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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Mar 13. 2022

자기 계발은 책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그레이의 음악과 카니예 웨스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듣고

"메시지가 너무나 뻔하다. 누구나 할 수 있고 하나 마나 한 말이다."라는 이유로 자기 계발 책이나 영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종종 있다. 말만 그럴싸한 방법론에 염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괜히 어색해질까 봐 자기 계발서를 좋아한다는 취향을 밝히기 전에 조심하는 편이다. 당당하게 자기 취향을 밝히면 될 걸 이 무슨 자격지심인가 싶다. 책의 한 가지 장르로서 소설을 좋아하든 에세이를 좋아하든 자기 마음인데. 


"잡념을 줄이고 당장 실행하라."

"긍정적 자아상을 확립하고 주기적으로 심상화하라."

"글 잘 쓰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많이 써라."


역시 진부한 이야기라고? 실은 이건 래퍼 그레이(GRAY)의 곡 '하기나 해(Feat. Loco)' 가사를 자기 계발서스러운 문장으로 내 상황에 맞게 바꿔본 글이다. 원래는 이렇다.


"…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하기나 해 그냥 하기나 해 (중략) 

간절하게 원하는 걸 다 하고 살 수 있다는 확신 (중략)

너의 귀에 이 목소리가 들리기까지 내 공책은 빽빽하지…(후략) "


하나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에는 책 보다 음악이 더욱 효과적인 것 같다. 유튜브에서 그레이의 곡이 재생된 숫자를 합치면 거의 1,300만 회에 달한다. '하기나 해' 한 곡을 재생한 사람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 로얄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원복의 '먼 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를 산 사람만큼이나 많다. 이 곡을 '동기부여 힙합' 플레이리스트에 수록하고 듣는 사람도 있다. 


아티스트 그레이(출처 : AOMG 홈페이지)


"내가 해냈듯이 당신도 할 수 있다. 나도 바닥부터 여기까지 올라왔다. 나는 누릴 자격이 있다. 앞으로 더 위로 올라갈 것이다."라는 정서는 힙합 음악의 특징이다. 아르바이트, 투잡을 하며 남들이 자는 밤에 홀로 가사를 쓰던 지망생이 끝내주는 뮤지션으로 성장하는 스토리 자체가 매력적이고 래퍼 본인이 그 증거가 된다. 그들을 지켜보는 나도 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동기부여 뽕 맛(?)에 힙합을 듣고 '쇼미 더 머니'를 본다.


'지-니어스 : 카니예 3부작'은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본 다큐멘터리다. 때로 지나친 언행과 정신 이상증세로 구설수에 오르는 카니예 웨스트를 20년에 걸쳐 촬영하고 만들었다. 음악만 놓고 보면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 중 한 명인 그의 신인 시절을 볼 수 있다. 남의 음악만 프로듀싱하던 그는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어서 래퍼로 전향하고 음반사를 찾아다닌다. 그러나 선뜻 계약서를 내미는 곳이 없었다. "단 한 번만 뜨면 되는데"라고 말하며 차에서 음반사의 연락을 기다리는 카니예 웨스트의 모습은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각자의 정의에 맞는 성공을 하기란 쉽지 않다 보니 이제는 음악도 순수하게 즐긴다기보다는 향상심(向上心)을 충족하려는 의도로 듣는다. 많은 사람이 읽는 글을 쓰고 싶다. 하루에 한 편씩 어떤 글이든 술술 써 내려가는 능력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인스타그램과 브런치 구독자가 지금보다 많아졌으면 좋겠다. 솔직한 욕망이다. 단 한 번이라도 뜨고 싶어서 거리를 전전하고 가사를 쓰고 중얼거리는 랩스타들의 신인 시절 모습이 '감히' 남 일 같지 않은 이유다. 나와는 456차원 다른 삶을 사는 아티스트의 음악에서 힘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이 말하고 보여주는 성공의 뻔한 논리를 다른 이에게 전하는 날이 나에게도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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