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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May 17. 2021

불확실한 행복보다 확실한 불행

행복을 추구하고 싶은 사람이 마주해야 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에게 카카오톡으로 고백해본 적, 있다. 없다? 카톡 고백을 하면 적어도 두 번의 파동이 온다. 스마트폰 진동이 울릴 때 한 번. 한참을 망설이다가 '생각해볼 시간을 달라'는 내용의 답장을 확인할 때 또 한 번. 생각할 시간이라니. 30년 전통의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의하면 생각해보겠다는 대목에서 이미 부정적이다. 가슴이 철렁한다. 수 시간이 지나면 차라리 미안하다고 빨리 말해주길 바라는 자신을 발견한다. 불확실성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빨간색과 파란색 막대가 분 단위로 오르고 내리는 주가 차트처럼 마음이 요동친다.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건 시장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안 좋은 소식이라도 확실한 게 낫다. 미국 시장을 놓고 LG에너지솔루션과의 배터리 소송에서 패한 SK이노베이션은 요즘 오히려 상황이 좋다. 올해 4월 양사는 SK가 LG에 2조 원을 지급하고 향후 10년 간 법적 분쟁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비록 SK가 졌지만, 증권사들은 하나같이 SK이노베이션의 목표 주가를 올렸다. 앞으로의 법적 분쟁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장기적 호재(좋은 재료)다. 경영이든 사랑고백이든 무엇이든 역시 확실한 게 좋다.

 

Jess Vide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인생에 있어서도 이처럼 불확실성을 털고 가는 것이 호재가 될 때가 있다. 막연히 행복한 삶을 꿈꾸면서 구체적인 방법은 모른다. ‘이대로 살다가 어떻게 될까?’하는 불안에 휩싸인다. 많은 직장인이 근무 중 고개를 숙이고 폰으로 주식창을 본다. 거래처 부장님의 부동산 떡상을 부러워한다. 화장실에 들어가 코인 차트를 본다. 로또 1등이 몇 번씩 나온 판매점 앞은 퇴근시간마다 항상 붐빈다. 임금상승률이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하는 시스템 내에서 회사원의 경제적 자유 달성은 요원하다. 애초에 자유를 꿈꾸는 것 자체가 모순인 신분이다.


가리려 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


 로마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가 말했다.  불안의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 출근하기 싫다. 인간관계가 괴롭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 몇 살까지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오로지 돈 때문에 살아야 할지 두렵다. 일과 돈 때문에 고민하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로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지 않다. 불편하지만 마주하고 넘어가야 하는 진실이다. 행복해지는 새로운 방법은 솔직히 모르겠다. 대신 불행한 부분을 조금씩 개선하거나 보완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다. 불확실한 행복보다 확실한 불행을 인식할 때 발전의 여지가 있다.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오래전에 끊은 담배가 당긴다. 주말 밤 10시를 넘겨 처음으로 외출했다. 그조차 분리수거를 하기 위함이다. 한바탕 빨래를 마치고 나니 집을 나설 의욕이 생겼다. 세탁기를 돌리기 전에는 구석구석 물걸레질을 했다. 걸레로 바닥을 밀기 전에는 청소기로 고양이 털을 빨아들였다. 한 가지 일을 다 해야만 다음 일을 할 수 있는 성격이다. 생활이 피곤하다. 뭐든지 역순으로 생각한다. “연애는 언제 하려고?”, “그러다가는 결혼할 시기를 놓칠 텐데?” 모든 일에는 다 순서가 있다. 집 청소를 해야 분리수거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외출할 마음이 든다. 결혼보다, 연애보다 앞서는 고민 때문에 토요일 내내 소라게처럼 집에만 있었다.


 좋은 사람을 바라기 전에 먼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다는 개념은 포괄적이다. 요즘따라 만화책을 펼치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란다.” 따위의 대사가 눈에 들어온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삶의 가치를 능동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타인의 사랑을 요구할 설득력이 부족하다. 비자발적 비혼의 이유는 단지 집, 돈 때문은 아니다.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싶다. 불행을 대가로 급여를 받는 인생은 현상유지와 유지보수의 삶에 불과하다.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계속 자문해야 한다. 방향성이 확실해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자신의 불행을 확실히 마주해야 한다.


 원치 않는 일로 ‘월 1,000만 원’ VS 좋아하는 일로 ‘월 250만 원’. 가끔 챙겨보는 유튜브 채널에 설문이 올라왔다. 당연히 월 천만 원을 선택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맞는 답인가 싶다. 월요일 이브를 앞두고 금연 중단을 고민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삶, 그래도 월 천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려나? ‘타인의 문제를 해결해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불변의 진리로 생각해 보면 하는 ‘일’은 틀리지 않았다. ‘회사원’인 게 문제다. 아무래도 직장인인 게 죄는 아니나, 직장인인 것 만으로는 부족한 세상이 되었다. 말하자면 이런 소모적 논쟁과 사랑을 병행하고 싶지 않다. 삶의 방향성만이라도 확실해질 때에나 고려해볼 만한 선택지이다.


Jess Vide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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