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정원
"이놈은 김민석의 시작이 아니라, 그의 가장 마지막 결론에서 출발한 거야."
내가 나지막이 탄식했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허탈감이었다. 우리는 죽은 김민석의 그림자를 쫓고 있었지만, 새로운 괴물은 김민석이 마지막 숨결과 함께 뱉어낸 가장 순수한 독(毒)을 마시고 태어난 것이다.
박수진이 내 생각을 이어받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김민석은 '정화'라는 뒤틀린 구원의식에 집착했어요. 자신을 예술가, 세상을 바로잡는 창조주라고 믿었죠. 그래서 그의 범죄엔 언제나 일종의 '의식'이 있었어요. 희생양을 고르고, 관찰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 모든 과정이 그의 예술이었으니까요."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신도시 살인사건의 현장 사진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이 새로운 범인은 구원 따위엔 관심이 없어요. 여기엔 어떤 경의도, 미학도 없어요. 그는 김민석의 철학에서 고뇌와 성찰, 뒤틀린 예술성 같은 '복잡한 것'들은 모두 거세해 버렸어요. 그리고 자신의 분노와 열등감을 정당화해 줄 가장 단순하고 파괴적인 결론, '잡초는 그저 뽑아버려야만 하는 존재다'라는 그 문장만 쏙 빼내서 자신의 칼로 삼고 있는 거예요."
그랬다. 이 새로운 살인마는 김민석의 계승자가 아니었다. 그는 스승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발전시킨 제자가 아니었다. 성경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구절만 떼어내 신도들을 현혹하는 사이비 교주처럼, 그는 김민석의 사상 중 가장 추악하고 편리한 부분만 취사선택한 기생충이었다.
김민석은 자신의 정원을 가꾸려 했지만, 이놈은 정원 자체를 파괴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의 분노를 배설할 명분으로 '정원사'의 이름을 도용하는, 가장 저열한 모독이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것은 김민석에 대한 분노와는 다른, 훨씬 더 더럽고 역겨운 종류의 분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