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선변호사입니다 (1편) - Part10

치자꽃은 밤에 핀다.

by sarihana

4부: 합리적 의심

10장: 법정의 막이 오르다


사무실의 모든 소음이 멎었다. 조금 전까지 울리던 전화벨 소리, 동료들의 들뜬 목소리, 창밖의 도시 소음까지, 마치 다른 세상의 일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우리의 작은 우주 안에는 오직 노트북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푸른빛과, 박수진 변호사의 가쁜 숨소리, 그리고 내 심장이 쿵, 쿵, 하고 바닥으로 꺼지는 소리만이 존재했다.


"이걸... 이걸 당장 검찰에 넘겨야 해요!"


가장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박수진 변호사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분노와 공포, 그리고 배신감으로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선배님, 이건 저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저 사람은 그냥 살인자가 아니라고요, 악마예요! 저희는 지금까지... 악마를 변호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녀가 믿었던 정의, 그녀가 지키려 했던 법,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혼란 속에서 오히려 머리가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 파일을 최진혁의 책상에 던져주는 순간, 나의 패배가 결정된다. 10년 전과 똑같이, 나는 또다시 무능한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내 손이 마우스 위에서 잠시 망설였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내 책상으로 이끌어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내뱉을 수 있는 가장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 변호사. 정신 차려. 이건 증거가 될 수 없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건 김민석이 직접 쓴 자백이잖아요!"


"아니."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의 비밀유지권에 따라 보호받는 파일이야. 우리가 이걸 검찰에 넘기는 순간, 우리는 변호사법을 위반하게 돼. 변호사 자격 박탈은 물론이고, 우리가 불법으로 취득한 이 증거는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


내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법은 진실이 아니라 절차를 중요시했다. 하지만 나 자신조차도, 내가 지금 법의 논리를 얼마나 교묘하게 이용해 진실을 묵살하려 하는지 알고 있었다.


박수진 변호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보았다. "법이요? 그럼 저 악마가 풀려나서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면요? 그땐 법이 아니라 우리가 살인자가 되는 거예요! 선배님 아버지께서도 이런 선택을 하셨을까요?"


그녀의 마지막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심장에 박혔다. 나는 그녀의 눈을 피했다. 대신,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증거의 벽'을 바라보았다. 이선우를 향해 뻗어 나간 붉은 실들. 내가 만든 위대한 가설. 이 모든 것을 내 손으로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나는 박 변호사에게서 USB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보는 앞에서, '망상 기록' 파일을 내 컴퓨터의 가장 깊숙한 폴더로 옮긴 뒤, 원본 파일을 영구 삭제했다. 화면에 '이 파일을 영구적으로 삭제하시겠습니까?'라는 경고창이 떴다. 그것은 기계가 내게 건네는 마지막 양심의 질문처럼 보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Enter' 키를 눌렀다. 'Shift+Delete'. 돌이킬 수 없는 명령이었다.


"선배님!" 그녀의 절규가 사무실을 울렸다.


나는 마우스를 내려놓고, 차가운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우리의 의무는 진실을 밝히는 게 아니야, 박 변호사. 우리의 의무는, 설령 의뢰인이 악마일지라도, 그를 변호하는 거야.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나는 내가 시작한 이 게임을, 내 방식대로 끝낼 거야."


그 순간, 박수진 변호사의 눈에서 나를 향한 마지막 존경심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 자리에는 경멸과 혐오만이 남았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경멸하는 괴물이 되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아침, 사무실은 묘지처럼 고요했다. 박수진은 출근했지만, 우리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나의 조력자가 아니었다. 내 선택의 결과를 지켜보는 침묵의 증인이었다.


재판 첫날이 밝았다. 법정은 언론과 방청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최진혁 검사는 모두 진술에서 김민석을 희대의 연쇄살인마,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해야 할 악마로 규정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넘쳤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배심원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망상 기록'의 첫 문장, '세상의 모든 색이 빗물에 씻겨 내려간 무채색의 도시에서, 그녀의 붉은 코트만이 유일한 색이었다'를 떠올리며, 그 끔찍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쓴 악마를 변호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검찰은 여러분에게 한 편의 공포 소설을 들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소설의 진위를 가리는 곳이 아닙니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한 사람의 인생을 끝낼 만큼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자리입니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공포 소설의 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 소설이 거짓이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법정의 막은 올랐고, 나는 기꺼이 악마의 대변인이 되어 무대 위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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