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조각의 무게
가장 아팠던 것은 이혼 소송이라는 태풍이 아이들의 마음에 남긴 상처였다. 사춘기인 두 아이는 부모의 법정 공방을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마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서로 다른 기후를 가진 미지의 섬처럼 변해갔다.
이혼 소식을 들은 아이들은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는 얼굴로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은 세상과 단절하는 요새의 문처럼 굳게 닫혔다. 그 문 너머에서 첫째는 생각했다. ‘아니야. 이건 그냥 어른들의 심한 장난 같은 거야. 아빠는 내일 아침이면 소파에서 자고 있을 거고, 엄마는 잔소리를 하겠지. 어제와 똑같이.’ 그는 책상에 앉아 가장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변수가 가득한 현실과 달리, 정해진 공식만 따르면 반드시 하나의 답이 나오는 그 세계만이 유일한 피난처였다. 반면 둘째는 침대에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거짓말. 다 거짓말이야. 어제는 같이 저녁도 먹었잖아.’ 그는 친구에게서 온 ‘무슨 일이야?’라는 메시지를 무시한 채, 휴대폰 게임 볼륨을 최대로 키웠다. 화면 속 요란한 폭발음만이 현실의 침묵을 지워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빠의 빈자리는 집 안의 온도를 몇 도쯤 떨어뜨린 것 같았다. 그 서늘함 속에서 아이들의 불안은 싹을 틔웠다.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혜진이 어디에 있는지 묻거나,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문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어느 날, 혜진이 퇴근길 교통체증으로 10분쯤 늦자 둘째는 다섯 통의 전화를 연달아 걸었다. “어디야?” 수화기 너머 아이의 목소리는 화가 난 듯했지만, 그 밑에는 겁에 질린 아이의 떨림이 숨겨져 있었다. ‘엄마도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아빠처럼, 예고도 없이.’ 첫째는 밤마다 잠든 혜진의 방문을 몰래 열어보고 나서야 잠이 들었고, 둘째는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잠에서 깨는 버릇이 생겼다.
채워지지 않는 불안은 아이들을 각자의 섬으로 밀어 넣었다. 그 섬은 집 밖의 세상까지 확장되었다. 학교 점심시간, 첫째의 친구들이 주말에 아빠와 캠핑을 간 이야기를 떠들썩하게 나누었다. 첫째는 밥을 삼킬 수가 없었다. 자신은 더 이상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이방인이 된 것 같았다. 그는 조용히 이어폰을 꽂았다. 시끄러운 음악이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정상적인’ 가족의 풍경을 차단해주었다. 둘째는 담임선생님에게 불려 갔다. 선생님의 걱정스러운 얼굴과 “집에 무슨 일 있니?”라는 조심스러운 질문이, 마치 ‘너는 이제 불쌍한 아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아이는 “신경 끄세요”라고 쏘아붙이고 교무실을 뛰쳐나왔다. 상처를 감추기 위해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다.
그렇게 쌓인 침묵과 분노는 결국 집 안에서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평소 조용했던 첫째는 밤늦게까지 친구와 전화하며 혜진의 기척을 외면했다. 그는 방문 밖의 혜진에게 들으라는 듯, 친구의 아버지가 얼마나 멋진지에 대해 과장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자신의 세계는 아직 온전하다고, 엄마가 망가뜨린 이 집과는 다르다고 항의하는 듯했다. 반면 둘째는 사소한 일에도 날카롭게 신경질을 부리고, 혜진의 말을 무시하며 반항의 크기를 키워갔다. "엄마 때문이잖아!" 둘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그 한마디에 혜진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 말은 사실 둘째 자신에게도 상처가 되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하지만…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잖아.’ 아이는 죄책감과 분노 사이에서 길을 잃은 채, 다시 이어폰을 끼고 자신의 세계로 도피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혜진의 곁에 있지만, 이미 마음은 닿을 수 없는 먼 섬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