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주택_ 책 속의 여름

1부. 여름. -3

by sari 고나희

가족은 이상한 공동체다. 일반적으로 공동체라면 같은 목적성을 지닌다. 같은 걸 추구하고, 담고, 이루고자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나이대가 비슷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가족은 목적성과 구성원의 나이대에 있어서 일반적인 공동체와 많은 경우 다르다. 같은 목적성을 지니지도, 비슷한 나이대의 구성원만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의 공동체가 의례 지닐 법한 협동력이나 공감대가 어쩌면 가족에게는 없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에게 없을 법한 이런 것들이 가족에게 당연한 양 기대되곤 하니 아이러니하다고 여름은 종종 생각해 왔다. 가족이라는 이상한 공동체, 여름도 그 공동체의 구성원이었다.

어려서는 이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데 불만이 있어도 여름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부모가 하는 것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으로는 아빠가 하는 것을 따르는 수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린 여름에게는 아빠의 뜻을 거스를 힘이 없었다. 육체적으로도 아빠보다 세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아빠보다 나약했다. 터무니없이 힘의 균형이 맞지 않았기에 아빠가 만든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여름에게 주어진 삶이었다.

왜 엄마와 아빠가 아닌 아빠가 만든 규칙이었냐면, 엄마의 성격이 온화하고 부드러웠고, 아빠의 성격이 강했기에 엄마의 의견과 결정은 아빠의 의견과 결정에 눌러지곤 했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그렇게 되었다. 여름은 그런 이유로 아빠의 의견과 결정을 따르게 되었다. 여름의 부모 두 사람 모두 자녀인 여름에게 헌신적이라는 데는 공통적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자녀를 대하는 태도는 매우 달랐다. 여름의 엄마는 딸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고 사랑했지만, 여름의 아빠는 딸을 자신에게 예속된 존재로 대했다.

여름은 어려서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 사랑하게 되고 결혼해서 같이 살 수 있는지 의아했지만, 서서히 자라며 그렇게 다른 점이 서로에게 매력이었을 수 있었겠다고 이해했다. 어떤 사람은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에게 끌리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와 다른 부류의 사람에게 끌림을 느낀다. 여름의 부모는 후자였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서로에게 끌렸던 부분을 계속 좋아하지만, 어떤 사람은 서로에게 끌림을 느꼈던 부분 때문에 그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가족 간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여름의 부모는 역시 후자였다. 더구나 자녀에 대한 가치관, 교육관 등이 달랐기 때문에 갈등이 없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자녀에 대한 사랑이 깊은 덕분에 특히나 위기가 없지 않았다. 와중에 좋은 순간, 행복한 시간이 없던 것도 아니다.

어찌어찌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유지하고 살았다. 여름과 그의 엄마, 아빠에게 때때로 힘들고, 가끔씩 괜찮은 시간이 반복되었다. 아슬아슬한 상황이 늘 이 가족에게 있었다. 이제 서른하나가 된 여름은 이런 상황이 버거웠다. 그녀는 열심히 고민하고 연구하다 보면 해결되거나 해소되는 게 세상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족은 그렇지 않았다. 열심히 고민한다고 해결되지도 않았고, 그 고민을 놓아버리고도 싶었다. 가족과 관련된 상황과 감정을 겪어내는 게 버거웠다.

지난 일요일 저녁, TV를 보며 평소처럼 가족이 식사하던 자리에서, 아빠가 마침 TV 화면에서 나오는 정치 뉴스에 대한 엄마와 여름의 의견을 아주 가볍게 묵살하고 무시하는 언변을 대하며 여름은 조용히 결심했다.

‘나가야겠어.’

그녀는 독립을 미룰 만큼 미뤘다고 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고도 6년. 이제는 가족을 놓아도 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버리겠다는 게 아니라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가족의 규칙 안에서, 아빠가 짠 틀 안에서 버틸 만큼 버텼다. 그의 눈에 엄마가 밟혔지만, 여름이 버틴 이유도 엄마였지만, 어차피 엄마와 평생 함께할 수는 없다. 그건 적절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성인이라면 각자의 생활 반경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를 선택했지만, 여름은 아빠를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하지 않은 것을 벗어날 때가 왔다. 마냥 엄마와 아빠의 딸로 살아갈 수만은 없다. 게다가 여름에게는 직장에서 집이 멀다는 괜찮은 핑계가 있었다. 그건 여름 본인에게나 그녀의 부모에게나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독립의 계기였다. 기왕 나갈 거, 자신의 독립이 자연스럽다면, 가족 모두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다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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