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회에서 관계와 인기를 중시하는 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를 판단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자들은 대부분 멍청하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얕고, 판단은 피상적이며, 결과는 늘 허술하다. 왜 이런 태도가 멍청함으로 귀결되는지 살펴보자.
먼저, 옳고 그름을 따지는 행위는 고도의 정신활동을 요구한다. 옳고 그름이란 단순한 도덕적 기준을 넘어, 사실을 기반으로 사고하고, 윤리를 고려하며, 장기적인 결과를 예측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이는 많은 에너지와 지적 자원을 필요로 한다. 반면, 관계와 인기를 잣대로 삼는 사람들은 타인의 눈치를 살피고, 피상적인 변화에 휘둘리며, 이 모든 정신 에너지를 무의미한 방향으로 소모한다. 이는 본질에 접근하기보다 겉모습에 집착하게 만들고, 결국 스스로를 한계 짓는 결과를 낳는다.
이들의 문제는 또 하나의 특징에서 드러난다. 겉으로는 야무지고 영리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허술하고 비효율적이다. 그들은 순간의 선택을 통해 누군가에게 잘 보이거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장기적인 시각이나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동반하지 않기에, 결국 겉만 번지르르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이는 깊이 없는 민첩함과 같다. 순간의 잔재주는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관계와 인기를 기준으로 삼는 태도는 진실을 회피하고 자기모순에 빠지게 한다. 이들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강박 속에서 살며, 본질적인 갈등을 피하려 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필연적으로 타협과 변명의 반복을 낳고, 자신의 정체성과 신념을 상실하게 만든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음으로써 얻는 평화는 사실상 공허한 평화일 뿐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왜곡하는 삶은 결국 공허함과 자기 모멸로 끝난다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삼는 태도는 삶에 대한 철학적 태도와도 연결된다. 이는 단지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 진정한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반대로 관계와 인기를 기준으로 삼는 자들은 단기적인 안정에만 몰두하며, 결과적으로 깊이 없는 사고와 삶에 갇히고 만다. 그들은 피상적인 민첩함을 지닌 채 살아가지만, 진정한 명석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제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자신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관계와 인기를 좇으며 겉보기 좋은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옳고 그름을 따지며 내면의 깊이를 더해가는 삶을 추구하고 있는가? 결국, 삶의 진정한 명석함은 스스로 던지는 이 질문과 그 답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