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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i 고나희 Oct 13. 2017

그의 도시

<<여행의 취향>> 중에서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를 떠올리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도시 어느 곳으로 눈을 돌려도 그가 남긴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도시 곳곳 광범위하게 남아있는 그의 세심한 작품을 마주하면, 누구라도 이곳이 그의 도시라는 데 이견을 내기는 어려울 거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첫날에는 몸살 기운으로 몽롱하기도 했고,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다 나오니 해가 저물어 가우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바르셀로나로 오기 전 머물렀던 니스와 모나코에서의 기억이 워낙 좋아, 이 도시를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나 보다. 지난 여정과 현재 여정 사이에서, 지나온 곳과 머무르는 곳을 어느 곳이고 온전히 향유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는데, 다음 날 반갑게도 몸살 기운이 똑 떨어졌다. 숙소 창으로 비쳐들던 바르셀로나의 화사한 아침 햇살이 이곳에 마음을 열게 만들었다. 새로운 기대를 하게끔 만들며, 니스와 모나코의 환영을 떨쳐버릴 수 있게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성 가족 성당은 바르셀로나에서 처음 마주한 가우디의 작품이었다. 초현실주의 양식 성당이 주는 느낌은 그저 독특하고 복합적인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으로는 그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설명하기에 부족했다. 성당의 양식과 느낌은 바르셀로나라는 도시,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넘어 국경과 문화적 특성을 초월한 이색적인 풍경이라고 할 만했다. 네오 고딕 양식부터 자연주의 양식, 아라비아 양식의 특징까지 가미돼, 양식과 문화적 특징이 섞이며 드러난 까닭이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앞으로 더욱 많은 스타일과 문화가 복합될 수 있는 가능성에 있다. 이 성당은 가우디가 남긴 미완의 흔적으로, 적어도 100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야 완성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사람, 한 시대가 완성하는 건축물이 아닌 것이다. 기본 설계를 가우디의 디자인에 의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많은 시간이 더해지며 다른 세대 작가들의 개성과 스타일이 더해질 게 아닌가. 국가와 문화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움직임과 미래를 가진 게 바로 이곳의 특별한 점이다. 아마 나는 성당의 완성을 보지 못하겠지만, 몇 년 후 다시 찾을 성당은 지금과는 분명 다른 모습일 것이다. 양식적, 문화적 실험과 가능성을 가진 성당의 미래가 무척 기대된다.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성당 안에서 약간의 현기증이 일었다. 독특함을 넘어서는 기괴한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몽환적인 분위기에 마치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햇살이 비쳐드는 황홀한 스테인드글라스 아래에는 지친 여행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행객들이 지친 것은 가우디 탓이리라. 지나친 아름다움은 사람을 지치게도 하는 법이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매혹적인 아름다움과 양식 파괴적인 스타일에 문화적 충격과 정신적 피로를 느낄 수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이어 마주한 가우디의 까사 밀라(Casa Mila)는 바르셀로나 중심가, 그라시아 거리에 있는 산(山) 모습을 한 맨션이다. 부드러운 산등성이를 연상시키는 곡선이 인상적인 이 건축물은 산의 특징을 잘 드러내기 위해 석회암과 철 등을 자재로 사용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위를 바라보면 하늘을 향해 연속적으로 이어진 창의 모습이 보인다. 실내와 실외가 불분명해진다. 이처럼 실내와 실외의 구분이 정확하지 않은 점이 가우디 작품의 특징 중 하나다. 가우디가 만들어낸 어느 건축물에서고 경계 없는 예술관과 세계관, 끝없는 창의성을 만날 수 있고, 이런 만남은 반복되어도 질리지 않고 즐겁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위층인 옥상부터 가봤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까사 밀라는 건물의 한가운데가 뻥 뚫려 있어 블랙홀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펼쳐진 장관은 실제 산이라고 인식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산을 그렸을까. 일반적으로 산을 인식하는 사고와 이를 나타내는 방식에서 몇 걸음이나 더 나아간 형태였다. 우뚝우뚝 솟은 분화구나 산봉우리 같기도 했고, 신문에서 본 화성의 물길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에페수스의 거석 기념물을 떠올리게도 하는 반복된 굴곡, 굽이치다 자연스럽게 끊어지고 이어지는 봉우리와 골짜기였다.

가우디의 또 다른 건축물, 까사 바뜨요(Casa Batllo)까지 보게 되면 역시 바르셀로나라는 도시가 한 예술가에게 얼마나 깊게 의지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까사 바뜨요는 바다를 형상화한 건축물이다. 도자기 타일과 유리 모자이크가 특히나 아름다운 보라색 외관은 동화 속 작은 궁전을 닮았다. 까사 바뜨요의 미모는 멀리서도 한눈에 띄었고, 워낙 보라색을 좋아하는 나는 이 건물을 대하는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외관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마법에 이끌려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예술가가 작은 부분까지도 바다를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알게 된다. 문의 모양이나 손잡이에서도 바다내음이 물씬 풍긴다. 바다 생물 모양의 재치 있는 전등 갓, 뿌연 바다 속 느낌을 주는 반투명 유리창, 연속된 아치가 물결을 연상시키는 복도 등 모두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모습이다. 몽글몽글 물방울이 떠다닐 것 같은 유려한 곡선의 창을 가진 홀 안을 오가며 마치 아주 큰 어항에 들어간 느낌도 들었고, 바다 속을 자유로이 헤엄치며 다니는 것도 같았다.


가우디의 건축 작품들을 대하며 느낀 점은 건물에 있는 사람보다는 건축물 자체가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어디에서고 특이하고 기발한 모습에 여기저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이 많지만,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비해 그곳을 배경으로 찍은 사람의 모습은 기대에 못 미치곤 한다. 건물과 그 안에 설치된 조명이 주는 특이하고 기괴한 매력 때문인지 사람의 형상은 만족스럽지 않다. 사람보다 작품 자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가우디의 전략이 아닐지.

가우디가 남긴 또 다른 흔적, 구엘 공원(Parc Guell)을 찾은 것은 다음 날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서 느긋하게 해수욕을 즐긴 뒤였다. 긴 물놀이에 지쳐 숙소로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구엘 공원 행 24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구엘 공원 후문에 승차하기 때문에 공원의 뒤부터 정문 쪽으로 거꾸로 거닐게 됐다.


구엘 공원은 가우디 특유의 독특한 건축물과 모자이크 타일로 이루어진 동화 마을 같은 공간이다. 바르셀로나 북쪽 언덕 위에 자리한 공원에 들어서며 가장 먼저 보았던 건 투박하면서도 정교한 돌기둥들이었다. 기둥들은 그것이 건축물인지 자연스레 형성된 나무나 바위기둥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그 자체가 자연의 일부분인 듯 주변 생태 환경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자연의 침식 작용에 따라 옆으로 기운 것 같은 기둥은 사실은 가우디가 정교하게 설계하고 만들어낸 것이리라.

붉은색, 보라색, 파란색 등 색색의 모자이크 타일들로 꾸며진 공원 전망대에서 타일 색만큼이나 다양한 색감을 가진 바르셀로나의 하늘을 조망했다. 하늘 아래로 가우디 작품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지붕과 옥상이 보였다. 어린아이의 머릿속처럼 재기발랄하고 독특한 감성이 넘치는 그의 작품들은 모두 위쪽에 강한 인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까사 밀라의 산 형상과 까사 바뜨요의 바다 디자인의 개성은 건물 안 보다 옥상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구엘 공원 안에 있는 건물들의 지붕은 건물의 다른 부분보다 더 창의적이고 동화적인 느낌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 깨진 유리 조각을 이용해 모자이크한 독특한 트랜카디스(Trencadis) 기법을 굴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위로 향하는 가우디의 창의력 덕분이 아닐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까사 밀라, 까사 바뜨요, 구엘 공원까지 바르셀로나에서의 매일은 가우디와 함께였다. 가우디, 그의 창의력과 독창성, 섬세함은 여타의 예술가가 가진 재능과 개성을 훨씬 뛰어넘는 것 같다. 바르셀로나라는 운 좋은 도시는 한 예술가에게 얼마나 기대고 있는 것인지, 가우디는 이 도시를 도대체 얼마나 사랑했던 것인지. 가우디와 그의 예술, 바르셀로나의 매력과 개성은, 단지 평범한 여행자가 대하기에는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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