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매매범으로 몰릴뻔한사연

요즘 직장인은 일도 하고 코인도 한다

by 정어리


"혹시.. 비트코인 같은 거 사시려는 건 아니죠?"

은행원이 물었다. 그냥 자유입출금 계좌가 필요하다고 오른쪽 아래로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잠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농협 정문을 등지고 서서 비에 젖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다. 신분증명이 안 된단다. 잠긴 계좌를 열려면 신분증 주소를 갱신해오란다. 가진 거라곤 옛날 부모님 댁 주소가 적힌 운전면허증 하나뿐. 정식으로 은행과 거래하려면 이 지역 사람임을 증명해야 한다. 번거롭다고 포기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20분 후 면허증 뒤에 작은 주소지 스티커를 붙여왔다. 다시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이번에는 노련한 직원 대신 젊은 계장이 친절히 계좌를 열어줬다. 이런, 벌써 점심시간이 끝나간다. 오늘은 계좌 하나 건졌다.


살아있는 농협은행 계좌 한 줄의 의미. 암호 자산 거래소에 원화를 입금할 수 있다는 뜻이다. 코인 거래소마다 원화 입금이 가능한 은행 계좌가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업비트는 K뱅크, 빗썸과 코인원은 농협과 제휴를 맺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 코인 거래자는 돈(고객)인가, 계좌를 거쳐가는 환승객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코인원 입금은 본인 농협계좌만 인증하면 어느 은행에서나 가능했다. 농협에 꼭 예금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행정력만 축내는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비트코인 같은 걸 살 거냐'는 질문이 마치 "혹시 코인충이세요?"처럼 들려서 화들짝 놀라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왜 코인을 투자한다고 하지 않고 산다고 할까. 아직 코인 매매를 하는 사람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사실이 그렇다. 당장 친구에게 코인 투자를 하겠다고 말해보자.


코인 뉴스 댓글창은 비난 7, 부러움 3 정도 섞인 감정 쓰레기통 같다. 행여나 '암호화폐'라는 말을 잘못 썼다간 코인이 어떻게 화폐냐는 비판부터 시작해서 '망해라', '안타깝다', '한강에나 가라', '도박쟁이' 같은 저주를 받는다. 도대체 코인이란 무엇이길래 누군가는 돈을 복사하고 누군가는 -80%, -90%를 맞고 죽고 싶다는 글을 올리는지 궁금했다. 매일 몇 번씩은 자연스레 코인 뉴스에 눈길이 간다. 커뮤니티 유머 게시판을 봐도 코인으로 큰돈을 벌고 퇴사했다는 직장인 소식은 클릭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읽은 글에서는 코인 덕분에 퇴사했다는 두 사람을 봤다. 한 사람은 재택근무 중 자리이탈과 업무 중 잦은 스마트폰 사용으로 권고사직을 당한 사람이다. 다른 한 사람은 도지 코인 투자가 대박이 나서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둔 전직 골드만삭스 임원이다.


도지 코인 (출처 : Дмитрий Шустов님의 플리커)


30대 직장인과 전직 골드만삭스 임원. 한 명은 웃음 터지는 유머의 소재가 된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여러 의미로 탄성을 부른다. 역시 기존 금융권에 있는 사람들이 더하다. 겉으로는 코인 투자는 투기다, 광풍이다. 비이성적이라 비판한다. 뒤로는 조용히 자기 몫을 챙긴다. 나 역시 직장에서는 주식이니 코인이니 하는 이야기에 입을 다무는 편이다. 한편으로 몰래 시세 창을 확인하지도 않는다. 국내 주식 투자하는 사람은 출근 후 9시가 되면 회사 화장실에 한 명씩 들어가 문을 닫고 한숨을 쉰다. 해외주식 투자하는 사람은 22시 30분, 23시부터 열리는 미국 증시 체크하다가 다음 날 좀비처럼 출근한다. 코인 투자는 장 시작과 장 마감이란 개념이 없다. 다행히 나는 직장생활의 피로감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주식과 코인을 투자해도 잠은 잘 잔다. 피곤해서 투자한다.


'제발 이번 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인생 역전해보자.'는 심리에 매우 공감한다. 요동치는 그래프를 보면 눈이 돌아간다.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는 단타 매매로 두 달만에 억대 수익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솔직히 부럽기 그지없다. 투기든 투자든 시간과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9시부터 18시까지 원화를 채굴하는 월급 개미는 한눈팔 시간이 없다. 당장 내 생존을 결정하는 곳은 직장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바보라는 공공기관에 다니면서도 이해가 안 되는 게 두 가지 있다. 첫째, 어떻게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둘째, 사기업은 대체 얼마나 업무강도가 센 것인가이다. 점심시간과 퇴근 후에는 폰을 무음으로 해놓고 회사원 스위치를 끄려고 최선을 다한다. 요즘은 하루 한 포씩 홍삼을 짜 먹으며 저녁시간에 글 쓰고 공부하고 책을 읽는다. 칼퇴근을 해도 삶은 고되다.


몬트리올을 걷는 도지들(출처 : Pikawil님, 위키피디아 커먼)


아무리 회사일이 지겹더라도 충동적으로 퇴사하지 않는다. 팩트는 회사원 외에 먹고 살 재주가 없다. 다른 관점에서 회사원은 최소 20억 이상의 가치를 지닌 고급 노예다. 세후 연봉이 2천만 원인 어떤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쉬운 예를 들기 위해 너무 낮게 잡았다. 이 사람의 연봉은 은행에 20억 원을 예치하고 받는 연 이자와 같다. 초저금리 시대를 감안해서 연이자율을 1%로 잡았다. 금리가 낮을수록 회사원의 가치는 올라간다. 연봉이 4천만 원인 사람은 예치금 40억 원을 은행에 넣어둔 것과 같다. 와우!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다. 이렇게 정신 승리하며 끝까지 버틸 생각이다. 농협에서부터 사무실까지 지하철 역 한 정거장 거리. 정장을 펄럭이고 구두 신은 발로 사무실까지 달렸다. 숨을 헐떡이며 소매를 걷고 다시 오후 한 시부터 업무에 집중한다. 나는 떳떳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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