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정원
나는 피해자의 시신에서 눈을 돌려, 그 뒤편의 축축한 콘크리트 벽을 보았다. 검은색 래커 스프레이로, 누군가 분노를 담아 거칠게 휘갈겨 쓴 글씨가 경찰 조명 빛에 번들거렸다.
'잡초를 뽑았을 뿐이다.'
그 문장을 가만히 응시했다. 김민석의 논리를, 그의 철학을 어설프게 훔쳐 온 문장. 하지만 그 안에는 김민석이 가졌던 뒤틀린 예술가적 자의식이나 지적 오만함은 조금도 없었다. 그의 '망상 기록'에 담겨 있던 시적인 문장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투박하고, 조잡하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자기기만에 가득 찬, 그저 뻔뻔한 변명일 뿐이었다.
"마치 자기가 사회의 심판자라도 되는 것처럼..." 옆에 서 있던 젊은 형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심판자?"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이건 심판이 아니야. 그저 살인을 저지르고, 그럴듯한 명분을 인터넷에서 찾아다 갖다 붙인 것뿐이지. 김민석은 스스로를 신이라 믿었기에 변명이 필요 없었어. 그의 모든 행위가 곧 법이고 예술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놈은 달라. 이놈은 자신의 행위가 역겨운 살인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아. 그래서 변명이, 자신을 포장할 위대한 이야기가 필요한 거야."
김민석의 유령은 이토록 추한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그의 정교한 논리는, 이제 분노를 배설하기 위한 가장 편리한 화장지가 되어버렸다. 이 범인은 김민석의 철학을 계승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의 이름 뒤에 숨어,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싶을 뿐인 기생충이었다.
나는 직감했다. 현장에 남겨진 지문이나 발자국 같은 물리적 증거만으로는 이놈의 꼬리를 잡을 수 없다. 이 싸움은 과학수사가 아닌, 심리전으로 풀어야만 했다. 범인의 머릿속으로, 김민석의 유령이 떠도는 그 어둡고 축축한 동굴 속으로 직접 들어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 동굴의 지도를 가진 사람은, 이제 대한민국에 단 한 명밖에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