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정원
박수진의 상담소, 따뜻한 허브차 향기가 가득한 그 공간에서 나는 처음으로 진짜 공포를 느꼈다. 윤지수의 광기나 김민석의 예술가적 오만함과는 다른 종류의, 등골을 타고 흐르는 차갑고 시스템적인 공포였다.
"이건 우연이 아니에요."
박수진이 내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내가 가져온 사건 파일들의 완벽하게 정리된 증거 목록에 머물러 있었다.
"너무… 깨끗해요. 모든 증거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나타나고 있어요. 마치 누군가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김민석은 시스템을 파괴하려 했지만, 이 사람은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어요. 완벽하게."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것은 '잡초맨'의 어설픈 분노와는 차원이 다른, 훨씬 더 지능적이고 무서운 존재의 솜씨였다. 이 새로운 유령은 법 밖의 괴물이 아니라, 법 그 자체가 되려는 듯했다.
나는 텅 빈 사무실로 돌아와, 늦은 밤까지 홀로 창가에 서 있었다. 창밖으로, 서초동의 불빛 속에 잠긴 대검찰청 건물이 거대한 괴물처럼 보였다. 내가 평생을 바쳐 지키려 했던, 저 견고한 정의의 성채.
나는 깨달았다. 새로운 잡초는 더 이상 신림동의 어두운 골방이나 다크웹의 그늘진 곳에 숨어있지 않았다.
바로 저 성채 안, 나와 같은 법전을 펼쳐보고, 나와 같은 검사 선서를 외쳤을 누군가. 점심시간에 마주치며 가볍게 목례를 하고, 회의실에서 정의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을 동료. 우리들 안에, 새로운 괴물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괴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법이라는 가장 완벽한 가면을 쓰고 내 곁에서 미소 짓고 있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