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 움 Part20

나는 유령이었다.

by sarihana

20장. 청문회, 그리고 수현의 목소리


사회적 여론에 힘입어 마침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청문회가 열렸다. 병원장과 핵심 경영진이 증인으로 소환되었고, 나와 박진우 선생이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했다. 청문회장으로 들어서는 길,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마치 총구처럼 나를 향해 쏟아졌다. 차갑고 딱딱한 대리석 바닥, 높고 위압적인 천장, 벽에 걸린 역대 국회의원들의 무표정한 초상화. 이곳은 피와 눈물이 아닌, 논리와 명분만이 존재하는 낯선 전장이었다.


증인석에 앉자, 방청석 한쪽에 앉아있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걱정스러운 얼굴의 지은 선배와 지나, 그리고 팔짱을 낀 채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박진우 선생. 나는 그들과 눈을 맞추며 잠시 숨을 골랐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 차례가 오기 전, 병원 측 변호인의 집요하고 잔인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는 날카로운 메스처럼 교묘한 질문으로 나를 해부하려 했다.


"증인은 입사 초기에 상사와의 불화로 여러 차례 경고를 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맞습니까? 이 모든 일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증인의 조직 부적응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불만 아닙니까?"


"그 불화는 비인간적인 업무 환경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였습니다."


"감정적인 문제 제기 말고요. 저희는 지금 정책을 논하고 있습니다. 고 박수현 간호사의 비극을, 자신의 불만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조롱이 섞여 있었다. 방청석에서 지켜보던 박진우 선생의 턱이 분노로 단단해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차분해졌다. 그는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저 차가운 논리의 세계가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외면하는지를. 그는 나를 위해 무대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드디어 내게 마이크가 주어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격렬하게 뛰었지만, 이상하게도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나는 굳이 준비해 간 두꺼운 자료 뭉치를 펼치지 않았다. 대신, 주머니 속 낡고 해진 메모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변호사님은 제게 데이터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제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러 이 자리에 왔습니다."


나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현과 처음 간호사가 되기로 약속했던 날, 불안하면서도 설렜던 그 밤의 공기를 기억했다. 자판기 커피를 함께 나눠 마시며 꿈을 이야기하던 그날의 서늘한 감촉도, 서툰 손으로 서로의 팔에 주사 연습을 해주며 서툴게 웃던 밤의 이야기도 꺼내놓았다. 그 모든 사적인 기억들이, 이 차가운 공공의 장소에서 그 어떤 데이터보다 강력한 진실의 힘을 발하고 있었다.


"제 친구는… 손이 작았습니다. 그래서 늘 주사 놓는 연습을 남들보다 두 배는 더 했어요. 자기 손이 작아서 환자들을 아프게 할까 봐 밤새워 연습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 아이가 나약해서, 혹은 개인적인 문제가 있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나를 몰아붙였던 변호인과, 무표정한 국회의원들, 그리고 카메라 너머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세상에게 마지막 말을 건넸다.


"제 친구를 죽인 것은, 우리 모두가 침묵을 평화라고 믿었던 비겁함입니다. 제 친구를 죽인 것은, 인간의 존엄보다 숫자의 효율성을 우선했던 바로 저 차가운 시스템입니다. 의원님들의 가족이 아플 때, 그들을 돌보는 것은 차가운 데이터가 아니라 저희 같은 간호사들입니다. 저희가 무너지면, 결국 그 피해는 의원님들의 가족, 우리 모두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단순히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기 위함이 아닙니다. 더 이상 제 친구 수현이처럼, 꿈을 품고 들어온 젊은 간호사들이 절망 속에서 스러져 가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부디 숫자가 아닌 사람을 봐주십시오."


내 증언이 끝나자, 소란스럽던 청문회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주 긴 시간 동안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나를 공격하던 변호인마저도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서류만 뒤적일 뿐,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단상에 앉아있던 한 여성 의원이 손수건으로 조용히 눈가를 닦았고, 위원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순간만큼은, 나 혼자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마치 나를 통해 수현이 직접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떤 데이터나 통계보다도 강력하게 모두의 심장을 울렸다.


증인석에서 내려오자, 방청석의 동료들과 눈이 마주쳤다. 지은과 지나는 서로를 부축하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박진우 선생은 냉소적인 표정 대신, 깊은 존경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향해 아주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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