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에는 ‘진실의 입’이라는 원형 석판이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은 해신 트리톤의 얼굴이 새겨진 석판의 입안에 손을 넣었다가 겁을 먹고 도로 빼낸다. 거짓말을 하면 트리톤이 입을 쾅 닫아 손목을 잘라버린다는 전설 때문이었다. “주말에 뭐 할 거니?”라는 질문에 대답할 때마다 가녀린 양처럼 손을 덜덜 떨던 연애시절이 있었다. 선배가 묻는 말에는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이 몸을 조종했다. 동시에 사실대로 말하면 가십거리가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나중에 선배가 알려줬다. 실은 무슨 대답을 하든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고. 그냥 ‘밥 먹었니’처럼 건네는 말이라는 거다.
보통은 퇴근하고 어딜 가는지 주말에 뭘 하는지 물어볼 일이 없다. 원치 않는 관심이 비난보다 두려워서 남에게도 묻지 않는다. 누가 봐도 한창 놀 때인 막내 직원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몇 달째 ‘기본 사진’인 이유. 그 사람과 내가 충분히 친밀하지 않기 때문이리라.(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상대에 따라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 사내 정보보안의 기초이자 기본은 사생활 보호라고 생각하는 본인으로서는 웃프면서도 뿌듯하다. 이렇게 서로에게 무관심한 요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관심 없는 상대에게 질문을 건넬 수 있는 건가? ‘주말 일정 확인’ 질문의 의도를 알려준 선배 덕분에 ‘질문은 상대에 관한 관심이다.’라는 상식이 뒤집어졌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유명인이 TV에 나와서 한 말은 온 동네 커뮤니티와 SNS에 ‘캡처 짤’로 돌아다닌다. 유튜브 앱은 아이유가 얼마나 성숙하게 멘탈을 관리하는지 보라고 썸네일을 들이민다. 수요 없는 공급임에도 없던 관심이 생긴다. ‘나중에 볼 동영상’으로 슬그머니 저장해둔다. 자신의 멘탈이 안녕한지 또는 부모님께서 저녁을 드셨는지는 너무 먼 이야기다.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무관심하지만, 상관없는 사람일수록 일거수일투족이 더욱 유의미하다. 따라서 주말에 뭐 할 거냐는 선배의 질문 또한 그냥 옆에 사람이 있으니 하는 말이다. 파티션 너머 선배의 안경알에 비친 인터넷 브라우저 창이 열심히 위아래로 움직인다.
금요일 오전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부푼 꿈을 이야기하면 팀장님께 실례겠지. 이런 대화는 메신저로 하면 좋으련만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다. 아이고 의미 없다. “죽은 듯이 잘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듣기에는 참으로 생기 없는 답변이다. 벌써 수요일부터 번 아웃이 온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있는 한 최고로 설레는 계획을 밝힌 셈이다. 어디를 가지 않아도 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만 이 기쁨을 안다. 토~일 내내 칩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다. 만날 사람은 없다. 주말을 함께 보낼 사람이 없다는 쓸쓸함을 편안함이 뒤덮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제는 만날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든다.
혹자는 자취하는 사람의 생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특히 혼자 사는 남자를 보는 시선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언젠가 전 부서에서 일할 때 팀장님께 왜 주말에 부모님 댁에 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들었다. 이유가 가관이다. 남자 혼자 살면 양말이나 제대로 벗어놓고 빨래를 하겠느냐는 말이다. 더러운 빨랫감을 닷새 동안 쌓아놨다가 금요일 저녁이 되면 세탁 주머니를 들고 본가에 가서 어머니께 빨아달라고 내민다. 가사 능력이 없는 가부장적 중년 남성이 보는 독신남은 이런 이미지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다행히도 생존에 필요한 생활력을 보유한 남성으로서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느라 여념이 없다.
주말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은 고작해야 동네 서점 1회 방문, 혼자 먹는 외식 1회, 카페에서 책 읽으며 커피 마시기 1회 정도다. 월급 개미의 소소한 기쁨이랄까. 문제는 이러한 호사를 누리려면 집 밖을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그전에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해야 한다. 적어도 외출하고 돌아와서 만큼은 청소기를 돌리는 등의 노동을 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게 완벽한 상태에서만 외출하려는 이상한 고집 때문에 주말 일정이 점점 늦어진다. 분리수거나 쓰레기 버리기 같은 일이 늘어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나가기 전에 다 해야 하는데. 두 번 외출하고 싶지 않음에도 집 밖에서 비로소 가사노동을 완결 지을 수 있으니 말이다.
배달업체 라이더처럼 치밀하게 동선을 짠다. 지하에 내려가서 분리수거를 하고 다시 올라와 1층에서 쓰레기를 버린다. 이후 건물 화장실에 들러 손을 씻는다. 그다음 카페에 바로 갈 것인가, 아니면 점심을 먹으러 갈 것인가? 카페에 간다면 가방에 책을 몇 권 넣을 것인가, 글쓰기용 노트북은? 서점은 갈 수 있을까? 주말 계획은 하나라도 제대로 실행할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만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만 ‘나와의 약속’으로 가득 찬 주말 일정 때문에 벌써부터 어쩐지 살짝 피로감을 느낀다. 결국 분리수거를 하고 쓰레기를 버린 다음 집에 잠시 들르기로 자신과 타협한다. 이후에 다시 간소하게 짐을 꾸려서 외출하기로 정한다.
책상에 앉아 스탠드 등을 켠 채로 일요일 자정을 넘겼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지만 할 일 없이 보내지도 않았다. 생수 한 모금만큼 간절히 바랐던 주말인데 하릴없이 꼴깍 목구멍으로 넘겨버렸다. 새벽이 지나면 모두들 7일 전의 그 얼굴로 잘 쉬었냐며 서로 인사를 주고받을 것이 틀림없다. 금요일쯤에는 지난 주말의 기억을 잊은 채 또다시 서로의 계획을 물어보지 않을까. 인터넷 서핑을 열심히 하는 선배의 질문에 나는 또 죽은 듯 잘 거라고 대답할 것이다. 무엇을 할 거라는, 했다는 진실과는 상관없이 토요일과 일요일을 보내고 또 출근하는 삶. 현상유지와 유지보수의 연속인 삶을 점검하고 싶은 마음에 이번 주는 하루 휴가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