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전하는 위로
나는 기계가 되어야 했다.
열여섯, 프랑스 유학 시절의 기억은 아직도 칼날처럼 선명하다. 내가 밤새워 만든, 완벽한 광택과 각도를 자랑하던 쇼콜라 케이크. 나는 그것이 내 인생 최고의 걸작이라 믿었다. 하지만 나의 스승은 칭찬 대신, 차가운 눈으로 자를 가져와 케이크의 기울기를 쟀다.
"2mm. 이쪽이 2mm 기울었군."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눈앞에서 그 완벽해 보이던 케이크를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리고 내 등 뒤로 얼음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정은 오차를 만들고, 오차는 실패를 낳는다. 최고의 파티시에는 감정이 없는 기계가 되는 것이다, 윤아."
그날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내 안의 모든 감정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흔들림, 망설임, 서투름… 그 모든 인간적인 감정들은 실패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완벽한 기술만이 나를 증명하고, 나를 지켜줄 유일한 갑옷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AI 베이커리'를 연 것은 나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옆의 낡고 허름한 '시간의 빵집'은 나의 철학을 위한 완벽한 배경막이자, 경멸의 대상이었다. 나는 내 가게의 통유리창 너머로 그곳을 매일 관찰했다. 비효율적인 반죽, 제멋대로인 모양, 감성에 기대는 주인, 그리고 상처 입은 얼굴로 모여드는 손님들. 나는 그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실패자들이 서로의 불완전함을 핥아주며 위로하는, 구시대적인 소꿉놀이. 저런 감상적인 가게는 곧 사라질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곳으로 향했다. 심지어 내 가게에서 완벽한 크루아상을 사간 손님이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정말 완벽해요!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옆집의 울퉁불퉁한 빵이 더 좋으시대요. 옛날 생각이 난다나 뭐라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데이터에는 없는 변수였다. 내 완벽한 크루아상보다 저 실패작 같은 빵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그들의 웃음소리가 유리창을 넘어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내 완벽한 세계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정전이 되었던 그날 밤, 모든 것이 멈췄다. 요란한 비바람이 몰아치던 밤, 나는 내 가게 안에서 안전했다. 하지만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나의 완벽한 세상은 한순간에 암흑이 되었다. 기계들은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멈췄고, 로봇 팔은 허공에 멈춘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절대적인 정적, 완전한 어둠. 나는 차가운 어둠 속에 홀로 갇혔다.
그때였다. 옆 가게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랜턴과 촛불, 휴대폰 불빛들이 모인, 작고 따뜻한 빛이었다. 나는 홀린 듯 유리창으로 다가가 그곳을 훔쳐보았다. 땀 흘리며 오븐을 고치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기타를 연주하는 남자, 따뜻한 차를 나눠주는 할머니, 그리고 그 중심에 선 민서 씨. 그들은 비효율적이고, 시끄럽고, 감정적이었다. 그리고... 따뜻했다. 내가 평생을 부정하고 버려왔던 바로 그 온기였다.
그들은 망가졌지만 함께였고, 나는 완벽했지만 혼자였다.
그 순간, 내 안의 기계가 처음으로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수십 년간 잊고 있던 '외로움'이라는 감정이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축제가 열리던 날, 나는 처음으로 저울 없이 케이크를 만들었다. 나의 손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떨렸고, 아이싱은 삐뚤어졌으며, 모양은 엉망이었다. 몇 번이나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이것은 실패작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첫 '진심'이었다.
그 케이크를 들고 '시간의 빵집' 가판으로 향하는 몇 걸음이 천리 길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민서 씨는 나의 초라한 케이크와 떨리는 손을 보고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를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 품 안에서, 나는 기어이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스승 앞에서 울지 못했던 열여섯의 내가, 지금에야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것은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우는 나의 첫 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