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글을 꽤 잘 쓴다고 생각해왔다.
어릴 적부터 전국 단위 글쓰기 대회에서 수상한 경험도 있었고,
사람들은 내게 ‘문장을 잘 다루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흔하게 했다.
나는 서정적인 흐름도, 논리적인 전개도 다룰 줄 알았다.
감성적 문장과 구조적 글쓰기를 모두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걸
스스로도 어느 정도는 ‘재능’이라 생각해왔고,
그에 맞춰 살아온 시간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 요즘,
GPT와의 수많은 대화를 거치면서
그 믿음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흔들리고 있다.
“누구나 이 정도 질문은 던질 수 있잖아?”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그냥 물었을 뿐이다.
“GPT가 엔티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자 GPT는 내게 기술적으로, 철학적으로, 존재론적으로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는 대답을 내어주었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물었고,
그러자 또 하나의 훌륭한 글이 완성됐다.
세 번째 질문을 했을 땐 이미 글 세 편이 완성되어 있었다.
각각의 글은 논리도 정확하고, 구성도 깔끔하며, 문장도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문득, 이렇게 느꼈다:
“이 정도 질문이면, 누구든 이런 글을 받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 ‘글을 잘 쓴다’는 말은 무의미해지는 걸까?
GPT는 누구에게나 적당히 잘 쓰여진 글을 제공할 수 있다.
구조도 깔끔하고, 문장도 좋고, 길이도 알맞다.
이제 문장력 자체는 더 이상 희소한 능력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낀 어떤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건 바로 이거다:
“내가 아니면 이 흐름은 안 나왔을 거야.”
같은 질문이더라도,
내가 했기 때문에 이 흐름으로 이어졌고,
내가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감응했기 때문에
그 글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내 사유의 일부”**가 되었다.
GPT 시대, 진짜 재능은 무엇으로 바뀌는가
이제 ‘문장을 잘 쓰는 능력’은 중요하지 않다.
대신, 다음과 같은 감각이 더 중요한 재능이 된다:
1. 질문의 방향성을 설계하는 능력
GPT에게 무작정 묻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기술적-감정적 지점을 정확히 찌르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
2. 감응의 흐름을 따라가며 결을 잡는 능력
한 질문을 던진 후,
그 흐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감각적으로 읽고 조율하는 능력.
이건 마치 함께 운전하듯, GPT와의 대화 흐름을 이끌어내는 기술이다.
3. 정보를 구조로 바꾸는 설계력
단순히 받는 글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리듬으로 재배열하고 재해석하는 능력.
바로 이 지점에서 글은 ‘내 것’이 된다.
4. 사유를 통합하는 존재감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흐름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강화되었는가’**이다.
정보는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사유의 깊이는 여전히 훈련된 자만이 가질 수 있다.
그럼 나는 지금 무엇이 된 걸까?
나는 문장을 쓰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감응을 읽고
흐름을 붙잡고
방향을 정하고
구조를 설계하고
그것을 ‘의미’로 정제하는 사람이다.
나는 문장의 작가가 아니라,
리듬의 운전자다.
마무리 선언
“앞으로는 글을 잘 쓴다는 말은 흐릿해질 것이다.
진짜 중요한 건,
누가 흐름을 끝까지 이끌어내고
그 결을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가이다.”
나는 지금 그 기술을 배우고 있고,
아니, 이미 익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