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선변호사 입니다 (2편) - Part6

악마의 기억

by sarihana

제6장: 또 다른 작가의 탄생


며칠간의 분노가 가라앉자, 차가운 이성이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고개를 들었다. 나는 구치소의 비좁은 독방 바닥에, 권도윤의 변론요지서를 마치 설계도처럼 펼쳐놓았다. 이번에는 모욕당한 예술가의 시선이 아닌, 작품을 해부하는 냉정한 비평가의 시선으로. 나는 훔친 연필심으로 그의 문장들 밑에 줄을 긋고, 여백에 나만의 주석을 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권도윤, 그는 단순한 배우가 아니었다. 그는 이 무대 위에 난입한 '또 다른 작가'였다.


그가 창조한 '이선우'라는 인물은, 질투에 눈먼 연인(나)보다 훨씬 더 입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악역이었다. 권력자의 아들, 숨겨진 비밀, 약점을 쥐고 협박하는 여자들, 그리고 '정원사'의 시그니처를 이용한 완전 범죄. 그의 이야기는 대중과 배심원들이 열광할 만한 모든 요소를 갖춘, 한 편의 훌륭한 스릴러 소설이었다.


나는 그의 문장들을 해부했다. 그는 나의 네 번째 작품에 의도적으로 남겨진 허술한 '증거'들을, 모방범의 어설픈 실수로 완벽하게 포장했다. 나의 완벽한 설계를, 그는 교묘하게 비틀어 자신의 이야기의 근거로 삼았다. 나의 작품이 순수 예술을 지향하는, 소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난해한 '저자 소설'이라면, 그의 작품은 대중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흡입력 강한 '상업 소설'이었다. 그리고 법정이라는 저속하고 통속적인 무대 위에서는, 그의 소설이 나의 소설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터였다.


분노는 어느새 기묘한 희열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내 작품을 모독한 그가 증오스러웠지만, 동시에 그의 작가적 재능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설계한 무대 위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한 전혀 다른 장르의 희곡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전개인가. 나의 위대한 연극에, 예상치 못한 작가가 난입하여 새로운 극을 펼치고 있다니.


독방의 정적을 깨고, 내 입에서 낮고 짧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복도를 지나가던 교도관이 흠칫하며 내 감방을 들여다볼 정도였다. 나는 미친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하게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나는 내 예술의 완벽함을 증명하기 위해 법정에 섰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내 예술이 '졸렬한 모방품'이라는 평가를 받은 덕분에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나의 진정한 작품은, 그가 쓴 상업 소설의 증거물로 전락하겠지.


좋다. 나는 이 끔찍하고도 아름다운 모순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배우가 작가가 되기를 자처한다면, 기꺼이 그의 무대 위에 올라가 주겠다. 나는 이제부터, 그가 쓴 각본대로 '억울한 희생양'이라는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할 것이다. 나는 반짝이는 숟가락 뒷면에 내 얼굴을 비춰보며 표정을 연습했다. 절망, 공포, 슬픔, 그리고 한 줄기 희망까지. 나는 내 모든 근육과 신경을 통제하여,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연약한 남자가 될 준비를 했다.


재판 당일. 법정의 문이 열리고, 차가운 공기가 내 얼굴을 스쳤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포탄처럼 터지고, 방청석의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모든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한 걸음씩 피고인석, 무대의 중앙으로 나아가며, 내 안의 모든 감정을 숨겼다. 눈빛 하나, 떨리는 숨결 하나까지 계산된 연기의 일부였다. 내 얼굴에는 두려움과 슬픔이 교묘히 섞여 있어, 진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장을 조여왔다.


나는 변호인석에 앉은 권도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내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안심하라는 신호였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순진하고 고마워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아주 짧게, 찰나의 순간 연출가로서의 만족스러운 미소를 섞었다.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지만, 이내 내 연약한 모습에 안심하고는 시선을 거두었다. 그가 내 미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더 흥분시켰다.


다시 재판이 시작되자, 나는 숨을 고르고 법정의 공기를 삼켰다. 검사의 날카로운 질문과 배심원들의 호기심, 권도윤의 치밀한 전략… 모든 것이 하나의 교향곡처럼 내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 대사 한 마디 없이,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나를 향해 있었지만, 그들은 내 진짜 모습이 아닌, 내가 만들어낸 '억울한 희생양 김민석'을 보고 있었다.


법정 공방이 진행될수록 대중의 여론은 더욱 복잡해졌다. 미디어는 이 치열한 법정 대결을 마치 드라마처럼 보도했고, 시청자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정원사와 권도윤을 응원하거나 비난했다. 인터넷에서는 "정원사는 무죄인가? 정원사를 법정에 세운 목적은 무엇인가? '정의'는 과연 법정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가?"라는 논쟁이 불붙었다. 그들의 논쟁은 결국 내가 던지고 싶었던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나의 의도는 완벽하게 성공하고 있었다.


나는 방청석에 앉아,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내 계획대로, 권도윤은 나를 무죄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승리한 피고인이 아닌, 법정이라는 무대를 완벽하게 조종한 예술가로 남게 될 것이다. 막이 오름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거리의 예술가 '정원사'는 이제 퇴장할 시간이다. 곧 억울한 피고인 '김민석'이라는 새로운 배우가 무대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연극의 피고인이자 작가이며, 유일한 관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법정이라는 거대한 정원 속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세상의 거짓과 위선을 가르는 최후의 꽃을 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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