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주택_책 속의 여름

1부. 여름. -7

by sari 고나희

요 며칠 여름은 자잘한 일들로 바빴다. 도서 본문이나 표지 디자인 시안을 잡거나 표지 대지를 마무리하는 메인 디자인 작업이 아니라, 온라인 서점에 보낼 상세 페이지나 SNS 홍보용 한 장 이미지, 카드 뉴스 디자인 따위의 결코 큰 작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출간 후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디자인 업무를 쳐내느라 손이 빌 시간이 없었다. 이런 다소 작은 작업은 후배 디자이너들이 하곤 했지만, 마침 여름을 많이 돕던 후배 디자이너가 시리즈 도서 작업을 끝내고 며칠 간의 휴가를 간 참이라 이번에는 여름이 손 빠르게 쳐내고 있었다. 그래서 며칠 동안 독립과 도서주택에 관해 생각해 볼 여력도 찾아볼 시간도 없다가 토요일 오후 늦잠에서 느긋이 일어나 일주일 만에 개인적인 용무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여름은 얼마 전 보나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도서주택 공고를 이번에는 휴대폰 어플이 아닌 노트북 화면으로 좀 각 잡고 찾아볼 참이었다.

포털에 도서주택이라고 검색하니 관련 공고 광고 링크가 보였다. 링크를 누르자 초록색 화면으로 들어가졌고, 초록색 화면이 잠시 후 점차 하얘지면서, 화면 가운데 글자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름이 연두색으로 도드라지게 나타난 booktechl이란 글자를 클릭하자, 북텍클과 도서주택에 관해 설명하는 일반적이다 못해 흔해 빠진 디자인의 청약 홈페이지 화면이 나타났다. 첫 화면이 온통 초록색의 강렬함과 함께 연두색 텍스트로 산뜻함을 보여줬다면, 본 페이지의 디자인은 일반적이라서 조금은 밋밋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밋밋함이 직관적으로 대상을 보여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니 디자인에 별다른 대안을 없었을 거야, 때로는 구린 디자인이 가장 효과적이고 대중적일 수 있거든, 6년 차 북디자이너 여름은 생각했다.

여름이 좌측 상단 ‘청약’ 탭을 클릭하자 그 아래로 북텍클, 공고문, 임대 가이드, 청약 신청 등의 하위 탭이 보였다. 여름은 북텍클 탭을 열었다. 북텍클의 개념과 북텍클 센터의 연혁 등이 설명되어 있었다. 여름은 북텍클이 book(책) + text(글) + chloe(‘어린 초록 싹, 뿌리’에 어원을 둔 이름)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내용을 읽어갔다. 연혁은 건너뛰었다. 다음에 읽어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진짜 궁금한 것부터 알아보고 싶었다. 도서주택이란 게 대체 뭔지, 이 주택 청약 공모의 자격은 어떻게 되는지.

여름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도서주택은 책이 집이다. 책 모양 집이 아니라 책 속에 입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북테클의 청약 공모는 처음으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민간 위탁 청약 공모지만, 체계적인 공모사업 운영・관리를 위해 임대주택 관련 중앙부처인 국토교통부와도 협업체계로 진행된다고 했다. 특이한 것은 문화체육관광부와도 협업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책이 관련되기 때문일 거라고 여름은 생각했다.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 등의 중앙부처들과도 협업 진행되는 것을 보니, 이 공고 일자리 연계형인가? 꽤 많은 중앙부처가 함께하는 걸 보니 이상한 공모는 아닌 것 같은데.

여름은 홈페이지를 좀 더 찬찬히 둘러보았다. 청약 공모 기간은 4월 12일부터 6월 7일까지 60일간이었고, 입주자 선정을 위한 심사에는 북테클의 부장급 민간 위원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중앙부처 부장급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예정이었다. 사업 진행에 추진력을 얻고 기관 간 협업체계를 공고히 하여 국민에게 신뢰할 수 있는 주택을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뭔, 큰 사업에 여기저기서 숟가락 얹으려는 거 아닌가? 핏, 실소하는 여름이었다.

북텍클 민간 특화 임대주택 공모사업의 입주 대상은 행정 나이 20세 이상 60세 이하 무주택자였다. 일자리 연계형 지원 주택인 만큼 현재 일반적인 직장인의 근무 시작 나이와 은퇴 나이를 고려한 것 같았다. 업무 공간, 커뮤니티 시설 등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그럴 수가 없겠지, 책마다 시대도 상황도 다를 텐데, 뭐야? 나! 이걸 이해하고 있네?! 여름은 공모 내용에 점점 빠져드는 걸 느꼈다. 북텍클 센터가 고용노동부와의 협의를 통해 도서주택에 거주하며 가졌던 직업 경력을 도서주택 거주가 끝난 후 책 밖 세상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경력증명을 해준다는 내용을 읽곤 이 공고에 더더욱 관심이 생겼다. 거주와 고용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솔깃한 공모였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꿈꿨을 법한 책 속에서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공모였다.

북텍클 도서주택의 최대 임대 기간은 10년이었다. 임대는 일주일 단위부터 가능했다. 그러나 고심해서 입주한 집에서 일주일을 거주할 사람이 있을지 여름은 의문이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렵게 결심해서 입주하고서는 고작 일주일? 말도 안 돼. 심사 자격은 첫째, 책 밖의 삶과 끊어질 것. 책과 책 밖을 오갈 수는 없었다.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을 것, 그게 조건이었다. 2080년이 되어서도 이 정도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게 어쩌면 다행이라고 여름은 생각했다. 다음으로 선택한 책에 대한 에세이를 제출하는 게 두 번째 조건이었다. 은근히 까다로운 부분이자, 이 청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도서주택 청약이 시작된 이유였기 때문이다. 챗GPT가 활용된 지 60년 가까이 된 시점에 문화체육관광부 특히 ‘출판과’ 입장에서 챗GPT는 당면한 과제였다. 챗GPT가 사회 곳곳에서 활용되며 그 역할과 기능이 자리 잡다 보니,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창의성 검증이 어려워지고, 그 가치도 떨어지고 있었다. 책은 가장 오래되고 인기 없는 미디어지만, 여전히 가장 신뢰 받는 미디어이기도 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한 나라의 문화예술이 전반적으로 경시될 위기에 처한 것을 두고 볼 수 없던 한국 정부가 내놓은 나름의 해결책은 적극적인 창의성을 바탕으로 기존 책들을 패러디하여 새로운 소설IP를 발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만 참여하면 대중의 관심을 높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먹고사는 거 다음이 문화예술인 것은 과거나 2080년대나 같다. 그러나 집이라면 달랐다. 대다수 서민인 개인 입장에서 의식주 중 가장 내 손에 거머쥐기 어려운 것이 집이니만큼, 주택 문제를 개입하면 실효성도 설득력도 높일 수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입장에서는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와의 협력을 통해 더 많은 국가 예산을 이 사업에 투자받을 수 있었고, 그 중심에 주요 부처로 늘 좀 애매했던 문화체육관광부를 둘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 이유로 에세이는 북텍클 홍보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심사했다.

책 한 권을 골라 그 책을 좋아하고 그 책에서 살고 싶은 이유를 기본 설정의 한글 파일로 3~5페이지 쓰는 것이다. 어떤 책이든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으로 소비되지 않는 만큼 다양한 에세이가 나올 것이었다. 같은 책을 두고도 어떤 사람은 인물에게 집중할 것이고, 어떤 이는 배경이 되는 시대나 사회, 문화 현상에 관심을 둘 것이다. 책에서 감흥 받은 포인트를 잡아서, 그 포인트에 집중해서 책에서 살고자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쓰는 게 청약 선정에 중요했다. 예를 들어 책 안의 인물로 살아갈 것인지, 배경은 그대로 두고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그 인물로 살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인물은 그대로 두고 스토리를 변형할 것인지 혹은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 것인지 정한다. 그런 설정에 따라 책에서 거주하며 살아갈 바를 계획하는 셈이다. 단, 설정을 무한정 변형할 수는 없었다. 큰 틀에서 세 가지 설정만을 변형할 수 있다고 했다.

청약 공모 선정자는 도서주택 설정과 도서주택 거주 경험 및 과정을 일종의 로그라인처럼 북텍클과 문화체육관광부에 제공하면 임대 기간을 더 늘릴 수 있었다. 로그라인의 저작권은 북테클과 문화체육관광부에게 위임된다. 책과 텍스트를 넘어서 인류 문화예술을 창의적으로 재고한다는 데 그 가치가 분명했다. 본질적으로 책을 살리면서 로그라인을 발생시킨 작가 입장의 신청자에게 저작권이 없다는 오류를 중앙부처 행정 담당자들은 작디작은 안내문과 도서주택이 지닌 창의성, 거주의 안정성, 이점과 장점으로 쉬이 가릴 수 있을 거라고 계산했다.

여름에게 청약 공모 에세이는 그다지 어려울 게 없는 과제였다. 책을 좋아하고, 기록하기를 즐기던 그였으니까. 그러나 여름은 일단 스마트폰 우측 사이드를 눌러, 액정 화면을 꺼 버렸다. 자기 공간과 자기 삶을 위해 쓰는 에세이라면 좀 더 진지하게 마음먹고 써야지 싶었다. 지금은 도서주택에 대해서 알아본 것으로 충분했다. 일단은 아직 충분하지 못한 잠을 좀 더 잘 생각이었다.

이전 07화도서주택_책 속의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