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촌호수의 밤, 흐르는 마음
지난밤, 석촌호수 앞 카페에서
호가든 한 병과 아메리카노 한 잔.
맥주를 마시다, 커피를 마시다,
하염없이 호수의 물길만 바라보다가
문득, 나는 무엇을 기다리는 중일까 싶었다.
옆자리 아가씨들은 사내지론을 펼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 말다,
수첩에 서글픈 시 몇 줄 적다 말다.
시간이 밀물처럼 차오르더니
어느새 자정을 넘겨버렸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희재’ 피아노 연주곡을 틀어두고
S/L 카드로 그랜드피아노나 살까—
이런 허망한 생각을 하다.
집으로 향하는 도로는
물속처럼 어두컴컴했고,
그 속을 떠가는 내 그림자는
왜 이다지도 선명한지.
추적추적 내리는 새벽 안개 속에서
아파트 창가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은 하나도 없이
검푸른 어둠만이 가득하다.
누군가는 이 순간에도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하고,
누군가는 사랑을 속삭이며
밤을 맞이하겠지.
그러나 나는 그저
이렇게 깨어 있다.
장성한 친구들은
하나둘 어딘가에서 예쁜 마누라를 데려와
금세 저들과 비슷한 새끼를 생성해냈다.
어느 날부터인가,
어두워져만 가던 그놈들의 눈빛을 보며,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집에서 암사자를 키우고 있구나.
한때 펌프 오락실에서
밤새 점수를 겨루던 친구들은
이제 낮은 목소리로
생활비와 대출금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이상하게 오늘,
장성한 친구들에게 슬픈 시를 읽어주고
S/L 카드로 산 그랜드피아노를 멋지게 연주해주고 싶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허망한 바람이라는 것을 안다.
멀리, 석촌호수는 조용했다.
달빛은 호수 위를 쓰다듬으며,
모든 흔적을 삼키듯 흘러갔다.
나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 물결 위로
오늘을 흘려보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