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취향>> 중에서
쉽게 닿고 이어지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아쉽게 눈앞에서 놓치거나 닿지 못하는 연도 있다. 몸살 기운과 함께 밤 기차로 도착한 프라하에서 너무도 아쉬운 인연을 경험했다. 많은 이에게 《변신》의 작가로 알려진 카프카를, 나는 미완성 장편들의 매력에 이끌려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는다. 동화적인 분위기의 프라하와 미스터리한 스토리와 구성, 열린 결말 등의 작품으로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작가 카프카는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다. 그만큼 카프카는 프라하가 사랑하는 작가이고, 카프카도 프라하를 사랑했을 것이다. 프라하에서 카프카 생가를 가보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겼다. 제한된 여행일정에 지독한 감기몸살이 그에게로 가는 발목을 붙잡았다. 파리에서 메종 드 발자크, 프랑크푸르트에서 괴테 하우스를 찾았던 것과는 다른 어긋남이었다.
《심판》 《성》 《판결》 등 미완의 소설과 유명한 《변신》에서 카프카의 주인공은 언제나 쫓긴다. 이유 모를 부조리와 불안이 주인공을 쫓는 까닭이다. 주인공을 곤경에 빠트리는 실체는 명확하지 않고 모호하며 감춰져 있다. 카프카와 그의 작품, 그가 그린 인물들은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듯 보인다. 기괴하고 괴상한 인물과 상황은 현실에서 쉽게 맞닥뜨리기 어려워 보인다. 동화 같은 프라하의 첫인상이 비현실적인 것과 같다.
하지만 카프카와 프라하의 이면은 얼마나 현실 그 자체인지. 카프카의 주인공이 실체를 모르는 것에 이유 없이 쫓기다 불안과 좌절을 경험하는 것처럼, 보통의 사람들은 늘 불안과 좌절을 근처에 두고 산다. 매일 매 순간이 비현실적인 특별함이나 아름다움을 가진다면 그것 역시 행복이 아닐 수 있겠지만, 많은 이가 그런 걸 바랄 거다. 나 역시 그랬다. 현실적인 현실이란 쉽지 않은 것이니까. 힘든 법이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에서 그런 현실을 번번이 마주하고 만다.
카프카의 작품도 그가 사랑한 프라하도 매우 현실적이다. 프라하 신시가의 정돈된 아름다움과 중세의 아기자기함을 간직한 구시가의 이면을 슬쩍 들춰보면, 그 자리에는 타민족·타국가의 오랜 지배와 침략의 역사가 남는다. 프라하가 자리한 체코라는 나라에는 합스부르크 왕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300년이 넘는 지배, 근대에 들어서는 7년간의 독일의 지배와 이어진 40년간의 소련의 지배,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소련의 침략 등 역사·문화적으로 현실적인 어려움이 점철됐다. 동화 같은 프라하가 어느 공간보다 현실적인 이유다.
그러니 이런 이면을 대하고 보면 카프카와 그의 작품, 프라하를 몽환적인, 현실과는 동떨어진 특징으로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프라하에서 내내 꿈결을 헤매는 듯 몽롱했다. 감기약 기운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다.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를 만나지 못했다는 아쉬움, 그의 작품이 가지는 묘한 슬픔, 동화적 공간이 숨겨둔 슬픈 시간 탓에 내내 헤매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나처럼 평범한 인물이 동화적 순간을 현실적 시간으로 인식하는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몽롱함으로 이를 지연시켰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