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를 하오 Part11

다시 피어나는 장미

by sarihana


제11장. 살아내겠다는 약속


그때였다. 멈추지 않고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에 섞여, 아주 희미하지만 집요하고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사락, 사락. 젖은 아스팔트를 긁어내는 거칠고 묵직한 마찰음. 병실의 인공적인 정적을 깨뜨리는 그 소리는, 이름 모를 환경미화원의 빗자루 소리였다. 이 절망으로 가득 찬 병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그녀의 시간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세상은 그렇게 묵묵히, 기계적으로 새벽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불행을 끝내기 위해 약을 삼키려 했던 이 숭고하고도 비참한 순간에, 세상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 절대적인 무관심이 처음에는 견딜 수 없는 모욕처럼 느껴졌다. 나의 이 거대한 비극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세상의 무심함에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그 소리는 거친 밧줄이 되어, 끝없이 추락하던 그녀를 현실의 단단한 바닥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 소리는 조롱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가장 근원적인 리듬, 계속되어야만 하는 세상의 끈질긴 맥박 소리였다.


'그래, 세상은 계속되고 있었구나. 내가 죽음을 생각하는 이 순간에도, 비가 오든, 폭풍이 치든, 누군가는 길을 쓸고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어. 나만 멈춰 있었던 거야. 나도… 계속되어야 해.'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거미줄처럼 금이 간 액정. 그 부서진 현재의 창 너머로, 완벽했던 과거의 한순간이 보였다. 딸 지혜의 사진이었다. 작년 가을, 눈부신 햇살 아래 공원에서 낙엽을 한 아름 안아 던지며 세상이 떠나가라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금빛 햇살이 아이의 머리카락에 보석처럼 부서지고, 바싹 마른 낙엽의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던 그날의 공기마저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진 속 지혜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기억이 아닌 현실처럼, 빗소리와 빗자루 소리를 뚫고 선명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엄마…'


그 웃음소리가 절망의 가장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그녀의 본질을 흔들어 깨웠다. 순간, 머릿속에 번개처럼 한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이겨내는 게 아니야. 그냥… 살아내는 거야."


그녀는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싸움이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진짜 이유를. 그녀는 모든 것을 '이겨내려' 발버둥 쳤다. 병마를 완벽하게 극복하고, 빼앗긴 것을 되찾고, 예전의 빛나던 '디자이너 김장미'로 돌아가는 완전무결한 '승리'를 꿈꿨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목표는 그녀를 더욱 깊은 절망의 수렁으로 몰아넣었을 뿐이다. 과거의 자신이라는 유령과 싸우게 만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삶은 이겨내야 할 전쟁터가 아니라, 그저 묵묵히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병마와 함께 숨 쉬고, 배신의 상처를 안고 걸어가고, 외로움과 나란히 앉아 새벽을 맞는 것. 그것이 패배가 아닌, 삶 그 자체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지혜의 엄마로서, 완벽한 영웅이 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딸의 곁에서, 불완전하더라도 오늘을 살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손바닥에 남아있던 수면제들을 서랍 안으로 거칠게 쏟아부었다. 짤그랑. 하얀 알약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자신을 옭아매던 무거운 쇠사슬이 끊어지는 마지막 소리처럼 경쾌하게 들렸다. 금이 간 액정 위, 딸의 웃는 얼굴을 꽉 쥐었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것은 더 이상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길고 어두웠던 밤의 모든 것을 씻어내리는 정화의 눈물이었고, 삶을 향한 굳은 맹세였다.


다시는 쓰러지지 않겠다는, 딸의 웃음소리를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는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서늘하고도 뜨거운 약속이었다. 창밖의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지만, 이제 그 빗소리는 더 이상 그녀를 외롭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세상이 그녀의 새로운 시작을 향해 보내는 힘찬 박수 소리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