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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i 고나희 Nov 12. 2017

대영박물관 아닌!

<<여행의 취향>> 중에서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제국주의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대영박물관’이라는 서구 중심적이고 사대적인 표현도 그런 잔재 중 하나다. 심지어 원어 British Museum 그 어디에서도 ‘대(大)’ 라는 표면적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굳이 원어에도 없는 표현을 고유명사화한 건 제국주의적이고 사대적인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제국의 약탈을 경험한 나라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은 명백하게도 우스운 잘못일 것이다.


대영박물관 아닌, 영국박물관은 1759년에 의사이자 박물학자인 한스 슬론 경의 수집품과 왕실의 소장품을 모아 전시한 데서 시작되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과 함께 유럽 3대 박물관의 하나로 꼽히고,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도 유명한데, 박물관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이런 순위는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물관의 규모나 위상 면에서 세계적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박물관에 대한 인상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은 유물을 수집한 경로와 관련 있다.


영국 박물관의 유물은 영국이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갖고 있던 시기에 각지에서 약탈한 전리품을 모아 놓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정작 이 박물관에는 영국의 유물보다 다른 나라의 유물이 훨씬 많이 전시되어 있는 어이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심지어 박물관의 외관마저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모습을 본뜬 것이고 보면, 박물관 이름을 바꿔야 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박물관 외관은 고대 그리스 신전이지만 내부는 2000년 밀레니엄 프로젝트로 새롭게 단장해 유리와 철골로 이루어진 특이한 천장이 있다. 영국박물관은 90개가 넘는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어, 시간이 빠듯한 여행자라면 모든 관을 한 번에 둘러볼 생각은 버리는 게 현명하다. 관심 있는 전시실을 중심으로 선택적으로 관람한다면 유익하고 만족스러운 관람을 할 수 있다.

소위 약탈관으로 알려진 전시실들을 둘러보며 마음이 너무나 불편해졌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유물을 보는 기쁨과 즐거움도 매우 컸다. 양가적인 감정에 마음이 몹시 복잡해졌는데, 독서실(Reading Room)에서 잠시 심신의 안정을 찾기도 했다. 독서실은 높은 천장까지 가득 꽂힌 책들이 주는 안정감이 큰 곳으로 버지니아 울프, 조지 오웰, 디킨스, 예이츠, 마르크스 등이 즐겨 찾던 곳이기도 하다. 독서실에도 서적 외에 다른 나라에서 약탈했을 법한 유물이 꽤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독서실에 진열된, 어딘가에서 약탈했을 법한 유물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지만, 미술작품이 함께하는 서재 같은 느낌을 주는 구성 방식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유물을 보존하는 방식, 전시하는 방식과 구성이 수준 높은 전시기획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국과 열강의 이름을 가졌던 나라가 분명 영국만이 아닌데, 유독 영국에 불편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영국이 가진 제국주의 선발주자의 이미지가 강해서일까. 이 또한 개인적인 선입관일 수 있겠지만, 그런 느낌을 쉽게 거두기는 어렵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 제3세계(제3세계라는 표현 역시 서구 중심적인 용어이지만, 이를 대체할 표현이 마땅치 않다)를 침략해 그곳에서 약탈한 것들로 마련한 공간에서 영국 입장에서 사고할 이유도, 필요도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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