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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이 사라졌다

by 이선율

음악을 듣는 것도 습관이었다. 하루를 시작하며 귀를 채우고, 길을 걸으며 리듬을 맞추고, 밤이 되면 익숙한 멜로디 속에서 생각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늘 곁에 있던 음악이 지겨워졌다. 귀에 꽂힌 이어폰을 빼고, 멜론을 해지해버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세상이 조금 달라 보였다.

바람 소리가 들렸다.

북한산 능선을 타고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손끝을 스치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전해졌다.

조용한 아침이면, 창밖으로 햇빛이 스며드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무심코 걸음을 옮길 때면, 그동안 몰랐던 내 발소리가 귓가에 남았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내 심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채우며 살아간다.

소음 속에서 나를 잊고, 정보를 탐식하며 공허함을 메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들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울 때 보인다.

그렇게 나는, 비우는 삶을 연습하고 있다.


몸에게 바치는 감사의 의식


거의 두 달 가까이 운동을 하지 못했다.

거울 속의 나는 조금 지쳐 보였고,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다시 운동을 시작하려는 순간, 익숙했던 동작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첫 세트, 둘째 세트, 셋째 세트를 거듭할수록,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근육이 반응했다.

한 번도 내 몸을 잊었던 적이 없다는 듯이.


그 순간 깨달았다.

운동은 단순히 체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게 바치는 감사의 의식이라는 것을.


하루를 무탈하게 살아준 내 몸에 대한 예의.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조용한 다짐.

그리고 삶을 다시 정돈하는 작은 의식.


운동을 하면서 문득, 생각했다.

사람이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돌볼 때 비로소 온전해지는 게 아닐까.


마음의 고통은 흐르지 못할 때 생긴다


어떤 날은, 별일도 없는데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하다.

생각을 정리해도 마음 한쪽이 무겁고,

혼자 있는 시간이 불편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산으로 간다.


북한산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어느새 내 안에 가득 차 있던 것들이 조금씩 흘러가기 시작한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바람이 잔잔하게 나뭇가지를 흔들 듯이.

마음속에 맺혀 있던 감정들도 서서히 흐르며 흩어진다.


그러고 보면,

마음의 고통이란 결국 바깥으로 흐르지 못하고, 내 안에서 침잠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털어놓거나,

글을 쓰거나,

산을 걷거나,

어떤 식으로든 흘려보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겠지.


고여 있는 물이 썩듯이,

흐르지 못한 감정은 내면을 짓누르고,

그 무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진다.

그래서 나는, 나를 정화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산을 오르며, 책을 읽으며, 운동을 하며,

내 안의 것들이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충분했다


오늘 하루도, 나는 나에게 최선을 다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내 속도로 걸어왔고,

가끔은 흔들렸지만, 다시 중심을 잡았다.


햇살이 스며든 자리에 그늘이 남지 않듯,

오늘의 순간도 조용히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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