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단점을 극복하는 방법 ①
내향인은 한 마리의 예민한 고양이를 닮았다. 사소한 자극도 몹시 신경이 쓰인다. 사무실 등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내향인의 예민한 감각을 거슬리는 자극들이 가득하다. 볼펜을 딸깍거리는 소리가 신경을 긁는다. 앞자리 후배가 아까부터 와드득 소리를 내며 얼음을 씹어 먹는다. 복도에서 마주친 상사가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온종일 신경이 쓰인다. 사람들의 잡담 소리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옆에서 전화를 받던 동료가 기분이 좋지 않은지 투덜거리면 나한테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불편하다.
미국의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 박사는 사람 다섯 명 중 한 명을 HSP라고 밝혔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의 뜻은 ‘매우 예민한 사람’이다. 민감성을 타고난 사람을 뜻한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HSP 증에서도 70%는 사회적으로 내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일레인 아론, 2012) 또한, 내향인은 피질 각성 정도가 높다.(Eysenck, 1967) 이 때문에 같은 자극을 받아도 내향인이 크게 동요한다. 뇌가 항상 깨어 있으므로 쉽게 피곤해진다. 즉, 내향인은 자극에 빠르게 반응하는 뇌를 가진 것도 모자라 선천적으로 예민하다.
예민한 사람은 타인의 헛기침, 잡담, 웃음, 발걸음까지 신경 쓰일 일도 참 많다. 다른 사람의 별 생각 없는 행동도 혼자 분석하며 속을 태운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유난스럽고 속 좁은 사람처럼 보일까 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는 대범함과 소심함의 차원이 아닌 자극 민감도의 차이다. 앞서 제롬 케이건 교수의 자극 반응 실험에 참여했던 두 아기를 떠올려보자. 풍선이 터지는 소리에 울음을 터뜨린 아기는 내향적 기질을 타고났다. 성인이 되어서도 레크레이션 시간에 풍선을 터뜨린다거나 하는 일이 달갑지 않다. 반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아이는 ‘본 투 비 외향인’이다. 성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로 자극에 무덤덤하다.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해 괴롭다. 말과 글로 알려주지 않으면 남들은 내 기분이 어떤지 모른다. 말수가 적고 조용한 내향인의 기분은 표현하지 않으니 더욱 알기 어렵다. 원래도 감정 표현에 인색했지만 코로나19로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된 이후로는 눈으로 말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표현에 그만큼 제약이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민감하고 표현이 서툰 탓에 인간관계가 더욱 조심스럽다. 혹시 ‘나만 불편한가?’ 궁금해하면서 혼자 끙끙 앓고 있지는 않은가?
수많은 자극과 타인을 신경 쓰며 앓고만 있으면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 예민한 내향인은 스트레스 부자다. 외부의 사소한 자극에 빠르고 격하게 반응한다. 내향인은 평소에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내면이 어떤지 잘 알 수 없다. 겉보기에 온순한 내향인의 내면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다. 하루하루 축적된 스트레스와 긴장이 계속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몸과 마음에 병이 난다. 스트레스를 묵묵히 견디며 자신을 방치하면 나중에는 되돌리기에 너무 늦을 수 있다. 스트레스 관리에 특별한 비법은 없다. 문제를 마주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자극의 원인이 되는 타인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절을 떠날 수 없으므로 중이 자신을 바꾸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잠깐씩이라도 연습을 통해 어떤 것에라도 집중해보자.(도리스 메르틴, 2016) ‘싫은 사람의 얼굴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차라리 관심을 다른 쪽에 돌리자. 차분하게 호흡을 고르자. 키보드를 치고 있는 손끝의 감각을 느껴보자.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는 편한가? 허리가 굽지는 않았는지 살피며 자세를 고쳐보자. 커다란 투명 벽이 내 주위를 둘러싸서 외부와 차단된 상태라고 상상해보자. 지금 제일 중요한 일 한 가지에만 집중하면서 다른 데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연습하자.
두 번째로 성가신 자극을 차단하자. 사무실에는 주의력을 빼앗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듀얼 모니터, 멀티 작업창, 메신저 대화창, 스마트폰의 진동, 전화 벨소리가 우리를 괴롭힌다. 한 곳에 주의를 기울이면 금방 다른 곳에 집중해야 한다. 과거 원시시대에는 주의 분산 능력이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 사냥을 위해서나 적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서나 필요했다. 오늘날은 온갖 전자기기와 멀티 태스킹이 우리의 주의력을 갉아먹는다. 가능한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고 업무를 단순화하자. 전화와 메신저도 적당한 핑계를 대고 나중으로 미루자. 잠깐 귀마개를 쓰는 것도 좋다. 업무에 집중하고 있으니 방해하지 말라는 신호를 주는 효과도 있다.
세 번째로 카페인을 줄여보자. 줄이기 힘들면 디카페인으로 바꿔보자. 커피는 한국인의 ‘체력포션’(게임에서 체력을 채우는 약)이다. 모닝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고 점심을 먹은 후에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오후 네 시쯤 되면 졸음이 밀려온다. 커피를 한 잔 더 마신다. 커피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흔한 모습이다. 한국인은 1년에 353잔의 커피를 마신다. 이는 세계 평균인 132잔의 3배에 달한다.(박용정, 이정원, 한재진, 2019) 문제는 카페인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연구에 의하면 과도한 커피는 불안감, 예민함, 수면장애를 부른다. 카페인이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하고 수면 유도물질인 아데노신의 전달을 방해하기 때문이다.(Steven E. Meredith, Laura M. Juliano, John R. Hughes, and Roland R. Griffiths. 2013)
네 번째, ‘착한 왕따’를 자처하지 말자. 예민함에 지친 나머지 부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경우가 있다. 본인을 둘러싼 환경과 사람이 선량한 피해자인 자신을 괴롭힌다고 착각에 빠진다. 옆자리 동료들이 이야기하며 웃으면 보통은 ‘재미있는 일이 있나 보다’ 하고 만다. 예민한 사람은 ‘나는 이렇게 힘든데 저 사람들은 시끄럽게 떠들다니 너무하다.’라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한 뒷이야기를 한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스스로 ‘불쌍한 사람’을 자처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자. 정 신경이 거슬리면 조용히 잠시 자리를 비우고 바깥 공기를 마시자. 급한 일이 아니면 대화에 참여해보면 어떨까? 타인과 거리를 둔 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되는 일은 없다.
평소 예민한 성격이라 힘들다면 혹시 몸이 너무 피곤한 상태가 아닌지 돌아보자. 우선 잠은 충분한지 생각해보자.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예민해지기 쉽다. 자신의 최적 수면 시간을 파악하라. 몇 시간을 자야 컨디션이 가장 좋은가? 되도록 밤늦게까지 잠을 미루는 생활양식을 바꿔야 한다. 놀이가 아닌 업무도 마찬가지다. 급하거나 밀린 일이 있더라도 잠을 줄이면서까지 일을 하는 건 자신을 갉아먹는 것과 같다. 부족한 잠은 낮잠으로 보충해도 좋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나 점심시간에 잠깐만이라도 눈을 붙여보자. 충분한 수면과 휴식이야말로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회복탄력성과 기초체력을 늘리는 방법이다.
유쾌한 기분으로 마음의 면역력을 높여 보자. 하루 중 얼마나 자주 기분이 좋다고 느끼는가? 얼마나 자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가? 유쾌하고 긍정적인 감정은 스트레스를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행복한 기분을 느낄수록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낮아졌다.(Andrew Steptoe, Jane Wardle, and Michael Marmot, 2005) 되도록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웃을 수 있도록 해보자. 회사를 일하러 다니지 놀러 다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다 행복하자고 하는 일 아닌가? 지인과 동료에게 농담을 건네며 유머 감각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자. 때때로 웃긴 자료를 보며 딴짓을 하자. 일하다가도 몰래 기분 좋은 상상을 하자.
“저, 죄송하지만 신경이 너무 거슬려서 그러니 조용히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 자동차 소음, 다리를 떠는 상사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다. 뇌 과학자 다카다 아키카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도망치라고 말한다. 최선의 해결책은 스트레스로부터 가능한 멀어지는 방법이다.(다카다 아키카즈, 2018) 직장을 예로 들면 무서운 상사나 선배가 휴가를 쓴 날은 얼마나 좋은가? 역으로 자신에게도 하루 휴가를 선물하고 평온함 속에서 마음을 돌보자. 또한, 코로나 19는 합법적으로 재택근무를 할 좋은 기회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밀집된 공간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한 번쯤 꼭 느껴보자.
마지막 방법은 ‘연민의 마음’ 갖기다. 가끔 사느라 심신이 지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괴로울까….” 불교 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괴롭다고 말한다. 연민은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마음이다.(잭 콘필드, 2020)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친구나 동료에게 그 사람을 욕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그러나 분노는 또 다른 괴로움을 부른다. 실컷 욕을 해도 마음은 개운하지 않다. 여전히 화가 쌓여있다. 괴로운 나도, 나를 괴롭게 하는 그 사람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자. 혐오 대신 연민을 할 때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다.
예민한 내향인은 오늘도 묵묵히 분투하고 있다. 사람과 환경에 둘러싸여 온갖 자극을 흡수하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이렇다 할 대응도 없이 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되찾고 싶다면 스트레스를 무시하지 말자. ‘예민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만히 참지 말고 나름의 노력을 해야 한다. 주의를 다른 데 돌리거나 자극을 피하는 등 마음을 다스리는 다양한 시도를 해보자. ‘내가 괴로운 만큼 저 사람도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하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자.
일레인 아론. (2012.02.12.). Time Magazine: "The Power of (Shyness)" and High Sensitivity. Psychology Today. URL: https://www.psychologytoday.com/intl/blog/attending-the-undervalued-self/201202/time-magazine-the-power-shyness-and-high-sensitivity
Eysenck, H. J. (1967). The biological basis of personality. Springfield, IL: Thomas
도리스 메르틴. (2016). 혼자가 편한 사람들(pp.220). 비전코리아
박용정, 이정원, 한재진. (2019.07.12.). 커피산업의 5가지 트렌드 변화와 전망 – 국내 커피산업 약 7조 원 규모로 성장!. 경제주평 19-25(통권 848호).
Steven E. Meredith, Laura M. Juliano, John R. Hughes, and Roland R. Griffiths. (2013). Caffeine Use Disorder: A Comprehensive Review and Research Agenda. Journal of Caffeine ResearchVol. 3, No. 3. DOI:https://doi.org/10.1089/jcr.2013.0016
Andrew Steptoe, Jane Wardle, Michael Marmot. (2005). Positive affect and health-related neuroendocrine, cardiovascular, and inflammatory processe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May 2005, 102 (18) 6508-6512; DOI: 10.1073/pnas.0409174102
다카다 아키카즈. (2018).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겁니다(pp.50, 63). 매경출판.
잭 콘필드. (2020). 마음이 아플 땐 불교 심리학(pp.42-61). 불광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