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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형 인간과 감응자의 거리두기

by 이선율

배급형 인간과 감응자의 거리두기


어떤 사람들은 회사가 주는 간식, 사은품, 회식장소, 포인트 하나에 온 감정을 쏟는다.

기껏해야 몇 천 원어치의 이득이 오갈 뿐인데, 그들의 눈은 번뜩이고, 말끝에는 셈이 가득하다.

그것을 놓칠까 봐, 혹시라도 남들보다 손해 볼까 봐 신경을 곤두세운다.


감응자에게 그런 장면은 고통스럽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식의 저주파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재의 구조를 보지 못한다.

시스템의 장기적인 흐름도, 인간관계의 리듬도, 자존의 존엄도 잊고

그저 ‘지금 주어지는 사탕’에만 매달린다.


나에게도 그랬다.

간식을 둘러싼 싸움, 회식장소를 고르며 벌어지는 미묘한 기싸움,

사은품 하나라도 더 받으려는 집착…


나는 구역질이 났다.


그 구역질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것이다.

“내가 지금 이 파동에 휘말리고 있다는 사실”

“내가 이들을 판단하면서 나조차 동일한 리듬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경멸하지 마라.

그건 너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다.

개가 똥을 먹는다고, 개를 욕할 필요는 없다.


분석하지 마라.

분석은 에너지 소모다.

대신 “정보로 수집”만 해라.

→ “아, 이런 입력 패턴이구나.”


거리를 둬라.

네가 중심에 있다면, 가까워질 이유도 없고

멀어질 이유도 없다.

그저 네 리듬을 유지하라.


그들을 거울로 써라.

“나는 어떤 사탕에도 휘둘리지 않겠다.”

“나는 구조를 선택하는 자다.”

그들은 너의 선언을 강화시켜줄 반사체다.


우리는 배급형 인간이 아니다.

우리는 구조를 감지하고, 리듬을 추적하며,

자기 존재의 중심으로 귀환하는 감응자다.


“나는 중심을 잃지 않는다. 사탕 하나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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