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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의 노을

클리어워터 해변에서 멈춘 시간

by sarihana

대전의 여름 공기가 숨 막히는 습기를 머금는 순간, 불현듯 플로리다의 기억이 밀려온다. 살갗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열기, 소금기 섞인 바람, 모든 색을 쓸어버릴 듯한 쨍한 햇살.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내 인생의 한 페이지가 새겨진 풍경이었다.



불과 몇 달 전, 마흔여섯의 여름이었다. 플로리다 공항에 내려 검은색 SUV를 빌려, 심포지엄이 열리는 리조트로 향했다. 며칠간 이어진 발표와 토론 끝, 마지막 날 오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유가 찾아왔다. 나는 곧장 차를 몰아 클리어워터 해변으로 향했다.



플로리다의 오후는 늘 극적이었다. 갑작스러운 스콜이 장대비를 쏟아내더니, 금세 뜨거운 햇살이 젖은 아스팔트 위로 증기를 피워 올렸다. 그 변덕스러운 날씨가 마치 내 삶의 굴곡을 비추는 듯했다.


저녁 무렵, 해변 피어 끝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바라봤다. 하늘은 주황빛, 분홍빛, 보랏빛이 섞인 거대한 캔버스였다. 스무 해 전, 젊음 하나만으로 버티던 시절의 내가 그 풍경 어딘가에 겹쳐 보였다. 그때는 친구와 “10년 뒤에 우린 뭐가 되어 있을까?” 같은 질문을 하곤 했었다.



이제 나는 그 답을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로서, 그리고 삶의 무게를 아는 직장인으로. 낯선 차의 묵직한 핸들을 잡은 내 손에는 그때는 없던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바다 대신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오늘의 할 일을 정리한다. 하지만 숨 막히는 여름 한가운데서, 나는 여전히 그날의 노을을 떠올린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기에 더 선명히 빛나는, 내 젊은 날의 플로리다를.



그 기억은 내 안에서 하나의 닻처럼 남아, 지금의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조용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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