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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i 고나희 Oct 08. 2017

정원보다 아름다운 무덤

<<여행의 취향>> 중에서


한때 공원과 정원이 유럽보다 일상화되지 않은 또는 부족했던 우리나라에 있다가, 유럽에 가면 그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곤 했다. 지금은 그 여유도 결국은 생경한 문화와 낯선 즐거움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우리 주변에 흔한 공간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지만.


정원이 주는 매혹적인 즐거움에 빠져 있다가 그런 공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격을 가진 장소를 알게 되었는데, 바로 무덤이었다. 왠지 무섭고 으스스할 것 같은 그 공간을 여유롭게 대하게 된 것은 영화의 영향이 컸다. 셀린느와 제시, 폴레트와 미셸은 무덤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인상을 바꿔준 이들이다.


유달리 겁이 많은 나였다. 귀신, 쥐, 벌레 등등 내가 무서워하는 건 너무도 많았다. 당연하게도 죽은 이들이 잠든 무덤은, 보통이라면 내게는 두려운 장소였다. 그러나 쉔브룬 궁을 제외하면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 빈 중앙묘지(Wien Central Cemetery)였다. 영화 〈비포 선 라이즈(Before Sunrise)〉의 두 주인공 셀린느와 제시가 나누었던 대화가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비석 사이를 거닐며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와 의견을 진지하고도 수다스럽게 이어가던 두 사람 때문이었다.

죽은 자들이 있는 곳이지만, 무섭고 음침하기보다는 아름답고 고요했다. 무덤이 있어 그렇지, 한적하고 아름다운 잘 정비된 산책로나 공원 또는 정원 같았다. 아마도 누군가 가까이 접근하지 않도록 작은 돌을 둘러놓은 무덤, 묘비에 조각을 새기거나 램프를 달아 둔 무덤, 아름다운 조각상을 세워둔 무덤 등 모양과 형태가 다른 아름다운 무덤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덤은 죽은 이가 사랑받는 방식과 그 정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아름다운 무덤 모습을 보니, 그곳에 묻힌 주인공이 주변에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을지 그리고 어떤 배려를 받고 있는지 보이는 듯했다.


정원처럼 느껴지는 잘 꾸며진 아름다운 묘지들과 길을 거닐다 뤼거 교회(Lueger Kirche)를 만났다. 밝은 파란색 천장과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인 본당 안에 들어가, 나직하게 들려오는 누군가의 기도 소리에 귀 기울였다. 무덤의 주인들에게 바치는 기도인지, 하늘의 향한 찬송인지, 진지하고 나직한 음성이 이어졌다.


중앙묘지에서 결국 가려는 곳은 베토벤과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묘가 있는 32A 구역이다. 그곳에는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도 알 법한 빈을 나아가 세계 음악계를 주름잡은 음악가들이 잠들어 있다. 이들의 소박한 무덤은 많은 이를 이곳으로 불러 모으는데, 나 역시 그들의 무덤을 대하며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베토벤의 무덤을 대하며 그의 삶에 존경과 위안을 느꼈다. 매우 능력 있고 재능 있는 음악가였던 그, 소리를 잃고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이에게 존경스러운 마음을 갖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나처럼 음악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이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인물이니, 음악가나 음악을 특별히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는 울림은 얼마나 클까.

중앙묘지에는 숙소 리셉션 데스크 앞에서 알게 된 친구와 함께 갔는데, 원래는 야간열차에서 만난 친구도 만나기로 했었다. 길이 엇갈린 야간열차 친구는 나보다 한두 시간 일찍 그곳을 다녀갔다는 걸 오후 늦게 오페라가에서 재회하며 알게 됐다. 친구는 무더 위에 위아래 검은 옷차림을 하고, 온통 땀범벅이었다. 그는 이 더위에 이게 무슨 차림이냐며 놀라는 내게 쑥스러운 듯 웃으며, 베토벤을 무척 좋아하고 존경한다고 했다. 검은색 옷차림으로 그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었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순수한 감정을 품고, 그가 알든 모르든 감정을 전달하려는 친구의 모습이 참 멋져 보이는 한편, 베토벤이라면 그런 존경을 받고도 남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 친구라면 함께 다시 무덤을 찾아, 셀린느와 제시가 그랬던 것처럼 서로의 의견과 사유를 나눌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좋을 텐데. 아쉬움이 스쳤다. 그들이 서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에게 꽤 괜찮은 대화 상대일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잘츠부르크의 호엔잘츠부르크 성에 올라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기다릴 때였다. 30분을 어찌 보낼까 하다, 매표소 앞 골목 아래 성 페터 성당(St Peter’s Archabbey)을 둘러보기로 했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바로크 양식 그리고 로코코 양식 등 다양한 양식적 특징을 품은 성당은 잘츠부르크의 지난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잘츠부르크 하면 모차르트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으로 유명한데, 이 성당에서 모차르트의 〈다단조 미사곡〉이 초연됐고,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트랩 대령 일가가 숨었던 곳도 이곳이 배경이었다.

그런데 정작 내 관심을 끈 건 성당 자체보다는 성당에 딸린 무덤이었다. 정성스레 가꿔진 게 틀림없어 보이는 아름다운 무덤들을 보며, 자연스레 떠올린 건 영화 〈금지된 장난(Les jeux interdits)〉이었다. 특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십자가가 눈길을 끌며 영화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어린 시절 TV에서 방영했던 주말 영화 시간에 가족들과 함께 보았던 〈금지된 장난〉에도 무덤이 등장했었다. 그 무덤이 사람 아닌 동물을 위한 것이라는 게 다른 점이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들이 죽은 동물들의 무덤을 만든다. 착한 마음에 무덤을 아름답게 꾸미고자, 교회 무덤의 십자가들을 뽑아 죽은 동물들의 무덤 위에 꽂아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진지하고 다정했을 그 마음은 제2차 세계대전의 힘겨운 시기, 늘 고단한 삶을 영위하고 책임져야 했던 어른들에게는 그들의 지친 마음에 또 다른 생채기를 내는 ‘철없는 금지된 장난’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영화를 보며 아이들이 마냥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시기 어른들은 힘들고 고단한 생활에 아이들의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었을 거였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전쟁 속에 상처받은 마음을 죽은 동물에 정성을 쏟는 것으로 스스로 치유하고 감싸 안았을 터였다. 성 페터 성당의 아름다운 묘지와 반짝이는 십자가에 슬픈 영상이 자꾸 겹쳤다.

다행히 영화의 슬픔을 잊을 수 있었던 건 유달리 아름다운 이곳의 무덤 덕분이었다. 낡고 어두운 느낌 없이 화사하고 아름다운 무덤들. 그곳의 무덤이 특별히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현세의 이들이 묻힌 이들을 자주 찾아오는 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무덤에 장식된 꽃들이 싱싱했고 장식품들도 때 탄 느낌 없이 깨끗했던 까닭이다. 아름다운 묘지의 주인들은 죽어서도 사랑받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은 이를 대하는 다정하고 정성스러운 태도와 방식을 경험하며, 더 이상 무덤이 무섭지만은 않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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