 결혼을 못 하면 쓸모없는 사람이 돼.


드라마의 배경인 1800년대와 비교해서 여성의 지위는 크게 상승했다. 변치 않은 점도 있다. 여전히 인기 없고 무능력한 남성은 인생의 실패자 취급을 받는다. 비혼을 선택당한다. 늙은 남성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에게 추근대는 행동 또한 똑같이 혐오스럽다. 다행히 2021년인 지금은 자발적 연포 및 결포자에 대해 관대하다. 현실에서는 누가 미혼이고 비혼이고 기혼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조사해보면 생각보다 비혼이 대세다. 사회적 분위기가 침체된 탓에 소개팅 의지가 없는 개인의 무기력함도 최소한의 명예를 보장받는 느낌이 든다. 혼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당당히 말한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고. 밝히는 게 차라리 낫지 않나?


KakaoTalk_20210301_195927193_02.jpg 넷플릭스 미드 브리저튼 주인공 다프네와 사과입니다.




고품격 주거공간에 사는 무의식 속 나

'91년생 여교사 만날 수 있을까?' 'XX세도 가입 가능?' 카카오톡 샵 페이지를 보다가 비슷한 광고가 자주 보여서 친구에게 캡처 화면을 보냈다. "님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그 누구보다 연애에 관심 없는 척하면서 관심 많은 사람임."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인터넷을 할 때 결혼정보회사 광고가 자주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사용자 본인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란다. 앗,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소개팅이나 결혼정보회사를 검색하지는 않는다. 정말이다. 회사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자제하면 이렇게 된다. 친구와 지인들이 풍선효과의 희생양이 된다. 앞으로는 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 있다. 나이는 개인정보라 쳐도, 카카오는 무슨 수로 내 관심사를 알고 있는 걸까? 채팅방에서 하는 이야기를 모으는 걸까. 여기까지 해야겠다. 모르는 게 없는 카카오처럼, 모든 답은 이미 내 안에 있다. 3년 전에 ‘무의식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쓴 석정훈 선생님을 찾아갔다. 무려 태어나서 처음으로 최면을 받았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신기하게도 눈은 감았지만, 내면의 무의식을 더듬자 심상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는 미래의 행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무의식 속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일상의 행복을 즐기는 아저씨였다.


인생 어느 미래 시점의 나는 어떤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창 밖에는 푸르고 무성한 숲이 내려다보였다. 나는 출근하지 않는다. 서재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 거실 소파에는 아직 어려 보이는 아이 두 명이 보인다. 머리를 잘 빗어줘서 그런지 윤기가 흐른다. 골든 레트리버 한 마리도 다정하게 다가온다. 아내가 주방에서 나온다. 긴 머리에 앞치마를 두른 아내는 오븐 장갑을 양손에 끼고 요리를 가져온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정도 집이라면 서울숲 갤러리아 포레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참고로 갤러리아 포레는 가장 작은 면적이 231㎡로, 2020년 12월 매매 최저가는 37억 원이다.


"오늘 본 그 모습이 ㅇㅇ씨의 무의식입니다." 석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면을 마무리하면서 선생님은 오늘의 기억을 담아가라며 잠시 동안 나의 왼손 위에 그의 손을 올렸다. 심상을 몸의 한 부분에 저장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CTRL + S' 같은 명령어인 셈이었다. 덕분에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 나는 단발머리 여자와 긴 머리 여자 두 명을 동시에 좋아했다. 미래의 아내는 긴 머리임을 확인했다. 바라는 미래를 성취하는 날이 언제인지는 모른다. 적어도 목표가 있으니 언젠가는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백발노인이 되더라도 투자자 짐 로저스처럼 돈을 많이 벌면 승산은 있다. 갤러리아 포레 방 3칸 장만도, 연애도, 결혼도.




낭패다. 선배가 아무 뜻 없이 꺼낸 말에서 출발한 자아성찰이 눈덩이처럼 구르며 커져버렸다. '35세까지 미혼이라면 나 혼자 고양이와 아파트에서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던 혼잣말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아파트만 빼고. 타인의 참견은 지금도 몸서리치도록 꺼린다. 그렇다고 브리저튼처럼 결혼에 목숨을 걸고 사교계에 뛰어들 자신도 없다. 3년 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무의식을 저버리기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자발적 비혼 주의자의 길을 선택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다만 자기 객관화를 못하고 젊은 '다프네'에게 들이대는 늙은 변태만은 절대로 되고 싶지 않다.


KakaoTalk_20210301_195927193_01.jpg 무의식 속에 갤러리아 포레 입주를 꿈꾸는 나의 현재 주거공간(갤러리아 포레는 진짜 상류층이 사는 곳인데..!)

덧붙이는 말

벌써부터 이 글을 작가의 서랍 안에 넣고 공개하기가 두렵다. 예상하건대 이 글을 발행하면 싫어할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무의식 최면 전문가 석정훈 선생님이 그러라고 한 최면이 아닐 텐데라며 싫어하실 거다.

부모님이 그러라고 독립을 시켜준 게 아닐 텐데라며 싫어하실 거다.

회사 선배와 상사가 그런 생활을 하라고 칼퇴시켜준 게 아닐 텐데, 경제적 자유를 꿈꾸라고 취직시켜준 게 아닐 텐데라며 싫어하실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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