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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Feb 07. 2022

브레이크 타임이 죄인가요?

유튜브판 골목식당 <장사의 신>을 보고 뜨끔해서 쓰는 글

유튜브판 '골목식당'인 <장사의 신> 채널을 즐겨본다. 은현장이라는 '장사의 신'이 의뢰를 받고 백종원처럼 장사가 잘 안 되는 식당을 찾아가서 무료로 컨설팅을 해준다. 2021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종영한 <골목식당>의 빈자리를 유튜브다운 현실감 있는 재미로 대신하며 초보 사장님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주로 출연하는 청년 사장에게 장사의 신은 반말과 비속어를 섞어가며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준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 같은 매력이 있는 채널이다. 음식 장사를 하지 않는 사람이 보기에도 배울 점이 있어서 본다는 구독자가 많다. 


최근에는 전주에서 닭볶음탕 집을 하는 30대 초반 사장이 나왔다. 영상에서 의뢰인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장사의 신에게 욕을 먹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보며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는 듯이 장사의 신을 거들었다. 일 매출이 10만 원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 아들이 부모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불만이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의뢰인은 죄인 낙인이 찍혀버렸다. 장사의 신은 매우 화가 났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어머니에게 하루라도 빨리 성장하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사연에 감동받아서 와봤더니, 의뢰인이 게으르고 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 밖으로 나온 의뢰인은 장사의 신에게 다시 쌍욕을 먹었다.


당장 의뢰인이 운영하는 닭볶음탕 집에 쳐들어가서 문제점을 하나씩 짚어보기로 했다. 바깥에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는 조잡한 외관이 눈에 보이는 흠이었다. 간 조절에 실패했다. 영상 촬영 중에 질문에 대답하느라 긴장해서 그렇지 원래 음식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닭볶음탕을 부르스타 위에 냄비를 올려서 내오지 않고 그릇에 서빙하는 문제도 지적받았다. 그밖에 비효율적인 조리방법 몇 가지가 개선점이었다. 브레이크 타임을 왜 만들었는지는 아까 어머니 앞에서 욕을 먹을 때 의뢰인이 말했다. 첫째, 손님이 없어서 우울했다. 둘째, 가끔씩 어머니 심부름을 해야 하다 보니 번거로워서 쉬는 시간을 정했다. 


영상 제목은 '유튜브판 골목식당 역대급 빌런을 만났습니다'였다. '역대급이 맞나?' 영상을 끝까지 보고 두 번 더 봤는데도 조금 의문이 들었다. 의뢰인은 오히려 단점보단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일단 홀이 깔끔했다. '왜 깨끗하냐?'는 질문을 들을 정도로 주방 청결관리도 잘하고 있었다. 메뉴 가격도 저렴했다. 닭고기 손질도 평균 이상으로 꼼꼼했다. 비계는 깔끔히 떼어 내고 닭을 삶은 다음 불순물이 담긴 물은 버렸다. 다른 집보다 큰 닭을 사용하는 점도 칭찬받았다. 내가 보기에 의뢰인은 나름의 열과 성을 다했음에도 좌절을 맛보고 우울감에 빠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성실한 사람 같았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 그러나 열심히 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길을 잃었다. 수십만 시청자 앞에서 쌍욕을 먹더라도 모멸감을 무릅쓰고 컨설팅을 신청할 용기와 배짱이 있다. 길바닥에서 장사의 신에게 '예전 같았으면 죽탱이가 날아갔을 것'이란 폭언을 듣고도 도망치지 않고 꿋꿋이 조언을 받아들였다. 이 정도 마음가짐과 행동이면 충분하지는 않아도 훌륭하지 않은가. 이쯤 되니 뭐가 그렇게 욕먹을 일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내가 문제인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장사의 신' 채널 유튜브 영상을 보는 이유는 재미가 반, 직장인으로서 자극을 받고 싶은 마음이 나머지 절반이다. 분명 취미로 시작한 글쓰기가 책을 한 권 낸 다음부터는 부업이 되었다. 생각과 관점을 담은 에세이 한 편을 쓰고 공개하는 일도 물건이나 음식을 파는 장사로 느껴진다. 애써 빚은 책에 대한 시장 반응이 싸늘하게 식어갈 때, 브런치에 올린 글이 '좋아요'나 댓글을 받지 못하거나 구독자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 때는 장사가 망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장사의 신 채널 영상을 보면서 '저런 사장님들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는 너무 안이했구나'라고 생각한다.


망신을 당하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볼 때도 있다. 매일 글 쓰지도 않으면서 저자 타이틀을 달고 책을 낸 나, 브런치를 개설하고 좋아한 나라는 작가. 음식 파는 일을 하겠다고 가게를 차렸지만 기본적인 손님 응대나 조리 방법, 마케팅 노하우를 몰라서 쩔쩔매는 초보 사장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한 번은 선릉에서 카페를 하는 자매에게 장사의 신이 '맨날 땡볕에서 전단지 뿌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절박한 건 아는데 이런 건 10년 전에나 하던 짓이다. 지금은 곰처럼 일하지 말고 여우처럼 일해야 돈을 번다.'라고 말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전국 서점을 돌아다니며 책 홍보 인쇄물을 돌리던 작년 말에 이 영상을 보고 '이게 과연 맞는 걸까' 하는 의문과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일종의 시청각적 타골(打骨) 마사지를 받는 셈이다. 남들과 똑같이 하려고 하지 마라.(개성 있는 글을 써라.) 뭐를 하나라도 더 해야 매출이 오를지 생각해라.(조회수가 오르고 공감받을 수 있는 글을 써라.) 변명하지 마라. 안 되는 이유를 찾아라.(글이 인기가 없으면 푸념하지 말고 개선점을 찾아라.)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지 깨달아라.(몸으로 뛰고 구르는 대신에 온라인 홍보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공부해라.) 하루 14시간, 18시간 일해라. 술, 담배, 여자를 멀리해라.(출근 전과 퇴근 후에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써라. 글만 써라.) 장사에 도움 되는 노하우를 나만의 사이드 프로젝트인 글쓰기에 대입해본다.


다 좋은데 나 자신이 이미 '쌍욕을 먹어도 마땅한 사람'인 것 같아서 숨이 막힐 때도 있다. 열심히 해도 일이 잘 안 된다면?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쉬고 싶다면? 장사의 세계에서는 바로 아웃이다. 낙오자가 된다. 번아웃이 와서 몸이 아프든지 정신력이 고갈되었든지 하는 불평은 해서도 안 되고 애초에 들어줄 사람이 없는 세계관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고 있는 위기감을 느낀다. 자영업자에게 휴업이 거의 폐업이나 같듯이, 갭이어를 갖자고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직장인도 마찬가지 처지다. 이 길 말고는 밟을 땅도 없는데 길을 잃은 느낌이 든다.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굴러 떨어지는 게 아닌가 두렵기도 하다. 떨어져도 괜찮은 높이인지는 직접 넘어지고 쓰러져봐야 알 수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닭볶음탕 집 사장님도 열심히는 살고 있지만, 너무 지쳐서 조금이라도 쉬고 싶은 마음에 브레이크 타임을 정했던 건 아닐까? 빡세게 일해서 돈 잘 벌면 당연히 좋다. '장사의 신'을 불러놓고 위로와 치유, 잠시 멈춤 같은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안다. 의뢰인 본인이 자신을 혼내달라고 부른 거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 '브레이크 타임이 있는 게 그렇게 비판받아 마땅한 일인가요?' 질문을 쉽게 쓰자면 "쉬고 싶은 게 죄인가요?"라고 할 수 있겠다. 거기에 조금의 뻔뻔함을 첨가하면 이렇다. "적당히 쉬면서 잘 먹고 잘 살 수는 없나요?"






* 장사의 신 영상 링크 : https://youtu.be/r5yMuFEMSxI


<장사의 신> 채널을 구독하고 <나는 장사의 신이다> 책도 산 은현장 작가의 팬임을 밝힌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다. 쉬고 싶고, 그저 쉬고 싶다. 동시에 열심히 살고 싶어서 쓴 글이다. 팬임을 인증하기 위해 다음 암구호도 남긴다. 육회는 육값어치, 세무사는 찾아줘세무사, 마라탕은 소림마라, 떡볶이는 마담순살떡볶이, 무료 포스는 페이히어, 돈가스 쌀국수는 오유미당, 닭발은 청춘국물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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