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 움 Part3

나는 유령이었다.

by sarihana


3장. 함께 맞는 비


첫 근무가 시작되자, 병동의 복도는 끝을 알 수 없는 하얀 터널이 되었다. 천장의 형광등은 모든 감정이 거세된 차가운 빛을 쏟아냈고, 갓 왁스칠을 해 미끄러운 바닥은 그 빛을 반사해 모든 것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치유의 공간을 약속하던 그 흰색은 이제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감시자의 색이 되어 우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심박 측정기의 단조로운 기계음이 혈관 속 피처럼 끊임없이 흘렀다. 그 일정하고 차가운 기계의 리듬과 달리, 그 소리를 듣는 우리의 심장은 공포로 제멋대로 날뛰었다.


꿈은 현실의 칼날에 부딪히는 순간, 소리 없이 부서졌다. 병동의 모든 움직임은 우리에게 유독 가혹했고, 그 칼날은 언제나 우리 둘을 한 묶음으로 겨냥했다. 그들은 우리를 '이희진'과 '박수현'으로 부르지 않았다. "거기 신입 둘", "번갈아 가면서 사고 치는 애들", "둘이 세트냐?" 와 같은 호칭이 우리의 이름이 되었다.


그날 밤, 마침내 사건이 터졌다. 스테이션의 눅눅한 공기 속에서 밀린 차트를 정리하던 위태로운 평온은, 금속이 찢어지는 듯한 경고음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 "코드 블루, 703호. 코드 블루, 703호." 심정지 환자 발생을 알리는 다급한 방송이었다. 스테이션의 모든 공기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가, 이내 폭발하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이 있던 수현에게 민지 선배가 소리쳤다. "박수현! 너 거기서 뭐 해! 빨리 제세동기 카트 끌고 와!" 수현은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카트를 밀었지만, 겁에 질린 나머지 복도 모퉁이에 카트를 부딪히고 말았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약물 앰플 몇 개가 바닥에 떨어져 박살 났다.


703호 병실은 이미 전쟁터였다. 흉부 압박을 지시하는 외과 의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복도까지 울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실력은 좋지만 병원 방침에 사사건건 불만을 터뜨려 늘 문제아 취급을 받는 외과의 박진우 선생이었다. 그는 모두를 얼어붙게 만드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유명했다.


민지는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을 보며, 절망적인 표정의 수현에게 다가와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모두의 등 뒤에서, 오직 수현의 심장만을 겨냥한 은밀한 폭언이었다. "너 때문에 사람 죽게 생겼잖아. 넌 그냥... 숨만 쉬어도 사고를 치는구나." 그 한마디에 수현의 자존심이 발밑에서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의사가 에피네프린을 외쳤다. 한 선배가 수현에게 앰플과 주사기를 던지듯 건넸다. "박수현, 빨리 약 재!" 하지만 수현의 손은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의미 없는 소음으로 변하고, 병실의 밝은 조명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그녀의 귓가에는 오직 하나의 단어만이 망치처럼 울리고 있었다.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수간호사의 그 저주 같은 말이 그녀의 모든 사고를 마비시켰다. 손가락은 굳어버린 채 사시나무처럼 떨리기만 했다.


나는 스테이션 건너편에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내 가장 친한 친구,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믿었던 수현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나는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가 부서진다면, 나 또한 버틸 수 없다는 공포. 우리가 함께 쌓아 올린 꿈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것을 목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때, 평소 무심한 표정으로 묵묵히 자기 일만 하던 5년 차 선배 지은이 수현의 손에서 주사기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그녀의 눈빛에는 짜증과 함께 언뜻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과거의 누군가를 보는 듯한 체념, 혹은 지독한 동질감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단 한마디의 질책도 없이, 능숙하고 빠르게 약물을 준비해 의사에게 건넸다. 그리고 수현을 병실 밖으로 거칠게 밀어내며 말했다. "여기서 걸리적거리지 마." 그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수현을 이 참상에서 격리시키려는 마지막 방어선처럼 느껴졌다.


얼마 뒤, 환자는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고 상황은 정리되었다.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자, 모니터의 심전도는 거짓말처럼 안정적인 리듬을 되찾았다. 엉망이 된 병실을 둘러보던 박진우 선생이 차트를 넘기며 툭 던졌다. "이 인력으로 버티는 게 용한 거지. 기계가 낡으면 바꾸면서, 사람은 왜 소모품으로 쓰는지." 그의 시선은 허공을 향했지만, 그 말은 병동의 모두를 꿰뚫는 듯했다.


병동에 남겨진 우리는 모두 패잔병이었다. 환자는 살렸지만, 우리는 싸움에서 졌다. 나는 수현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다 린넨실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다른 동기 지나를 발견했다. "봤어, 희진아? 수현이 얼굴… 다음은 내 차례일 거야. 아니, 우리 차례겠지." 그녀는 소리도 내지 못한 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려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잠시 후,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수현을 찾았다. 그녀는 울고 있지 않았다. 그저 텅 빈 눈으로 타일 바닥의 한 점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몰래 챙겨 온 초코바를 건네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 눈에는 단순한 슬픔이 아닌, 영혼이 부서진 자의 공허함이 담겨 있었다.


"나… 환자 얼굴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어. 내가… 내가 죽일 뻔했잖아. 손끝에 감각이 없었어, 희진아. 머릿속이 그냥 하얗게 비어버렸어.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았어."


그녀는 초코바를 쥔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는 사람 살리려고 간호사가 된 거잖아. 그렇지? 그런데… 그런데 이곳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 아닌 것 같아. 살리기 위해 왔는데, 이곳이 나를 먼저 갉아먹고 있어. 매일매일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죽어나가는 기분이야. 너는… 너는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나는 자신이 없어."


그녀의 절망적인 고백 앞에서, 나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의 곁에 웅크리고 앉아 함께 울어줄 뿐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텅 빈 휴게실에 남아 서로의 팔을 내어주었다. 그것은 희망찬 공부가 아니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의식이었다. 우리는 주삿바늘로 서로의 살을 찌르는 고통을 공유하며, 공포에 잠식당했던 몸의 통제권을 되찾으려 애썼다. 약물 이름을 주문처럼 외웠다. 피곤에 지쳐 책상에 엎드린 수현의 어깨를 담요로 덮어주며, 나는 생각했다. '이 지옥도 너와 함께라면 견딜 수 있어.'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순수한 믿음이 아닌, 절박한 기도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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