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블루스 3편 - Part2

1억 5천만원의 무게

by sarihana

2장. 회의실의 포식자


내 보고서가 국장님의 책상에 올라간 지 정확히 일주일 뒤, 지옥의 문이 열렸다. 국장님은 나를 조용히 집무실로 불렀다. 그의 얼굴에는 이전의 피로감 대신, 결전을 앞둔 장수와 같은 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김 주무관, 보고서가 생각보다 파장이 커.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말이 많이 도는 모양이야."


그는 잠시 창밖을 보더니,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기재부에서 연락이 왔네. 박성준 국장이 직접 보자고 하는군."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는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댄 채, 나에게 조언인지 경고인지 모를 말을 건넸다. "박 국장은 그냥 숫쟁이가 아니야. 그는 논리로 싸우는 사람이야. 자네 제안을 순진한 이상주의와 자신의 냉혹한 현실주의 구도로 몰고 갈 걸세. 그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자네는 그냥 철없는 공무원이 되는 거야. 그리고 이거 하나만 기억하게. 그는 97년 외환위기를 사무관 시절 온몸으로 겪은 사람이야. 그에게 재정 건전성은 단순한 원칙이 아니라,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신념에 가까운 트라우마지. 그걸 알아야 해."


국장실을 나오며, 나는 거대한 산맥 앞에 홀로 선 등반가가 된 기분이었다.


며칠 뒤 도착한 세종청사 기획재정부 건물은 국토부의 어수선하고 활기찬 분위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복도를 걷는 사람들의 구두 소리마저 흡음재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그곳은, 인간의 뜨거운 열망이 아닌 차가운 숫자로만 움직이는 거대한 두뇌와도 같았다.


회의실의 거대한 타원형 테이블은 마치 수술실을 연상시켰다. 내 '도심 상생주택'이라는 아이디어가 이 수술대 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회의 시간이 되자, 문이 열리고 박성준 예산총괄국장이 들어섰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감색 정장과 날카로운 안경, 그는 방 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다른 부처의 국장급 간부들마저 그의 등장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는 숫자로 세상을 재단하고, 효율성이라는 칼로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포식자였다.


그는 자리에 앉아 내 보고서를 가볍게 툭툭 치며, 내 존재는 투명 인간 취급한 채 우리 부처 국장님께 말했다.


"국토부에서 아주 재밌는 소설을 쓰셨더군요. 공공이 직접 서울 한복판에 아파트를 지어서 반값에 나눠주자? 취지는 좋습니다만, 이걸 지금 현실적인 정책이라고 가져오신 겁니까?"


싸늘한 조롱이었다. 내 보고서는 순식간에 어린애의 치기 어린 망상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입을 열었다.


"소설이 아니라, 지난 20년간의 실패가 쓴 반성문입니다, 국장님."


나는 1, 2기 신도시의 한계와 수요 억제책의 부작용을 조목조목 짚었다. 박 국장은 팔짱을 끼며, 이번에는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차갑게 받아쳤다.


"그래서,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 큰 실패를 하자는 겁니까? 김 주무관, 당신의 제안은 국가의 역할을 오독하고 있소. 그렇게 값싼 주택을 공급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열심히 일해서 집을 사려 하지 않을 겁니다.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 정책이란 말입니다. 게다가, 민간의 효율성을 이길 수 없는 LH 같은 공기업에 이 모든 걸 맡기자? 2000년대 초반에 있었던 XXXX 신도시 개발 사업 기억하십니까? 당초 예산의 세 배를 쓰고도 입주가 5년이나 지연됐던, 공공개발 실패의 교과서적인 사례입니다. 그걸 또 반복하자는 겁니까?"


그의 공격은 정곡을 찔렀다. 예산, 효율성, 도덕적 해이. 거대한 관료 조직의 단단한 상식 앞에서, 나는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우리가 100조를 아끼기 위해 이 문제를 외면한다면, 10년 뒤에는 사회적 갈등과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1,000조의 비용을 치르게 될 겁니다. 주거 불안이 야기하는 혼인율 감소, 출산율 저하… 이 모든 것이 미래의 재정 부담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나는 박 국장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국장님께서는 외환위기의 트라우마를 바탕으로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시는 것, 깊이 이해합니다. 하지만 97년의 위기는 금융 시스템의 위기였고, 지금의 위기는 공동체의 위기입니다. 낡은 처방으로는 새로운 질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국장님께서는 '도덕적 해이'를 말씀하셨지만, 저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적 재난'**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도심 상생주택'은 단순한 아파트가 아니라, 이 재난을 막을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 인프라입니다."


"안전망이라…" 박 국장은 코웃음을 쳤다. "김 주무관, 내가 신입 시절에 선심성 정책 남발하다가 IMF 맞는 걸 직접 봤소. 나라 곳간 지키는 건 욕을 먹더라도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이야. 그 제안, 전면 재검토하세요. 아니, 폐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회의는 그대로 끝났다. 국토부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부처 국장님은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무거운 침묵이 나를 짓눌렀다. 한참 뒤에야 그가 혼잣말처럼 툭 던졌다. "그래도, 그 녀석 잠시 생각은 하게 만들었어." 그 말이 위로인지, 체념인지 알 수 없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텅 빈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박 국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의 논리는 견고했고,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나는 또다시 실패한 것일까. 나의 치기 어린 이상은 결국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일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절망감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분노이자, 오기였다.


박 국장은 틀렸다. 그는 숫자를 볼 뿐, 그 숫자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눈물과 절망을 보지 못했다. 그는 '집'을 자산으로만 볼 뿐, 누군가의 삶이 담기는 공간으로는 보지 않았다. 나는 책상 위 친구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노트북을 켰다. 박 국장이 제기했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입력하기 시작했다. 예산 확보 방안, 사업의 효율성을 증명할 데이터, 민간과의 협력 모델. 그의 논리를 깨부수기 위한 더 정교하고, 더 날카로운 창을 만들어야 했다.


나의 전쟁은 이제 막 2라운드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의 상대는 '집값'이 아니라, '집'을 숫자로만 여기는 저 차가운 엘리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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