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 자신을 구출하는 방법
'무슨 일이든지 에너지와 의지가 바닥날 정도로 전력을 다 하지 말 것.'
델리스파이스가 '항상 엔진을 켜 둘게'라는 곡에서 노래했다. '기다릴게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 둘게.' 언제나 약간의 연료가 있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다. 에너지 레벨이 최소한 60%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아야 든든하다. 60%라니 너무 높은가? 말은 쉽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10%, 5%만 남으면 도무지 안심할 수가 없다. 아껴 쓸 생각에 급급하다. 통장 계좌 잔액의 자릿 수가 하나 줄면 급격하게 가난해진 느낌 탓에 부담스럽다. 삶을 100%로 음미하면서 살려면 그에 필요한 에너지 잔량을 유지해야 한다.
이른바 '요령'이 필요하다. 과유불급. 오늘만 사는 인생이 아니니 일도 적당히 해야 한다. 말로는 쉬운데 그 요령이란 걸 어떻게 부려야 하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업무를 하다가 보면 커피도 한 잔 해야 정신이 든다. 동료와 잡담도 나누고 바람도 좀 쐬는 시간을 갖는 게 좋다. 당연히 안다. 한편으로는 의문이 든다. 상당한 정도로 어떤 일에 몰입한 사람이 그 단 하나의 일 외에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력이 있을까? 남한테 '조금 쉬면서 하라.'라는 하는 말을 들으면 들었지, 본인이 스스로 '도대체 언제 쉴 수 있담?' 하며 일을 멈추기만을 기다리는 삶이란 얼마나 무의미한가. 이 정도로 무료하게는 살고 싶지 않았다.
일과 생활의 균형 좋다. 근무시간이 지나면 회사와 선을 긋고 온전한 개인으로 살고 싶다. 단, 일에 관해서라면 조금 결이 다르다. 자나 깨나 푹 빠져있을 수 있는 한 가지 주제가 있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심슨가족' 애니메이션에서 호머가 한 말처럼 다른 사람이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주기 때문에 돈을 받는다고는 하더라도 분명 누군가는 자기 일에 의미와 진심을 담으리라. 대개 그 정도로 몰입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는 일 중독이라고 욕을 먹기도 한다. 한편으론 그 워커홀릭 덕분에 세상에 울림을 주는 작업물이 탄생하기도 한다.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 브레이크 타임만 기다리며 일하는 사람과 집중하는 사람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짊어진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일주일을 4천 번 정도 보내고 나면 죽는다고 한다. 한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얼마나 아까운가. 월요일 출근길을 나서려니 '이번 주는 또 어떻게 보내야 빨리 지나가고 주말이 오려나?'라는 생각이 든다. 보내버릴 생각부터 든다. 붙잡으려는 생각 대신에. 인생 중 5일을 남한테 줘버리는 기분이 들어서 아깝다. 택배 박스를 뜯고 꺼내서 버리는 스티로폼도 아니고 7분의 5는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기에는 억울하다. 가만히 집에 앉아서 드라마만 보다가 주말 저녁을 맞는 일상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이든, 주말 이틀이든 전부 내 인생'이라는 생각에 작년엔 터무니없이 욕심을 부려보았다. 회사일은 물론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진심을 다했다. 그게 내가 택한 '갓생사는 길'이었다.
사소한 업무회의도 의견 개진 없이 지나치지 않았다. 보고자료 한 페이지에도 의미를 눌러 담았다. 자투리 시간을 쪼개서 점심시간엔 카페를 찾아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자기 계발에 올인했다. 주말은 강의 듣기와 독서, 책 쓰기 활동을 몰아치며 책도 냈다. 개인 브랜딩도 중요하대서 SNS를 관리하려고 차를 두고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날도 있었다. 그래야 서서 스마트폰을 만질 시간이 나니까. 아침엔 신문도 읽고 정리하느라 새벽 기상도 해봤다. 미친 듯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책 홍보도 쓰러지기 직전까지 했다. 모든 일이 내 일이었기에 무엇이든 마음의 농도가 짙었다. 딱 12월 31일까지 이렇게 살았다. 1월 1일부터 나는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손톱조차도 큰 마음을 먹어야 1~2주일에 겨우 한 번 깎을 수 있을 정도로 게을러지고 지쳐버리고 말았다. 자도 자도 잠만 자고 싶다. 스마트폰 푸시 알림이 원망스럽다. 애플 워치 진동이 손목을 붙잡고 흔드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나는데도 알림 설정을 변경할 의지조차 없다. 인스타그램에 접속하지 않은지 벌써 두 달이 넘어간다. 한참 전부터 몸 상태가 무언가 잘못된 줄은 알고 있었다. 거리를 걷는 학생부터 보폭이 좁은 노인까지 웬만한 이와 비교해도 내 걸음이 느리다는 걸 깨달았던 날, 세상에서 나만 장르가 좀비물로 바뀐 것 같았다.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영혼 없는 일들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내느니 이왕이면 매사에 진지한 게 낫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좋고, 다 좋은데 수입을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일의 가짓수를 줄인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인 이상은 지속하기 어려운 삶의 방식이다. 올해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손가락으로 두 눈을 감싸고 다시 생각해봐도 결론은 같다. 적당히 진지할 것. 홀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드라마로 변해버린 나의 세계를 구원하려면 일정량의 에너지를 항상 비축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