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을수록 어려지는 2가지 케이스
"어이구~ 우리 정우가 취직을 하더니 아주 의젓해졌구나. 숟가락 젓가락도 챙겨주고."
회사에 취직하고 부모님께 처음 점심식사를 사드리던 날. 자동으로 수저와 물티슈를 척척 세팅하고 컵에 물을 따르는 아들 모습을 보고 대견해하시던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난다. 찌개와 반찬 그릇이 밥상 위에 닿는 소리, 숟가락과 젓가락을 올려놓는 소리가 딸깍 딸깍 날 때까지도 방에 있다가 "밥 먹어라." 소리에 마지못해 방에서 기어 나오는 게 당연한 모습이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은행 번호표를 뽑듯이 티슈부터 재빨리 한 장씩 뽑고 수저를 깐다. 사회생활을 하는 누구나 당연하게 체득하는 식사 예절이다. 사수가 귀띔해준 적도 없다. 상급자가 "식당에 오면 이렇게 하는 거다."라며 알려준 적도 없음을 생각하면 유별나다. 누군가에겐 즐거운 일탈일지도 모를 외식이 귀찮은 일거리로 느껴지는 이유의 절반을 차지한다. 나머지 절반은 '메뉴 큐레이션'이다. 모처럼의 외식이라면서 막내 먹고 싶은걸 먹자고 한다. 이야말로 부동산에 비유하면 '마이너스 프리미엄'이다. 차라리 거세당하고 싶은 선택권. 메뉴를 돌고 돌아 결국 부장님 입맛을 따라간다. 회사 주변 식당은 모두 푸드코트였으면 좋겠다.
자식 된 도리상 수저 세팅은 기본 예의지만 서도, 손 하나 까딱 않는 테이블 풀 세팅은 부모님마저 부담스러워하실 때가 있다. 물컵이나 젖은 수건은 당신께서 직접 챙기시곤 하는데, 그때마다 집안 예절과 사회생활 간에 미묘한 차이를 느낀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 간에라도 과한 챙김은 고마움보다는 민망함이 더 크다고나 할까. 외가에서 자랐던 유아 시절, 외할머니한테 큰엄마쯤 되는 어르신이 가끔씩 찾아오셨다. 나에겐 '노(老) 할머니', '왕할머니'셨던 그분을 외할머니가 극진히 모시던 모습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오버랩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각별히 모시는 모습은 어른이 어린아이를 돌보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아나 노인, 상급자, 권력자 모두 본질 자체는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 입장이지 않은가. 특히 정치권에서는 '아랫사람'의 '규격 외' 의전과 사고방식이 밈(meme)이 되기도 한다. 정수기 물을 직접 떠 마신다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심성이 곱다.'며 모 정치인을 칭찬하던 사진과 글이 기억난다. 우천 속에서 야외 브리핑을 하는 모 공직자의 뒤에서 10분 동안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치던 직원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존경을 담은 자발적 복종이든, 권력관계에 따른 굴종이든 내게는 의전을 받는 쪽이 어쩐지 '보살핌의 대상' 같다.
애초에 왜 하급자는 상급자를 모셔야 하는 걸까?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보필하고 존경을 표하기로 한 사회적 약속에 의문을 갖고 있자니 부적응자가 된 기분이다. 한 번도 권력자의 위치에 있어본 적이 없으니 머리 위에 사는 사람들의 고민은 잘 모른다. 다만,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친절과 존경을 당연한 듯이 누리고 싶지는 않다. 남이 모든 걸 해주는 생활을 당연하고 익숙하게 느끼는 어른이 되어간다는 일은 참으로 두렵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서 중년기를 거쳐 노인이 되면 종국에는 아이로 돌아간다는 말이 이런 경우이지 않을까 싶다.
일상생활 속 의전이나 예절뿐만이 아니라 업무에서도 익숙한 방식을 경계하려 한다.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으로 레버리지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혼자서 모든 일을 잘할 수 없으므로 품이 많이 드는 일은 외주를 줘서 전문가에게 맡길 때 더 잘할 수 있다. 문제는 레버리지의 정도다. 콘텐츠를 발행하는 업무를 하는 나는 기획과 제작에 어느 정도 관여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 깊다. 과거에는 '용역을 맡기고 잘 관리하는 사람이 일잘러'라고 배웠다. 요즘에는 '용역비와 직급, 회사마저 떼어내면 나라는 사람은 뭔가?'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예산은 줄어드는데 카드 뉴스 한 편도 돈이 없으면 만들 수 없다니.
블로그 글, 유튜브 영상도 그렇고 용역사에 의뢰하지 않으면 직원으로서 만들 수 있는 게 없다. 억지로 만들면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올 것이다. B급 결과물이라도 직접 나서서 만들자니 책임질 자신이 없다. 직장인을 위한 강의 사이트나 뉴스레터를 보면 소규모 스타트업 마케터가 이리저리 구르며 감각 있는 콘텐츠를 만든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외주를 맡길 정도로 회사에 돈이 많은 게 개인의 성장에는 오히려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그렇다고 대기업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 어쩌면 풍족한 예산보다 중요한 건 직원의 역량이다. '전문가도 아닌데 어떻게'라는 전제를 깔면 어느 것도 선뜻 저지르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파릇파릇한 신입사원 정도는 되어야 총대를 메고 뭔가 해보겠다고 나설 때 '요즘 애들 감각을 믿어보자.'라는 식의 뒷심이라도 얻을 수 있다 대리가 되고 과장이 돼서 '요즘 것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하면 왠지 세상 물정 모르는 '곧 중년' 아저씨의 객기라고 욕먹을 것만 같다. 나조차 나를 믿지 못하는 이럴 때는 승진해서 얻은 직급이 경로우대증처럼 느껴진다. 당장 나 자신만 보더라도 부서의 막내 사원과 10년의 나이 차이가 난다. 이런 내가 SNS를 이렇게 저렇게 해보자며 의견을 제시할 때 후배는 어떤 느낌일까?
말로는 홍보 마케팅 전문가 코스프레를 누가 못 할까. 한정된 예산으로 올 한 해를 잘 꾸려나가야 하는 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 인스타툰과 이모티콘 강의를 배워보기로 했다. 마침 올해부터 회사에서 새롭게 캐릭터를 활용한 홍보를 시작한다. 당장 뭐부터 올려야 할지 아이디어도 없거니와 SNS에 게시물 하나라도 올리려면 한 컷당 얼마가 들지 예산부터 생각해야 한다. 혹시 아나? 회사 일을 한다는 핑계로 올해는 인스타툰 작가로 또 하나의 가지치기가 가능할지. 보도자료와 스피치 업무를 하다가 글쓰기의 길에 발을 들이고 책 출판까지 한 전과가 있으니 안 되리라는 법도 없다. 사심으로 접근할 때 업무에 딥 다이브 하기도 수월하다.
언제까지고 같은 회사 사람으로 알고 지낼 줄 알았는데 작년 말에 갑자기 로스쿨에 붙었다며 퇴사해버린 후배와의 대화가 생각난다. 한 번은 지인들에게 코딩과 같이 새로운 걸 배워보는 게 어떻냐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각자의 미래 먹거리를 찾아보자는 의미에서다. 지인들은 동의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라는 말 자체를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사람은 원래 변화를 싫어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현상 유지하는 것도 벅찬데 자꾸 뭘 하려고 든다니 싫을 수밖에. 사실 캐릭터 드로잉도 '한 번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만 했던 게 작년 초부터였다. 그때는 몰래 책을 쓰느라 바빴지만, 올해는 또 다르다.
해가 지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자꾸 철 없이 이것저것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 나이를 먹을수록 어려지는 두 번째 케이스다. 적어도 점점 하고 싶은 일이 줄어만 가는 첫 번째보다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