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선변호사입니다 (1편) - Part12

치자꽃은 밤에 핀다.

by sarihana

12장: 마지막 변론


재판의 마지막 날. 법정의 공기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팽팽했다. 지난 며칠간 언론은 온통 '이선우 게이트'로 떠들썩했고, 재판은 한 살인범을 단죄하는 자리가 아니라, 거대한 권력의 비리를 파헤치는 진실 공방의 장처럼 변질되어 있었다. 배심원들의 표정은 피로와 혼란으로 가득했다. 이제 이 모든 혼돈을 잠재울 마지막 변론의 시간이었다.


먼저 최진혁 검사가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이전의 오만함 대신, 비장함이 감돌았다. 그는 더 이상 증거를 나열하지 않았다. 그는 감정에 호소했다.


스크린에 '정원사'의 첫 번째 희생자부터 안희연까지, 네 명의 피해자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모두가 한때 누군가의 딸이었고, 친구였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최진혁은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의 잃어버린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법정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었다.


"여러분, 저 변호인은 여러분께 아주 흥미로운 음모론을 들려주었습니다." 최진혁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이글거렸다. "그는 여러분의 이성과 양심에 호소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여러분의 공포를 이용하여 진실을 덮으려는 겁니다. 이 재판은 소설 경연 대회가 아닙니다. 이것은 차가운 현실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진실은 저 변호사의 현란한 말솜씨가 아닌, 차갑게 식어버린 피해자들의 몸에 남겨져 있습니다! 저 변호사의 궤변에 속아 오늘 저 악마에게 면죄부를 주신다면, 내일 여러분의 이웃, 여러분의 딸이 다섯 번째 치자꽃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까!"


그의 절규는 배심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법정의 분위기는 다시 김민석의 유죄를 확신하는 쪽으로 무겁게 기울었다.


이제 내 차례였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망상 기록'의 끔찍한 문장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 그 눈빛. 불신과 혼란이 순수한 공포로 변해가는 그 경이로운 순간.' 악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등 뒤에서는 박수진 변호사의 작지만 간절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내가 이 마지막 순간에라도 모든 것을 바로잡기를 기도하고 있을 터였다. 이것이 내게 남은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눈을 떴다. 내 안의 모든 망설임과 죄책감을 지워버렸다. 나는 10년 전 패배했던 나약한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나는 변호사 권도윤이었다. 나는 이기기 위해, 기꺼이 괴물이 되기로 했다.


나는 천천히 배심원들을 향해 걸어갔다. 감정으로 들끓는 법정 안에서, 나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고 이성적이었다.


"최진혁 검사님은 여러분께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저 또한 한 인간으로서, 피해자들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하지만, 여기는 슬픔을 나누는 자리가 아닙니다. 법정은 감정이 아니라, 냉정한 증거로 판단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분노가, 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나는 최진혁의 감성적인 창을, 이성이라는 방패로 막아냈다.


"검찰은 이 모든 사건이 피고인의 소행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증거에는 너무나 많은 '만약'이 존재합니다. 손톱 밑의 섬유는 '만약' 다른 사람의 것이라면? 어설픈 지문은 '만약' 연인이었기에 남은 당연한 흔적이라면? 그리고 무엇보다, 경찰이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은 '이선우'라는 또 다른 용의자가 '만약' 진범이라면?"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피고인석의 김민석을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완벽한 연기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만약 진짜 '정원사'가 이 법정 밖에서, 자신의 죄를 대신 뒤집어쓸 희생양이 나타난 것을 비웃으며 이 재판을 지켜보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엉뚱한 사람에게 죄를 물으시고, 진짜 악마에게 또 다른 사냥의 자유를 주는 판결을 내리시겠습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배심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부디, 현명한 의심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한 사람을 벌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단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변론이 끝나자 법정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마지막 지침을 내리고, 그들이 평의를 위해 자리를 떴다. 나는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법정 안의 모든 소리가 물속에서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 손으로, 나는 진실을 찢고 거짓으로 승리를 빚어냈다.


나는 변호사로서의 내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 나는 검찰의 서사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합리적 의심'이라는 거대한 구멍을 뚫었다.


나는 이겼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안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가장 끔찍한 거짓말을 팔았고, 법정은 그 거짓말에 속았다. 나는 이겼지만, 나의 영혼은 완전히 패배했다.





에필로그


그로부터 1년 뒤, 한겨울.


박수진은 1년 만에 처음으로 지하 1층 국선 변호사실을 찾았다.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사무실의 공기는 여전히 차갑고 눅눅했지만, 그날따라 코를 찌르는 이질적인 향기가 가득했다. 살아있는 자의 숨을 옥죄는, 달콤하고도 서늘한 치자꽃 향기.


그녀는 자신의 옛 책상으로 향하다 말고, 안쪽 사무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았다. 문을 열자, 권도윤이 소파에 깊숙이 기댄 채 잠들어 있는 듯 보였다. 그의 책상 위에는, 프롤로그의 그날처럼 검은 상자가 열려 있었고, 시들지 않은 새하얀 치자꽃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잠든 것이 아니었다. 그의 셔츠는 흥건히 젖어 있었고, 그를 중심으로 바닥에 번진 검붉은 얼룩은 마치 거대한 꽃잎처럼 보였다. 박수진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저 1년 전, 자신이 그토록 막으려 했던 이 끔찍한 결말을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정원사' 김민석의 여섯 번째, 그리고 마지막 작품이었다.


사건은 영구 미제로 종결되었다. 언론이 한때 떠들썩하게 쫓았던 '이선우 게이트'는 아버지의 권력 아래 소리 소문 없이 묻혔고, 세상에서 완벽하게 증발한 김민석은 인터넷 괴담과 범죄 프로파일러들의 연구 자료 속에 유령처럼 남았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대검찰청 중요범죄수사부 부장검사실. 최진혁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로 불리는 검사가 되어 있었다. 그의 책장 한편에는 '정원사 연쇄살인 사건'이라고 적힌 두꺼운 미제사건 기록철이 꽂혀 있었다. 그는 가끔 그 기록철을 꺼내보았다. 그 안에는 피해자들의 웃는 얼굴과, 그들의 끔찍한 마지막 모습, 그리고 한때 자신의 적이었던 국선 변호사 권도윤의 영정 사진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 사건은 그의 검사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패배이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주홍글씨였다.


그가 씁쓸한 표정으로 기록철을 덮는 순간, 책상 위의 전화기가 날카롭게 울렸다. 현장감식팀 팀장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부장님, 홍대 앞에서 변사체 발견됐습니다. 20대 여성입니다."


최진혁은 피곤한 눈을 감으며 말했다. "특이사항은?"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내, 망설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현장에서, 피해자의 입에 붉은 장미가 한 송이 물려 있었습니다."


최진혁은 눈을 떴다. 그의 눈에 다시, 지독한 싸움을 앞둔 검사의 불꽃이 타올랐다. '정원사'는 사라졌지만, 그가 세상에 풀어놓은 광기와 사상은 죽지 않고 새로운 씨앗이 되었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다른 얼굴로, 다른 계절에 우리를 찾아올 뿐이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전 15화나는 국선변호사입니다 (1편) - Part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