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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i 고나희 Nov 18. 2017

공간 읽기

<<여행의 취향>> 중에서

내가 경험한 많은 곳이, 언뜻 그리 많은 걸 담고 있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한다. ‘공간’은 일상과 여행, 삶에 있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밖으로 드러난 의미가 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공간을 읽는 법, 공간의 의미를 찾는 거다.


바르셀로나 까사 밀라 1층 가우디 기념품점은 한동안 내 눈길과 발길을 송두리째 붙잡았던 곳이다. 박물관이나 유적지에는 기념품 코너가 있기 마련이고, 관람객은 관람 후 느낀 감흥을 유지하고 뭔가 추억에 남기기 위해 기념품 코너에 들른다. 바르셀로나 여행 중 가우디의 건축 작품인 까사 밀라를 관람하고 그곳 기념품점에 들렀다. 가우디의 작품이 워낙 개성 있고 인상이 강해서 그런지, 기념품점에는 그의 작품에서 모티프를 취한 흥미로운 기념품이 꽤 많았다. 그 덕분에 난 스페인 여행 당시 자금이 넉넉지 않았는데도 팔찌며 엽서, 달력 등 기념이 될 만한 상품을 몇 개나 구입했다. 부족한 여행경비를 펑펑 쓴다는 죄책감은 기념품이 단순한 제품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으로 떨쳐버렸다. 특정 장소의 기념품이 가진 이미지나 분위기 덕분에 그 공간이 갖는 의미와 이미지가 재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인상적인 기념품 상점을 잘츠부르크 신시가지에서 구시가지로 가는 길목에서 만났다. 잘츠부르크는 머리 위로 전차선이 마구 얽혀 있는데도, 워낙 작은 도시라 교통이 어수선하지 않고 차량도 그다지 많지 않아 보행자에게 거닐기 즐거운 곳이다. 기분 좋게 걸으며 짤자흐 강에 도착했다. 수심이 깊어 보이지도, 강폭이 넓어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유람선이 꾸준히 많이 다니는 걸 보니 이 강을 즐기는 이가 많은 게 분명했다. 강을 건너 구시가에 도착했다. 신시가지는 하얀 건물이 많아 그런지 깨끗하고 화사한 느낌을 주는 반면, 구시가지는 페인트칠이 벗겨지거나 군데군데 얼룩진 건물이 많아 빈티지한 매력이 있다. 구시가로 가는 길목에 있는 큰 나무문은 구시가지의 중심인 게트라이데 거리와 모짜르트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생가로 가는 통로다. 문 주변에도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지. 자그마한 기념품 상점들이 모여 있는데, 어느 상점 안으로 들어가자 음악의 도시답게 악기 연주하는 인형,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등 악기 모양의 기념품이 눈에 띄었다.

미니 바이올린 기념품을 사고, 다시 큰 나무문으로 갔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 양쪽에 예쁜 꽃집이 자리하고 있고 정면에는 샛노란 건물이 보였다. 모짜르트 생가다. 오스트리아가 낳은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1756~1791)가 나고 자란 곳이다. 모짜르트가 태어나 1773년까지 살았다고 하니, 그가 어린 시절의 꽤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모차르트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재능은 순회공연으로 이어졌다. 유럽 순회공연이 그에게 음악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작고 어린 천재의 소중한 재능과 시간이 낭비된 측면이 있을 거다. 안쓰러운 마음을 안고 생가 안으로 들어갔다.

기념할 만한 인물의 가옥과 그를 기리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같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참 좋은 전시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답사지와 관련 기념품점, 전시실이 가까울수록 답사 이해도는 더욱 높아질 수 있으니. 모짜르트 생가에는 그의 유물(대개는 악기, 친필 메모와 서신으로 보이는 것)들과 이 고장의 옛 풍경을 그린 듯한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유물은 좁고 귀여운 복도를 지나 붉은 돌로 이루어진 통로를 걸어 피아노가 많이 놓인 방에서 볼 수 있었는데, 피아노가 통째로 투명한 보관함에 보존되고 있었다.


모짜르트 관련 온라인 검색실을 지나며 익숙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누군가 모짜르트 생가에 대해 볼 게 없고, 그래서 괜히 왔다는 투정이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그 공간을 거닐며 그곳에 대한 투정을 육성으로 토로하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난 어딘가에 갈 때 그곳의 의미를 생각하고 가곤 한다. 오랜 시간을 거쳐 온 공간은 그 시대, 당대보다 부족한 모습일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 공간의 의미와 자취를 추적하고 새기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미 세상을 등진 인물의 경우, 생가나 생전 머물렀던 장소, 작업실을 찾는 데는 단순한 방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살아온 시간, 시대, 지역 등 여러 이유로 만나지 못했던 인물과 시공간을 넘어 마주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짜르트 생가에서 나는 매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누군가가 기대했을 크고 번쩍거리는 볼거리가 있지는 않았지만, 모짜르트가 많은 시간을 보낸 그곳에는 그의 면면이 잘 드러나 있었다. 또한, 그를 기리는 공간으로서 충분히 의미 있었다. 쉽게 보이지 않겠지만, 읽고자 노력한다면 더욱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되새기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공간의 특징과 개성, 중요성을 읽어내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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