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 사회 (확장판)- Part9

마지막 기록자

by sarihana

2025년 9월: 불신의 바이러스


가을이 왔지만, 청명한 하늘과 풍요로운 결실은 오래된 사진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유물이 되었다. 희망 대신 잿빛 미세먼지가 도시를 두꺼운 담요처럼 뒤덮었고, 사람들은 마스크 너머로 마른기침을 삼켰다. 공기뿐만이 아니었다. 사회 전체가 보이지 않는 불신과 불안의 먼지로 질식해가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연일 정체불명의 호흡기 바이러스가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정부는 "상황은 통제되고 있으며, 지정 병원에서 백신을 접종하라"고 차분한 목소리로 발표했지만, 인터넷 세상은 온갖 억측과 공포로 들끓었다.


나는 그날 저녁, 불안한 마음에 부모님 댁에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무뚝뚝했다.


"아버지, 뉴스 보셨어요? 바이러스가 유행이라는데, 내일 당장 제가 모시고 갈 테니 백신 맞으셔야겠어요. 연세도 있으시니 조심하셔야죠."


그때, 아버지가 코웃음을 쳤다. 그 소리에는 수십 년간 쌓인 냉소와 불신이 쇳가루처럼 섞여 있었다. "백신은 무슨. 네 작은아버지가 오늘 아침에 '진실의 목격자 TV' 영상을 하나 보내줬다. 그거 다 제약회사랑 정부가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일부러 병을 퍼뜨리고 백신 팔아먹으려는 수작이라고."


"아버지, 그건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에요! 가짜 뉴스라고요! 제발 그런 것 좀 보지 마세요." 내 목소리는 절박함에 떨리고 있었다.


"가짜 뉴스?" 아버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우리 연금이 바닥나기 직전까지 안전하다던 전문가들은 진짜고? 평생 오를 거라던 집값이 반 토막 난 건 진짜고? 나는 이제 전문가도, 정부도, 뉴스도 안 믿어. 내 눈이랑 내 판단만 믿을란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수십 년간 내가 기록해왔던 사회의 병폐—무너진 신뢰, 집단적 혐오, 소통의 단절—가 전염병처럼 퍼져나가, 이제는 가장 사랑하는 내 아버지의 판단력마저 마비시켜 버린 것이다. 아버지를 병들게 한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퍼져버린 불신이라는 더 지독한 바이러스였다.


눈앞의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세상을 향해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단절된 신호음이 내 패배를 선언하는 것 같았다. 나는 창밖의 잿빛 도시를 보았다. 저 탁한 공기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처럼, 우리 모두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안개 속을 헤매고 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새로운 제목을 입력했다. '백신이 없는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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