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어리 Jan 25. 2022

집에 가면 컴퓨터 하다가 자요

퇴근하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시나요?

"집에 가면 뭐해?"라는 질문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솔직하게 대답한 적이 없습니다. 집에 TV가 있을 때는 "TV 보다가 자요." TV를 없앤 지금은 "컴퓨터 하다가 자요."라고 심플하게 답합니다. 


'자, 여기 나왔습니다.' 며칠 전 회사 화장실에서도 무심한 식당 주인처럼 대답을 내왔습니다. "컴퓨터?" 동기 형이 되물었습니다. "컴퓨터로 뭐 해?"라는 후속 질문이 들어올지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형은 핸드타월로 손을 닦더니 빙긋 웃으면서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손에 비누칠을 하며 거울을 봤습니다.


'제군, 우리가 이겼습니다!' 


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체득한 삶의 지혜입니다. 최대한 '사람 사는 거 똑같고 특별한 거 없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나는 별거 안 하다가 잠자리에 든다.'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뭉뚱그립니다.


신입사원 시절, 퇴근하는데 다른 팀 선배가 "어디 가?" 하고 물었습니다. "집에 가요."라고 대답했더니 선배는 버럭 화를 내면서 "아니, 누가 그걸 물어봤어?" 하고 성을 냈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 뭐하고 사는지 시시콜콜하게 알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던 때입니다.


'저는 지금 군자역에 소개팅을 하러 가는데요. 소개는 지인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식사는 근처 파스타집에서 할 예정인데요. 만나자마자 바로 밥을 먹기는 부담스러워서요. 일단은 가볍게 카페에서 먼저 만날 생각입니다.' 과연 그가 이 정도의 세부 정보를 원하는지는 알 길이 없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웃으며) 앗, 죄송해요. 지하철역에 가요."

여기서 지하철역이라 함은 선배와 제가 걸어서 5분 안에 도착할 회사 앞 역을 말합니다.

선배는 기가 차다는 듯이 더는 묻지 않았습니다. 또다시 저의 승리입니다.


이는 조금씩 쌓고 다져온 방어기제입니다. '지금 그거 할 때가 아니라 이걸 해야지.' 라며 이때다 싶어서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 솔직하게 '무엇인가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히면 '그걸 왜 하냐. 네가 그거 하느라고 정신이 팔렸구나.' 하면서 불순분자로 매도하는 사람이 제 삶에 침투하는 일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면 때로는 방역수칙을 엄수하듯이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큰 관심도 없으면서 물을 뿐입니다. 질문을 받았다고 해서 쉽게 남에게 자신을 열어젖히지 마세요. 정 말하려거든 상대의 진심에 관계없이 당신이 그 주제에 대해 떠들고 싶은가를 기준으로 이야기하세요. 남이 관심이 있든 없든 내가 하고 싶어서 한 말이므로 그렇게 상처받을 일도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퇴근하고 집에 가면 뭐 하냐면요… 컴퓨터 하다가 일찍 잡니다. 정말로 궁금하다면 나중에 댓글로라도 알려드릴게요. 당신은 어떤가요, 퇴근하고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시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금연 두 번 성공한 사람의 조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