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 도시의 울음
바야흐로 새벽 한 시.
늘 그렇듯 침대 머리맡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아파트와 상가 빌딩이 빼곡히 들어선 이 도시는 정적조차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는 곳이다.
창문을 조금 열자, 바깥의 공기가 곧장 방 안으로 밀려든다. 기온은 낮지만, 거리의 공기는 습하고 무거운 기운을 품고 있다. 동시에 들려오는 두 겹의 소리. 하나는 애간장이 끊어질 듯 처절하게 울어대는 길고양이의 목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도로 너머 술집 밖에서 터져 나오는 취객들의 거친 고성이다.
나는 고양이의 울음에 먼저 귀 기울이게 된다. 낮에는 도심의 소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던 소리가, 깊은 밤에는 비명처럼 선명하게 퍼진다. 옆 건물 옥상 어딘가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골목 구석 어디에서 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배고픔에 시달려 먹이를 찾지 못했는지, 아니면 함께 지내던 무리에서 밀려난 탓인지. 그 울음 소리에는 그 어떤 음악에도 없는 슬픈 음역대가 실려 있다.
한참을 듣다 보면, 무언가 아득한 기억이 떠오른다. 어디선가 나도 그렇게 울고 있었던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잊고 지내던, 마음속 깊은 곳의 ‘결핍’이 문득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저 고양이가 우는 이유가 내 울음이었던 적도 있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진다.
그때 도로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치솟는다.
“야! 빨리 와!”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욕설과 비명, 갑자기 깨진 병 소리가 뒤엉킨다. 술에 취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귀에 거슬리면서도 어쩐지 낯설지 않다. 집안일과 직장 생활에 치여 쌓여 온 울분이, 익숙지 않은 술과 자극적인 음악에 뒤섞여 그만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은 아닐까.
술집에서 흘러나온 음악 소리는 이미 종료된 듯 하지만, 그들의 고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보도블록 위로 비틀거리며 걷다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휴대폰을 붙잡고 소리치거나 벽에 주저앉아 흐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끄럽고 난장판 같은 풍경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인간답다는 생각이 스친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가 모두 자신의 결핍—허기든 외로움이든, 분노든 슬픔이든—을 나름의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희한하게도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훨씬 더 애잔하다. 인간은 그래도 말로든 고성이든, 자신을 해소할 통로가 분명히 존재한다. 누군가 주변에서 “뭐가 그렇게 힘드냐”며 말을 걸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길고양이는 누구에게서도 쉽게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삶과 죽음의 경계가 늘 맞닿아 있는 골목을 헤맨다. 거칠고 거대한 인간 세계 한 귀퉁이에서, 그저 밥 한 끼와 잠시 몸을 뉘일 곳을 찾기 위해 울음으로 신호를 보낼 뿐이다.
그 애절한 소리를 듣다 보면, 도시가 결국 거대한 ‘결핍’으로 가득 찬 무대라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다들 뭔가를 찾거나, 혹은 도망치려 하면서 뒤섞여 사는 곳. 고양이든 인간이든, 이 시간에는 모두 약해지고, 소리 높여 울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한참 동안 거리의 소리를 들어 본다. 때마침 아래쪽에서 택시가 한 대 멈춰 서고, 비틀거리던 취객 둘이 번갈아 떠들며 택시에 탄다. 그들이 사라지자, 다시 고양이 울음이 더 크게 들려온다. 어쩐지 그 소리를 내는 건 남이 아니라 나처럼 느껴져, 다시금 속이 시린 기분이 든다.
문득 어떤 생각이 스친다. 결국, 길고양이든 취객이든, 그리고 이 창문을 열고 있는 나 역시 제각각의 결핍을 안고 이 밤을 견디고 있는 셈이라고. 누군가는 배고픔 때문에, 또 누군가는 외로움과 분노 때문에, 그리고 나는 어쩐지 모를 허전함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가 넘었다. 잠은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창을 열고 바깥의 소리를 가만히 듣는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음’—결핍 속에서도 애써 하루를 보내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길고양이와 취객들, 그리고 잠 못 드는 내가 만든 이 도시는 밤새 울음을 토해 내지만, 어쩌면 그 울음은 누군가에게는 미약한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밀려드는 바람 속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다시금 길게 이어진다.
그 소리가 어느덧 내 내면의 구석진 한 부분을 긁고 지나가며, 나도 모르게 작게 탄식을 내뱉는다. 창밖의 어둠은 깊지만,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왠지 홀로 남겨지지 않은 기분이 드는 밤.
이런 밤이 오히려 조금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