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5천만원의 무게
퇴근 시간의 지하철 2호선은 언제나처럼 거대한 쇠 관 같았다. 서로의 어깨를 밀치고, 타인의 숨결을 느끼며, 나는 옴짝달싹 못 한 채 덜컹거리는 열차에 몸을 맡겼다. 흐릿한 유리창 너머로 한강의 검은 물결과 강변북로의 붉은 미등 행렬이 아득하게 흘러갔다. 저 불빛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집이겠지. 그중 내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광고판 속에서는 연예인이 강남의 초고층 아파트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당신의 품격이 완성되는 곳’. 그 문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조롱이나 다름없었다.
옆자리에 선 젊은 커플의 목소리가 소음 속에서도 날카롭게 귀에 박혔다. "...그래서 전세 없어지면 어쩌라는 거야. 월세는 너무 비싸고…." 여자의 목소리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남자는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단 이번 달 이사 비용부터 걱정하자." 나는 애써 그들의 대화를 외면하려 눈을 감았다. 그들의 절망은 곧 나의 절망이었고, 내가 매일 보고서에 올리는 차가운 숫자들의 진짜 얼굴이었다.
주택정책과 7년 차 주무관, 김현우. 대한민국 집값 안정이라는,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프로젝트의 작은 톱니바퀴. 오늘따라 그 톱니바퀴가 헛돌다 못해 마모되어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에 선명했다.
오후 내내 이어진 비상대책회의의 풍경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거대한 스크린에는 붉게 물든 대한민국 지도가 떠 있었다. 서울의 규제를 피해 수도권으로, 지방 광역시로 번져나가는 투기의 불길을 나타내는 '풍선효과' 현황도였다. 이제는 터질 곳조차 남지 않은, 너덜너덜한 풍선의 모습이었다.
"6·27 대책, 사실상 실패했습니다. 지난 한 달간 서울 외곽 지역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규제 발표 이전보다 1.5%p 증가했습니다. 전형적인 풍선효과입니다."
갓 부처에 들어온 젊은 연구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를 마쳤다. 회의실의 공기는 묘비처럼 무거웠다. 국장님은 마른세수를 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요를 억제하면 실수요자들이 다 죽는다고 아우성이고, 가만히 놔두면 투기꾼들 놀이터가 된다고 난리고… 대체 우린 뭘 해야 하는 겁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촘촘히 조이고, 투기과열지구를 핀셋으로 지정했지만, 시장은 정교한 그물망을 비웃듯 더 넓은 바다로 빠져나갔다. 국토부로 복귀한 지 반년, 내가 한 일이라고는 실패한 보고서에 이름을 올린 것뿐이었다.
낡은 아파트 복도에 들어서자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센서등이 내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24평짜리 전셋집. 이곳은 나의 안식처이자, 내가 이 프로젝트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랬다.
나는 한숨을 쉬며 문을 열었다. 텅 빈 거실. 냉장고에는 며칠 전부터 쌓여있는 경찰서 출석요구서가 꽂혀 있었다. 전세사기 피해자 조사 때문이었다. 작년 이사할 집을 찾을 때였다. 부동산 중개인은 "요즘 빌라 왕 때문에 불안하시죠? 이 집은 다세대 주택이 아니라 아파트예요. 더군다나 집주인분이 전세금반환보증보험 가입을 흔쾌히 동의하셨어요."라고 말했다. 안심하고 계약서에 서명했다. 보증금은 3억. 내 7년간의 직장 생활이 담긴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계약 직후, 집주인은 연락이 두절됐다. 잔금을 치르고 전입신고를 마치자마자, 나는 등기부등본을 다시 떼어보았다. 부동산 중개인은 "선순위 근저당이 없으니 안심하라"고 했지만, 내가 받은 등본은 계약 당일 아침에 발급된 것이었다. 그날 오후, 집주인이 은밀히 빌린 사채업자의 수십억 원짜리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집주인은 이미 세금을 체납한 상태였다. 모든 것을 알고도 나를 속인 중개인은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했고, 경찰은 "사기죄 입증은 어려울 것"이라며 한숨만 쉬었다.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 가입 절차는 차일피일 미뤄지다 결국 무산되었다.
나는 주택정책과 주무관이면서, 동시에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수많은 유령 중 하나가 된 것이다. 허탈감과 분노가 뒤섞인 채, 나는 차가운 맥주 한 캔을 땄다. 텔레비전 뉴스 화면 속에서 긴급 특보가 시작되었다. '청년 전세사기, 그 절규의 현장을 가다'라는 자막이 떴다. 화면 속에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KCIJ 탐사보도팀의 박진영 기자였다. 그는 한 청년과 함께 낡은 오피스텔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 있었다.
박진영 기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우 씨, 지난 기사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카메라에 잡힌 청년, 지우는 여전히 핼쑥했지만 눈빛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전에는 혼자였지만, 이제는 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도, 기자님 기사 덕분이 아니라, 저처럼 무너진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아줬기 때문입니다."
박진영 기자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그의 시선은 지우의 손에 머물렀다. "1억 5천만 원이라는 돈, 지우 씨에게는 어떤 의미였습니까?"
지우는 잠시 침묵했다. 마치 과거의 상처를 되짚는 것처럼, 그의 목소리는 다시 모래알처럼 거칠어졌다. "제게 1억 5천만 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은행에서 쫓겨날 때의 막막함, 어머니의 병원비, 그리고... 고양이 솜이와 함께 살고 싶었던 작은 꿈, 제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그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싸움을 통해 그 돈의 진짜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절망을 이겨내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힘이 되었다는 것을요."
지우의 목소리는 절규가 아닌, 조용한 확신을 담고 있었다. 화면 아래에는 지우를 비롯한 피해자들의 카카오톡 단체방 스크린샷과, 그들이 국회 앞에서 함께 손을 잡고 서 있는 사진이 자료 화면으로 깔렸다.
앵커가 마무리 멘트를 건넸다. "불완전한 정의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지키는 이들의 싸움, 저희 KCIJ 탐사보도팀이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그들의 절망과 연대의 목소리는 비수가 되어 내 심장에 박혔다. 내가 외면했던 수많은 보고서 속 차가운 숫자들의 진짜 얼굴이었다. 박진영 기자와 지우의 모습은 내가 잃어버렸던 신념을 흔들어 깨우는 듯했다. 나는 이 거대한 도시의 병폐가, 단순히 정책의 실패를 넘어선 시스템의 문제임을 직감했다.
내 머릿속은 이미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의 실패사 박물관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노트북을 켰다. 하얀 화면 위에 지난 정책들의 잔해를 전투에 패배한 장수처럼 하나씩 복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