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 길에서 만난 이혼 - Part3

깨진 조각의 무게

by sarihana

3장. 홀로서기, 잔해 속에서


이혼이라는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혜진은 홀로 남겨졌다. 그녀는 막막함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거주지 이동이 아니었다. 지난 15년간 익숙했던 삶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뼈를 깎는 듯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남편이 챙겨주던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가장 먼저 그녀를 덮쳐왔다. 아이들 방에 놓아줄 작은 서랍장을 인터넷으로 주문했지만, 배송된 것은 조립해야 하는 판자 더미였다. 예전 같으면 남편이 뚝딱 해냈을 일. 그녀는 낯선 설명서를 몇 번이나 뒤적이다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에 익지 않은 드라이버질에 손바닥은 빨갛게 부어올랐고, 나사는 자꾸 엉뚱한 곳으로 비껴 들어갔다. 한 시간 넘게 낑낑댄 끝에 겨우 완성된 서랍장은 눈에 띄게 비뚤어져 있었다. 그 비뚤어진 모양이 마치 자신의 현재 모습 같아, 혜진은 울컥 눈물을 쏟을 뻔했다.


경제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수도세, 전기세, 가스 요금 고지서가 날아올 때마다 숨이 막혔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남편의 월급 통장에서 빠져나가던 일상적 책임들이 이제는 그녀 혼자만의 몫이 되어 어깨를 짓눌렀다. 혜진은 때때로 텅 빈 거실을 보며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자신은 이 모든 것을 감당할 힘이 없다고, 이 거대한 잔해더미에 깔려 질식해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낮 동안은 현실적인 문제들과 씨름하며 버틸 수 있었지만, 밤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외로움이 그녀를 집어삼켰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으로 숨어들었고, 거실에는 차가운 정적만 흘렀다. 예전에는 남편과 나란히 앉아 나누던 소소한 이야기가 사라진 소파, 두 사람의 컵이 놓여 있던 식탁. 그 모든 텅 빈 자리가 그녀의 가슴에 구멍을 냈다. TV 소리도, 책의 글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직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그녀의 불안한 심장 박동처럼 공간을 채웠다.


어느 날 새벽, 잠 못 들던 혜진은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단축번호 1번에 저장된 남편의 전화번호 위에서 한참을 맴돌았다. ‘지금이라도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그냥 다 미안하다고, 모든 것을 멈춰달라고 말하고 싶다.’ 마음속에서는 그런 나약한 속삭임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엄지손가락이 거의 통화 버튼에 닿으려던 그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살며시 열린 아이들 방문 틈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서로 등을 돌린 채,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떨리는 아이들의 작은 어깨. 그들의 상처를 보며, 혜진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이미 부서진 것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이제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고통 속에서도 그녀의 내면에서는 미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녀는 절망 대신 '해낸'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비뚤어진 서랍장 위에 작은 화분을 올리자, 그 불완전함이 제법 근사해 보였다. 떨리던 손으로 작성한 은행 서류는 실수 없이 통과되었고, 텅 비었던 통장 잔고는 매달 조금씩 채워져 갔다. 처음으로 혼자 힘으로 형광등을 갈아 끼운 날, 집 안이 환해지는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작은 미소를 지었다.


이 작은 성취들이 모여, 그녀 안에 숨겨져 있던 단단한 자아를 끌어냈다. 이제 그녀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무너진 성의 잔해 속에서 울고 있는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서툴고 비틀거릴지언정,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삶의 벽돌을 쌓아 올리기 시작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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