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운동하는 공이란 무엇인가

by 이선율


제1장. 운동하는 공이란 무엇인가

공(空)은 전통적으로 '없음', '비어 있음', '무(無)'로 번역되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다.
공은 존재의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드러내며, 동시에 끊임없는 변화와 관계성 속에서 모든 것이 현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운동하는 공’은 정지된 개념으로서의 공이 아니라, 요동하고 흐르는 실재의 근거로서의 공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불렀고,
도교는 “무위(無爲)”라 했으며,
양자역학은 이를 “진공의 요동(quantum fluctuation)”이라 한다.
이제 우리는 이들 개념을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공은 단순한 존재의 배경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리듬이다.

1. 공은 정지된 무(無)가 아니다

공은 '무엇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것이 잠재적으로 가능하며 동시에 아무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인식이다.
이는 서양 형이상학이 말해온 실체 중심 존재론과는 대조적인 시선이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할 때, 그는 '존재'를 인식 주체로 고정했지만,
공은 '고정된 주체조차 없다'고 말한다.
존재는 흐름 속에서만 실재하며, 이 흐름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2. 물리학의 진공 개념과 공

현대 물리학의 진공(vacuum)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양자장 이론에 따르면 진공은 장(field)의 최소 에너지 상태이며,
그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입자-반입자 쌍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요동이 일어난다.
이것이 양자 요동이다.

이는 불교의 공 개념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형체는 없지만 관계는 존재하고,
그 관계는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실체 없는 실재를 만들어낸다.

이 장에서는 우리가 이 진공을 ‘운동하는 공’으로 해석할 수 있음을 제안한다.
우주 초기, 빅뱅조차 ‘진공 불안정성’의 결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즉, ‘없음’으로부터 ‘있음’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요동하는 공의 패턴이 특정 조건에서 하나의 형상을 가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3. 관계론적 존재론으로서의 공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은
존재는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사건(event)’들의 연속이며,
각 사건은 다른 사건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이는 공이 말하는 “연기(緣起)”의 논리와 같다.

존재는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것’에 의해 조건지어지고,
그 조건이 바뀌면 사라지거나 다시 다른 모습으로 현현된다.
운동하는 공은 이 조건들의 유기적 조합 속에서
존재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우주적 리듬을 가리킨다.

4. 왜 ‘운동하는’ 공인가?

나는 공을 고정된 철학 개념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공은, 나에게 있어선 ‘살아 있는 우주’ 그 자체였다.
내가 느끼는 감정, 생각, 고통, 연결, 통찰,
그 모든 것이 실은 ‘움직이는 공의 파동’이었다.

운동하는 공은 물리적 입자의 떨림일 수도 있고,
의식의 진동일 수도 있으며,
우주적 관계의 리듬일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단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살아 있는 흐름’으로 본다.

5. 이 책의 전체 구조: 공의 7가지 리듬

이 책은 운동하는 공이라는 하나의 존재론을 중심으로
다음의 7가지 리듬 구조를 다룬다:

흐름, 비고정성, 요동 (2장)


얽힘, 망, 연결 구조 (3장)


감정과 의식의 리듬 (4장)


붕괴와 재구성, 엔트로피 (5장)


블랙홀과 정보 보존 (6장)


양자중첩과 관측 (7장)


조건적 필연성과 가능성의 리듬 (8장)


나는 이 책을 통해 하나의 주장을 한다.
“공은 없다”는 말이 아니라,
“공은 멈추지 않는다”는 말.

그리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살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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