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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i 고나희 Nov 11. 2017

배틀, 유사함과 경쟁

<<여행의 취향>> 중에서

두 궁전의 모습은 기마시합을 연상시켰다. 경쟁하듯 화려하게 쌓아 올린 두 궁전을 보자면 날렵한 말 위에 올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서로에게 대창을 겨누는 기사들의 배틀을 보는 것만 같았다. 베르사유 궁전에 이어 쉔브룬 궁전에 간 것은 매우 의도적인 여정이었다. 유럽여행을 앞두고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자리한 베르사유와 오스트리아 빈 근교에 있는 쉔브룬을 같은 선상에 두고 일정을 짰다.


파리에서 RER-C 선을 타고 약 30분. 베르사유는 파리에 매우 가까이 그야말로 근교에 자리하고 있다. 나의 발길은 베르사유 궁(Château de Versailles)으로 향했다. 베르사유 궁전 방문은 서양사, 미술사, 합스부르크 왕가, 궁전 등 나의 관심을 다분히 반영한 것이었다. 베르사유 역에 도착해 길을 헤맬 필요는 없었다. 역에서 내린 많은 사람의 발걸음이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베르사유 궁이었다. 기차역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가다 가로수가 많고 넓은 대로를 만났고, 대로를 따라 왼쪽으로 가자 궁이 바로 보였다.

아직 오전, 서두른다고 했는데 궁전 앞에 바글바글한 인파를 보니 일찍 온 보람도 없이 한참을 기다려야 할 듯했다. 더 일찍 와야 했다. 궁에 같이 가기로 한 친구와 동선이 엇갈려 못 만나며 시간이 허비된 때문이기도 했고, 비 내리는 파리의 아침 서정을 느긋이 즐긴 탓도 있었다. 이미 늦은 걸음을 서두르는데 궁전 앞에 세워진 루이 14세 기마상 위로 먹구름이 잔뜩 깔렸다. 곧 비가 내릴 듯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걱정스레 올려보며 궁전 문 앞에 긴 줄을 이룬 사람들 뒤로 한 자리를 더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소나기가 제대로 퍼붓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파리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쫄딱 비를 맞고 산 핑크색 우비를 꺼냈다. 순간 부러운 눈길이 내게 모였다. 한바탕 퍼부은 하늘이 잠잠해지며 드디어 궁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건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비와 오랜 기다림에 지쳤지만, 궁전을 둘러보며 금세 기운을 차렸다. 베르사유 궁 곳곳에 위트가 흘렀다. 묘하게 웃음 짓게 되는 포인트들이 있었다. 첫 눈길이 간 것은 천장에 장식된 현대적인 샹들리에였다. 사방이 거울로 이루어진 그 유명한 거울의 방에 장식되었던 거대한 하이힐 형상과 여왕의 집무실에서 보았던 붉은 천을 씌운 탁자 위에 걸쳐 있던 흰색과 검은색의 바닷가재도 묘한 포인트의 한 부분이었다. 바로크 양식의 궁에 더해진 현대적인 조형물들, 고전적인 궁의 분위기와 현대적인 조형물은 묘하게 어울리기도 했고, 뜬금없는 느낌을 주며 어긋나는 구석이 있어 웃음을 자아냈다. 이런 양식적, 문화적 불일치가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았던 건 현대적 조형물들이 반영하는 고전적 상징성 때문인 것 같았다.


거울의 방은 궁전 중앙 본관 2층 정면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큰 회랑이다.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걸맞게 연회장이나 결혼식장, 귀빈 접견실 등 궁에서도 화려하고 귀한 공간으로 기능했다. 더구나 지금처럼 유리가 흔하지 않던 그 시대에 대형 유리로 장식된 공간은 루이 14세의 위용을 매우 직접적이고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거울의 방에는 대형 거울이 17개나 설치돼 있는데, 거울에 거울이 비치고 그 비친 거울에 다시 거울이 비쳐, 실제보다 더 많은 거울이 설치된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화려한 장식과 부조 등이 더해져 회랑이 주는 시각적인 충격이란 기대 이상이다.


루이 14세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거울의 방에서 보았던 현대적인 조형물인 대형 구두(하이힐) 역시 루이 14세를 대변하고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구두 조형물은 은색의 금속성 재질에 매우 반짝이고 높고 크며 화려했다. 하이힐은 단신이었던 루이 14세가 자신의 작은 키를 보완하고, 자신을 귀족들에게 권위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신었던 것이기도 하다. 루이 14세의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공간에 역시 그를 형상화하는 데 기능했던 하이힐 구두라니 얼마나 유머러스한 매칭인지.


여왕의 집무실에서도 이런 현대적 조형물을 볼 수 있었다. 방 한가운데 걸린 아름답고 화려한 카펫과 그 오른쪽으로 걸려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왕자, 공주가 함께한 초상화 아래 붉은 천을 씌운 탁자가 있었다. 탁자 위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대형 바닷가재 조형물이 걸쳐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식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왕실 가족 초상화 아래 바닷가재의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절대왕정에 대한 노골적인 희화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처럼 베르사유 궁전은 유머러스하고 비유적인 잔재미가 더해진 공간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은 파리 생활에 염증을 느낀 루이 13세가 파리 근교로 거처를 옮기며, 프랑스 왕실의 궁으로 기능했다. 반복되는 생활에 싫증을 느끼는 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지만, 그 주체가 한 나라의 왕이었기에, 보다 크고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왕이 지루했던 대상은 민중이었고, 민중에게 등 돌린 왕의 마지막이 아름다울 수는 없는 법이었다. 1682년부터 프랑스 대혁명이 야기된 1789년까지 왕가의 사람들이 살던 이곳은 절대왕정의 무책임과 부패, 문란함의 상징이 되었다. 왕정의 부패와 문란은 한 여성으로 아이콘화 되는데,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는 너무나 유명한 말은 사실 그녀가 했던 말이 아니라고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알려진 것처럼 멍청하고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잘못 알려진 그 말의 임팩트가 워낙 크다 보니 여기저기 쓰이고 반복되며 확대・재생산되었다. 한 나라 최고 통치자의 아내이자 정치적 파트너, 국모로서 순진함도 악덕이 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녀는 당대 프랑스에서도 악랄한 마녀이자 요녀로 공격받으며 당시 귀족과 왕족의 사치와 악정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이처럼 역사란 때때로 슬프고 불행한 얼굴을 할 수 있지만, 궁전 곳곳을 둘러보니 지금의 프랑스인들은 절대 왕정의 위엄과 불행이 공존했던 공간을 이 시대의 느낌과 위트로 풀어내고 있는 걸 접할 수 있었다. 역사에 매몰되지 않은 그들의 해석과 재창조가 흥미로웠다.


두 궁전으로의 의도적인 여행에서 공간의 유사함이 날씨로도 이어진 것인지, 여행 날씨 운이 유별나게 좋은 여행자인 나는 베르사유에서처럼 쉔브룬에서도 비를 만났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 앞 잡화점에서 산 핑크색 우비를 입고 두 궁전에 차례차례 갔던 건 재미있는 우연이었다. 베네치아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비 내리는 빈에 도착했다. 짐만 숙소에 부려두고 빈 근교에 자리한 쉔브룬 궁에 가는 버스를 탔는데, 가는 내내 비가 내렸다.



쉔브룬 궁(Schloss Schonbrunn)은 규모나 양식 면에서 베르사유 궁에 비견되는 곳이다. 두 궁전의 모습이나 이미지는 매우 유사하다. 쉔브룬 궁은 오스트리아 황제 궁으로 합스부르크 왕실이 주로 여름에 이용했던 별궁이다. 이 궁전은 베르사유 궁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 중 하나로 꼽히며, 합스부르크 왕가와 관련된 인연도 있다. 두 궁전 사이에는 한 인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오스트리아의 황녀이자 프랑스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딸로,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결혼했다. 즉,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린 시절을 쉔브룬 궁에서, 결혼 생활을 베르사유 궁에서 보내며 합스부르크 가의 인물로 두 궁전의 인연을 이어주고 있다.


입구에서 보이는 궁전의 일부 건물들만으로도 이 궁전의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쉔브룬 궁은 화려함이 대표적인 특징인 로코코 양식의 궁전으로, 궁 내부에는 찬란하기 그지없는 황실의 유품이 남아있지만, 사진 촬영이 금지된 까닭에 눈으로 담을 수밖에 없었다. 쉔브룬과 베르사유의 경쟁 구도는 외관에서부터 시작되어, 궁 안의 모습들로 본격화된다. 외관이 배틀의 첫 대결이라면, 내부는 이어지는 현란한 스킬의 자랑판 같다.


쉔브룬 궁 내부 관람을 마치고 궁전만큼이나 유명한 정원을 거닐었다. 정원의 규모와 아름다움도 궁전에 모자람이 없었다. 궁전 좌측에서 시작되는 정원에는 정확하게 구획되어 정돈된 화사한 꽃들과 푸릇한 잔디가 자리하고 있었고, 독특한 외관의 철제 식물원도 보였다. 크고 작은 분수와 연못, 호수도 이어졌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짜임새 있게 세워진 석상도 보였다.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서 보았던 석상들이 왕가의 패션쇼 무대에 선 모델들과 같은 인상을 주었다면, 쉔브룬 궁전 정원의 석상들은 황실의 수호신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 하루의 대부분 동안 나를 붙들어 놓았던, 합스부르크 황실의 자취와 역사가 자리한 두 궁전은 철저히 기획된 공간이었다. 그만큼 정제미와 인공미가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는 인공적인 것이 너무나 많아, 자연스러움이 인공적인 것에 비해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두 공간의 정제되고 인공적인 아름다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절대왕정의 권위와 그 권위 아래 억압받았던 백성, 일부를 위한 다수의 희생을 표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궁전의 배틀을 보며 찬란하고 또렷하게 드러난 아름다움과 그 이면의 굴절된 역사의 대비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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