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취향>> 중에서
교수님께서는 카페를 추천하셨다. 대학 시절 ‘프랑스 문화와 예술’이란 학부 교양수업에서 강의하시던 불어불문학과 교수님께서는 수강생들에게 파리에서 꼭 해볼 것으로 카페에 갈 것을 권하셨다.
“프랑스에 가보면 무엇이 하고 싶나요? 에펠탑을 보거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고 싶을 겁니다. 프랑스 요리도 먹어보고 싶겠죠. 그런데 내가 추천하고 싶은 건 무엇보다 먼저 카페에 가보라는 것입니다. 어느 카페든 좋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야외 테이블에 앉아야 합니다. 테이블에 앉아 지나가는 파리 사람들과 분위기, 풍경을 보고 느껴보세요. 그들의 대화에 귀 기울여 보고 삶의 방식을 눈여겨보세요. 아마 프랑스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겁니다.”
한국인과 프랑스인은 비슷한 점이 꽤 많다. 카페를 좋아하고, 말이 많고, 흥이 많다. 수다스럽고 의견 나누기를 좋아한다. 말이 많은 사람에게는 말을 나누기 위한 공간이 필요한 법이다. 한국과 프랑스 양국 모두 카페문화가 발달했다. 즐기는 방법과 취향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크지만, 달리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는 보통 실내 카페를 즐긴다. 카페 안의 인테리어와 사랑스러운 소품들, 분위기, 공간에 흐르는 음악이 중요하다. 프랑스인들은 카페 안 보다는 밖을 즐기는 편이다. 카페라는 건물이 있고, 그 건물 안에 점원이 있으며 커피와 각종 차가 있고 의자와 테이블도 있지만, 사람들이 즐기는 것은 거리의 시간과 공기, 느낌이다. 실내에서 상대방을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우리와 다르게, 프랑스인들은 야외 테이블에 앉아 정면의 거리를 바라보고 대화한다.
서로를 보느냐,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카페라는 공간을 소비하는 다른 태도와 취향이 드러난다. 대화 상대에게 집중하느냐, 함께 있는 상황에 관심을 갖느냐에 대한 차이이기도 하다. 대화 상대에게 동조하고 공감하는 태도와 다른 시각과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의 차이일 수도 있다. 다른 태도와 취향 중 어떤 것이 옳다고 할 수도 정답일 수도 없다. 그저 그런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공통점은 ‘카페’라는 공간이다.
카페는 내게 일상의 공간이다. 책과 커피, 차. 좋아하는 것들이 있는 공간이라 카페에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오죽하면 ‘카페쟁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분위기 있는 음악과 조명, 모르는 이들과 같은 공간을 즐긴다는 묘한 동류애를 느끼며, 타인의 소음이 있는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고 차를 마시고 식사하고, 원고 작업을 하고, 많은 시간 멍 때리기도 한다. 카페는 내게 휴식처이자 놀이터이며 일터이기도 하다.
게으름을 떨치는 수단으로 카페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잘 풀리지 않는 일감, 원고를 갖고 카페에 가면 때때로 좋은 아이디어나 스토리가 불현듯 떠오르기도 한다. 어떨 땐 카페에 있는 내내 할 일은 손도 안 대고 시간을 허비하기만 했는데도, 그저 집에서 나와 카페에서 무언가를 시도했다는 것만으로 묘한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
서울에서는 벽을 등지고 앉는 실내 구석진 자리를 좋아했는데, 파리에서는 거리를 눈앞에 둔 볕 잘 드는 테이블 자리를 좋아하니, 환경에 따라 사람의 취향도 어느 정도 달라질 수 있나 보다. 생 제르맹 데 프레 성당 앞에는 유서 깊고 유명한 카페가 몇 곳 있다. 사르트르, 까뮈, 시몬 드 보부아르, 쌩텍쥐페리 등 당대의 지성인, 문인들이 즐겼던 카페들. 인문학도라면 학문적 대선배(그들은 날 모르지만 내 마음대로 생각하는 바)인 그들의 흔적을 따라 가고 싶겠지만, 그게 쉽지 않다. 생제르맹 데 프레 성당과 마주하고 있는 카페 레 되 마고(Café Les Deux Magots),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즐겨 가던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 맥주홀이란 의미를 갖는 카페 브라스리(Café Brasserie) 등 매력적인 카페가 많아 갈 곳을 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19세기와 20세기 프랑스 지성과 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던 카페 레 되 마고로 어렵게 걸음을 정했다. 교수님 말씀처럼 거리로 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얼음을 즐기는 것은 유럽 문화가 아니라지만, 나는 얼음을 즐기는 동양인이니 얼음을 가득 채운 아이스커피를 주문한다. 화장실에 가려고 들어간 카페 실내는 1915년경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꼬불꼬불한 계단과 낡은 실내 장식들이 정겹다. 그럼에도 멋스런 카페 실내를 즐기는 손님은 많지 않다. 카페 손님 4분의 3이 야외 테이블을 즐기고 있었다.
자리로 돌아와 내가 가장 하고 싶던 걸 한다. 책을 읽고 싶지도, 글을 끄적이거나 음악을 듣고 싶지도 않다. 가장 하고 싶은 건 멍 때리기다. 거리에 시선을 두고 머리를 비운다. 눈은 눈길 가는 대로, 맘은 맘 가는 대로 편히 둔다. 나를 둘러싼 공간과 시간이 온전히 내 안에 들어온다. 이대로 놔두고 즐겨도 좋다. 그저 그렇게. 일상과 여행의 공간에 나를 놓아둔다.
레 되 마고를 찾은 며칠 뒤, 나는 생 샤펠 성당 앞, 처마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카페 안에 있었다. 아침에 베르사유에 같이 가기로 한 친구는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런던의 축축한 숙소에서 알게 된 친구는 런던 여행 첫날 휴대폰을 잃어버려, 그에게는 문자도 전화도 할 수 없다. 지난 밤 늦게 이메일로 생 샤펠 성당 앞에서 10시에 보자고 했는데, 읽지 못했던 건지.
성당과 콩시에르주리, 경시청 앞을 반복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나를 경찰이 조금 이상하게 보는 것 같다. 괜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비까지 왔다. 비를 피하고 이른 점심을 먹으며 친구를 기다리고자 생 샤펠 성당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오히려 잘됐다 싶었던 건 친구가 기다릴까 걱정되어 일찍 나오느라 아침식사도 못 챙기고 나온 참이었기 때문이다. 투명 천이 드리워진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브런치 메뉴를 주문했다.
식사하며 잠도 좀 깨고, 친구 기다리며 기운도 차려봐야지. 아침잠이 유난히 많은 나이지만, 여행만 하면 새벽같이 일어나고 밤늦게야 잠이 드는 편이다. 친구 볼 생각에 유난을 좀 떨었더니 정신도 기운도 없었다. 혼자서 호젓하게 즐기는 시간이 반갑고 좋다. 비 오는 풍경을 앞에 두고 따끈한 차와 커피를 즐기는 시간은 삶이 무척 여유롭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바게트에 잼과 버터를 듬뿍 발라 든든하게 먹었다. 주스와 카푸치노를 번갈아 마시고 작은 크루아상도 먹었다. 친절하고 잘 생긴 웨이터에게 부탁해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식사를 다 하도록, 비 오는 거리에 친구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아무래도 무슨 사정이 생겼거나 길이 엇갈린 것 같다. 친구는 오지 않고, 싫어하는 비까지 내리는 아침이다. 그런데도 그 아침이 참 좋았다. 편안했다. 미안하게도 친구가 오지 않았으면 싶다. 나는 나와 함께였다. 나 하고만 즐기는 아침, 이상스럽게도 서울에서 즐기던 카페처럼 낯선 파리의 카페가 편안했다.
익숙함과 낯선 것은 다른 얼굴이 아니었던가. 낯선 공간에서 일상에서의 익숙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나와 함께여서 그랬을 거다. 나의 일상과 여행에 늘 함께인 ‘나’라는 존재 덕분에 채 1시간을 머무르지 않은 낯선 공간은 편안했고 즐거웠다. 카페라는 공간이 늘 그래왔듯이. 어쩌면 공간을 정하는 느낌은 공간을 채우는 사람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나와 함께라면 언제나 자유로이 일상과 여행을 오갈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