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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i 고나희 Nov 24. 2017

사람, 기억을 안은 곳

<<여행의 취향>> 중에서


이탈리아 여행을 앞두고 가장 가보고 싶던 곳은 이탈리아 남부 지역이었다. 아기자기한 포지타노(Positano) 해안 절벽 마을, 시원스레 뚫린 아말피(Amalfi) 해안도로, 청아한 풍광을 자랑하는 소렌토(Sorrento) 등 이탈리아 남부가 가진 다채로운 휴양지적 매력도 기대됐지만, 그보다는 나폴리만 부근에 있던 고대도시 폼페이(Pompeii) 유적이 나를 이끌었다.


폼페이는 79년 8월 24일 정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연안에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며 멸망한 도시다. 당시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남동쪽, 사르누스 강 하구에 있는 항구도시였지만, 지금은 내륙이 되었다. 흘러간 역사의 시간만큼 공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작가 소(小)플리니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베수비오 화산은 거대한 폭발과 함께 검은 구름이 분출하며 분화가 시작됐고, 어마어마한 양의 화산재와 화산암이 인근 도시를 뒤덮었다. 폼페이 시내는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두께 2~3cm나 되는 화산분출물에 뒤덮였고, 나폴리 남동부의 번화한 도시 폼페이는 소멸하게 된다.

폼페이는 남부 이탈리아에 있던 번성한 도시국가였다. 그리스의 지배를 받아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기도 하다. 기원전 91년부터 기원전 88년까지 전개된 동맹시전쟁(同盟市戰爭) 이후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급격히 로마화되었는데, 제정 로마 초기가 이 도시국가의 전성기였다. 로마 상류계급이 폼페이에 별장을 짓고 휴양지로 이용하기도 했다고 하니 당시의 풍요로움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지만, 그런 풍요로움은 거대 자연 앞에 매우 철저히 힘없이 스러져 버렸다. 도시 전체가 화산재 아래 묻혀버리고 말았다. 화산재에 덮인 폼페이는 15세기까지 잊혀진 도시였다. 16세기 말부터 발굴이 이루어져, 옛 시가의 많은 부분이 발굴되었다. 한창 전성기에 갑작스레 멸망한 도시였고, 로마화가 많은 부분 진행된 곳이라, 그곳의 유적지와 유물에서 당대의 문화와 생활상, 역사를 복원할 수 있었다.


시가지에 자리한 주택과 상점의 집터를 둘러봤다. 잘 닦여진 포장도로는 큰 돌 사이사이 작고 흰 돌이 박혀 있었다. 작고 흰 돌은 밤길에 어둠을 밝혀주는 기능을 했다니, 고대인들의 지혜는 현대인에 뒤지지 않는 것 같다. 수준 높은 정화기능을 갖추고 있었다는 고대의 하수구도, 붉은 벽돌의 주택가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군데군데 무너져 내렸지만 많은 부분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집터가 세월의 흐름을 이겨낸 모습이 대견했다. 이렇게도 오래도록 남아있게 만들어 낸 폼페이 사람들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벽면에 새겨진 그림으로 어떤 상점이었는지 알 수 있었고, 바닥에 셔터를 닫았던 문지방의 모습으로 일반적인 주택과 상점을 구분할 수 있었다. 번지가 남아있는 집터 벽에 가만히 손을 대고, 그 시대 사람들의 온기를 불러내 보았다.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마음 아팠던 유물은 ‘사람’이었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지 감히 짐작도 안 됐다. 그나마 폭발을 피해 숨어든 곳에서도 살아남지 못했던 불운한 사람들의 아픔에 마음이 아려왔다. 폼페이 인구의 약 10%인 2,000명 정도가 사망했는데, 고온 가스에 질식하거나 뜨거운 열에 타 죽었다고 하니, 그 고통을 후세의 사람이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 화산재에 갇히고 굳어서 죽어간 모습을 보고 대하는 것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더운 날씨와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려 양산을 썼다. 아쉬운 대로 우산을 쓰거나 옷을 뒤집어 쓴 사람들이 보였다. 이 정도 햇볕에도 뜨거움을 느끼며 견디기 어려운데, 화산 열에 고통받던 폼페이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며 숙연해졌다.

폼페이 유적지를 답사하고 돌아온 얼마 후, 마침 국내에서 관련 전시가 있었다. 거대한 역사가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만큼 폼페이의 역사와 아픔에 심정적으로 공감했다. 화석화된 유물과 유적이 아닌 내 주변의 인간사를 대하는 느낌이었다. 역사란 이렇게 아픈 모습일 수 있는지. 누군가는 하늘이 환락의 고대도시에 천벌을 내린 거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찌 그런 이유가 그런 지독한 고통과 아픔,ᆞ 슬픔과 등가일 수 있겠는가. 세상사에 뚜렷한 이유 없이 주어지는 고통과 슬픔이 반복되는 걸 볼 때마다 인간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 존재의 미미함과 나약함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폼페이는 그런 미미한 ‘존재’와 그 존재에 대한 ‘기억’을 안은 곳이다. 존재와 기억이 묻힌 저장고다. 화려한 고대도시의 유적은 많은 답사객에게 노출되어 언뜻 특별한 장소로 인지된다. 과거의 영광에 힘입어 특별함이 배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현대인에게 과거인의 생활을 접한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폼페이 역사와 폼페이인들의 자취를 깊숙이 대하고 보면, 그 공간이 안고 있는 것은 ‘사람이라는 존재의 일상과 기억’임을 알 수 있다.


보통의 일상이었을 그날, 멈춰버린 시간에 폼페이의 일상이 담겨 있다. 역사와 흔적이 남아 있다. 사람과 기억이 안겨 있다. 멀리 한국에서 거리와 시공간을 초월해 무언가 특별한 흔적을 찾아갔던 내가 마주한 건, 결국 나와 같은 평범한 존재의 일상과 기억이었다. 나와 다른 무엇을 찾아 떠났지만, 결국은 나와 같은 사람과 사람의 기억을 발견했던 옛 도시의 터전에는 무심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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