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에 몰린 짐승의 절규에는 전략이 없다
"너네 동기들에게 내 욕하고 다니지 마라. 다 들린다. 왜 그랬어? 모르고 그랬으면 넘어가는데, 일부러 그랬으면 너는 전략적인 놈이야." 째리고 갈구고 못살게 구는 선배가 어느 날 말했다. 살면서 전략적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이후로 전략적이라는 말이 싫어졌다. 회사 동기들에게 힘들다는 말을 하고 소문이 퍼지게 놔두면 전략가가 되는구나. 상사 얼굴 앞에서 힘들다고는 할 수 없어서 그가 없는 곳에서 했던 말들은 뒷담화가 되어 회사에 퍼졌다. 그렇게 묵묵히 일하면서 뒤로는 온갖 불평과 뒷담화를 쏟아내는 못된 신입사원이 되었다.
폭언, 시비, 인격모독, 술자리 강요, 둘만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한 담배 타임 강요, 서류를 내밀면 ‘팍’ 소리가 나게 종이를 낚아챈다. 취준생으로 대학 졸업장을 받고 어렵게 얻은 직장이다. 먹고는 살아야지. 신입의 서러움, 사회생활이란 이런 것임을 몸소 배우며 자신을 갉아먹었다. 부모님이 회사생활은 괜찮냐며 윗사람에게 잘하라고 하면 알겠다고, 별일 없다고 대답하고 넘겼다. 의미가 없는 문답이다. 팀장님의 인사철 면담과 마찬가지다. 힘든 거 있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말할 용기가 있다면 회사를 때려치웠을 일이다. 대신에 동기들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었다.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힘든 회사생활을 보낸다는 사실은 공공연해졌다. 파티션 건너편 동기가 듣고 건너 건너 선배가 들었다. 어지간히 눈과 귀를 닫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저 팀에 신입사원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알았다. 뒷담화 행위를 지속하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진정 제기를 할 수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 또한 가해자를 험담하면 가해자로 처벌받을 수가 있다. 참 세상에는 일방적인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평소처럼 폭언하지 못하고 자기 욕하고 다니지 말라는 말을 할까.
뒷담화의 교훈 3가지가 있다. 첫 번째. ‘너한테만 이야기해주는 비밀’은 없다. 혼자만 알고 있겠거니 하고 처지를 하소연하면 어느새 전혀 상관없는 3자가 괜찮냐며 안부를 묻는다. 두 번째, 던진 돌은 언젠가 돌아온다. 뒤에서는 선배를 욕하면서 앞에서는 깍듯하다며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란 말을 전해 들었다. 비굴하게 구는 법은 선배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더욱 비참했다. 세 번째, 뒷담화는 익명성이 없다. 누구의 손과 입에서 나온 말인지 조회해보면 다 안다. 왜 그랬냐는 질문을 받고도 의연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런 각오를 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바로 그러한 투명성 때문에 뒷담화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때 틈만 나면 손바닥으로 등을 때리고 괴롭히는 두 친구가 있었다. 참다못해 일기장에 둘을 용서할 수 없다고 썼다. 인생 최초의 뒷담화다. 담임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에게 소리를 내 글을 읽어주자 그제야 '아차'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화장실에 가는데 두 친구가 따라 들어왔다. 이제 화장실 구타 시작인가. 오히려 둘은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었는지 줄 몰랐다고 민망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알고 보니 착한 녀석들이었다. 도리어 내가 일기라는 매체를 이용해서 비난 여론을 퍼부어준 셈이다.
삶이 괴로운 사람이 글을 써서 폭로하는 방법도 전략이라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매우 될성부른 전략가임이 틀림없다. 틀렸다. 궁지에 몰린 짐승이 내지르는 비명에는 전략 따위는 없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고통스러우니까 쓰고 질러버린다. 뒷담화의 대상도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 담임선생님께 혼나면서 ‘이런, 작전에 당했다’라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미안하다면 사과하는 인간도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순진한 척, 뒤로는 상사 험담을 하는 걸 전략적이라고 표현하는 마음이 오히려 무섭다. 당시 상처가 흉터처럼 아물고 가끔 기억이 나지만, 더는 아프지 않다.
* 뒷담화는 표준어가 아닙니다. 다른 단어로는 대체할 수 없어서 그냥 썼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는 맞춤법 오류가 10건 있습니다.
** 본 글에 등장하는 인물, 묘사는 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